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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Sep 01. 2020

4대 의료정책과 의사파업의 이유

의사들은 무엇 때문에 업무를 중단하고 가운을 벗었는가.

학교 병원 시위에 다녀왔다. 우리 학교 대학병원의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행정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힘든 곳에서 일하시는 응급의학과, 소아과, 산부인과 선생님들이셨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전공의 선생님들, 교수님들과 더불어 의대생들이 함께 피켓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실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급히 시간을 바꾸었다고 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곱게 보지 않으시는 국민들도 많다. 왜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하시거나,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가장 힘든 곳에서 헌신하는 의사들이 이 위급한 시국에 업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우리가 수업을 들을 수 없는지. 적어도 한 번만은 편견 없이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시고, 생각해 봐 주셨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 글의 입장과 읽으시는 분의 생각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의사 파업과 의대생 동맹휴학, 국시 거부를 지지하는 의대생의 입장에서 서술했음을 미리 밝힌다. 다소 긴 글이 되겠다.




© sasint, 출처 Pixabay


문제의 쟁점, 4대 의료정책이란?

우선 문제 이해를 위해 의료계가 '4대악 의료정책'이라 부르는 네 가지 주요 정책에 대해 알고 가실 필요가 있다. 악법인지 선법인지는 직접 보고 판단하면 된다. 내용을 간단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의대 정원 확충

: 2022년부터 매년 최대 400년의 정원을 늘려 10년 안에 4000명의 의사를 추가 양성, 이 중 3000명은 지역의사 특별 전형으로 의료 소외지역이나 기초의학 분야에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함.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OECD 평균 수준에서 한참 못 미치고, 소외지역과 기초의학 분야 의사가 부족함을 근거로 함.


2. 공공의대 설립

: 현재 의대가 없는 지방에 공공의대를 추가로 설립하고 기존 의대와는 별개의 모집 과정을 거침. 공공의대를 졸업한 지역의사들은 필수 의료분야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함. 우리나라 의사 수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방의 의료 인력이 부족함을 근거로 함.


3. 한방 첩약 급여화

: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질환, 뇌혈관질환 후유증 3개 질환에 대한 한방 첩약을 보험 급여화. 한방 첩약의 유효성과 안정성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을 통해 검증되어온 바 있음을 근거로 함.


4. 원격의료 

: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전화를 이용한 비대면 상담과 처방 허용, 원격 의료(비대면 의료)의 점진적 추진


한방 첩약 급여화는 운용할 수 있는 의료보험 급여액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지만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몇몇 항암제도 비싼 가격 때문에 많이 쓰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적으로 효과 입증이 완료되었음에도 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 약들이 많은데,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한방 첩약의 급여화를 항암제의 급여화보다 우선시하는 게 옳은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또한 충분한 준비 없이 급하게 원격 의료를 도입하면 현재 심각한 수준인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해결되기는커녕 악화될 것이다.




이 중 가장 큰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은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충이다.


언뜻 보면 네 개 모두 참으로 이롭고 좋은 정책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의사들 내에서도 4가지 정책에 대해 각자의 의견과 입장이 있다. 그러나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충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한국 의료에 크나큰 해가 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방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고 의사 수를 늘리려 한다. 그러나 기피과와 지방의 의료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수만 늘리면 어떻게 될까. 의무적 근무기간이 끝나면 수도권, 인기과로 추가 인력이 고스란히 이동할 것이 뻔하다. 왜? 사람이니까. 기피과가 괜히 기피과가 아니다. 기피과란 감염내과, 산부인과, 소아외과, 흉부외과, 외상외과, 응급의학과 등 고강도 노동과 궂은 업무에도 불구하고 고용환경이 불안하고 업무환경이 힘든 과들을 총칭한다. 자기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큰돈을 벌 기회도 있는 인기과나 비급여 분야에 비하면 힘들고 보수도 적고 일자리도 마땅치 않은 기피과를 갈 이유가 없다.


11년이나 공부해야 전문의가 될 수 있는데, 누구나 더 좋은 삶을 꿈꾸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기피과 전문의의 삶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단하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해서, 비싼 등록금 내고 6년이나 미친 듯이 공부해야 의사가 되고, 5년을 더 수련해야 겨우 전문의가 되는데, 그만한 보상이 없다면 누가 의대 가고 의사 하겠는가?


의사 수를 늘릴 게 아니라 기피과와 지역의료, 공공분야, 기초의학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보상을 마련해야 한다. 가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의사 수 부족은 자연히 해결된다. 기초의학과 외과 분야에 실력 있는 탁월한 의사들이 모여야 의료가 발전할 수 있다.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가장 어려운 수술을 집도하는 게 이상적인 의료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어려운 수술을 하기 위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오죽하면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이 적자가 난다는 말이 있겠는가. 당연히 실력 있고 창창한 젊은 의사들이 기피과에 가지 않는다. 이를 개선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를 더 좋게 만들려면 유능한 의사들이 흉부외과, 소아외과, 외상외과, 산부인과, 감염내과 등의 기피과들을 앞다투어 가는 생태가 만들어져야 한다.


게다가 공공의대 정원 모집의 공정성이 이슈가 되고 있다. 공공의대 정원 모집 내용 중 시, 도지사 추천 관련 내용에 대한 항의에, 보건복지부가 시, 도지사가 아니라 '시민단체'가 추천한다는 카드 뉴스로 대답한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의대생을 왜 시민단체가 뽑지? 한국 입시의 공정성은 말뿐이었나? 특정 지역에 의대를 설립하기로 말을 다 맞춰놓고, 의대생은 추천으로 뽑는다. 너무 뻔하지 않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의대에 입학한 의대생으로써 분노와 갑갑함을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이 의사 양성을 위해 충분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해 폐교된 지 2년이다. 있는 의대도 잘 관리하지 못하는데 공공의대 교육 수준은 어떻겠나. 어떤 환자도 실력 없는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위기 상황 시 의사를 국가에서 확보한다던가, 의사를 북한으로 보낸다던가 하는 법안 발의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정부에게 의사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쯤이구나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의사 양성에 정부가 보태준 것이 하나 없다는 점이다. 의대는 총 6년 과정으로, 학기당 등록금만 500만 원에 달한다. 의사 한 명 양성에 수천만 원과 수많은 교육인력, 시간이 든다. 그리고 그 값의 지불은 오로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 개인의 몫이다. 나중에 의사가 돼서 잘 살 텐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의사는 사람으로서의 권리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 hush52, 출처 Unsplash


의사가 죄인인가요? 의사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의사들이 환자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의료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이 절실한 이 시국에, 타이밍 맞춰 공공의대를 이야기한 것은 누구인가?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냐고, 도리어 우리가 묻고 싶다. 정부는 알고 있다. 의사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의사들이 악이라 프레임 씌우기는 너무 쉽다. 그러나 실제로 이 상황을 야기한 건 의료계와 단 한마디 협의 없이 4대 악법을 몰아붙인 정부다.


게다가 정부의 대응이 너무나도 일방적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폭력이다. 애초에 정책 추진 자체도 의료계와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았거니와, 의사들의 반발과 파업에 정부는 명령과 고발로 답했다. 병원에서 고용되어 일하는 의사들이 자기 의사에 따라 사직서를 냈다고 고발하는 게 상식적인 처사인가. 파업에 참여했다고 죄인이 되는가. 언제부터 의사는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공공재가 되었는가.


그러니 더더욱 의사들은 물러설 수가 없다. 동료들이 고발당하는 와중에 무섭다고 투쟁을 그만둘 리 없다. 오히려 불을 지필뿐이다. 그러니 정말로 이 사태를 끝내고 의료를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대화해야 한다. 대화는 결론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되 정말로 합리적이고 바른 길이 무엇인지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의료인들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의사들 역시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서 정부가 합리와 이성을 되찾고 대한민국에 진정으로 득이 될 방향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의대생의 부족한 시각으로 쓴 미숙한 글이다. 글의 맥락이 의사 쪽 입장에 치우쳤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생각해 봐 주셨으면 한다. 이 정책을 의사들의 의견을 명령과 고발로 협박하고 억압하고 억지로 추진했을 때 과연 대한민국에 득이 될까?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이 정책이 도움이 될까? 한국 의료는 더 나아질까? 단, 기억해 주셔야 할 점은, 의사들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도 악마도 아니고, 당연히 공공재도 국가의 재산도 아니다. 사람이다. 자기 삶을 한껏 꾸려가고자 노력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의견이 다를지라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도 아니고 한 명의 의대생이 썼을 뿐이라 모자라고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보충 혹은 반박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부족한 식견으로나마 최대한 답변드리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글 읽는 분들 모두가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란다.  


*본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먼저 포스팅 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cjd924/222077200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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