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수 있는 자유

#4

by 복대동불나방

가족들이 내게 불평하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했고, 그게 나 때문이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변명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계속되는 비난에 정말 못 견디겠어서 눈을 질끈 감고 몸서리쳤다.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잠에서 깨고 나면 꿈은 시나브로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꿈의 내용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건, 고운 모래를 양손에 모아 쥐고 버티려 해도 모래가 스르르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알람이 울려서 깰 때면 항상 꿈의 끝이 좋지 않았다. 예전엔 자각몽을 종종 꾸곤 했는데 그때는 꿈의 내용이 생생히 떠올라서 되새기면 재밌었다. 요즘은 좀체 그런 꿈을 꾸진 않는다.


어제 마트에 다녀오고 장 본 음식들로 저녁을 대충 때운 뒤, 침대에 누워서 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세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고, 잠이 오지 않아 일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어스름한 새벽 해가 다시 뜰 때쯤에서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낮잠은 달콤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도 혹독하다.


8시 40분. 강의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충 옷을 추스르고 웹엑스에 접속했다.


30분. 열두 시 반에 찾으러 가겠다고 예약해 둔 김밥집까지 걸어갈 경우 예상되는 시간이다. 수업은 예상보다 조금 빨리 끝나서 덕분에 머리를 감고 얼굴에 비눗물을 묻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호스트께서 동네 맛집이라고 소개해 준 곳인데, 동네라고 치기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래도 이번엔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안 가본 길들을 가볼 수 있었기에 매력적인 위치였다. 찻길 근처로 걸으면서 지나가는 차들의 번호판을 유심히 보았다. 지금 제주도에 관광객이 엄청 많은데 신기하게도 지나다니는 차들의 번호판에는 하, 허, 호 따위가 쓰여 있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피하고 싶었던 계획이 성공한 것 같아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제부터 흐렸던 하늘은 오늘은 기어코 참지 못하고 투둑투둑 빗방울을 떨궈대고 있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왔다면 무척이나 우울한 기분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오히려 비 오는 날도 겪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김밥집에 거의 다 갔을 때쯤 옆으로 초등학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연 잔디로 운동장이 되어 있는 학교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천연 잔디의 초등학교 위로 내가 다녔던 흙먼지가 가득한 서울의 학교가 오버랩됐다. 한 반에 족히 40명은 되는 학교에서 키, 성적 등으로 소팅되고 그 소팅의 상단에 위치하기 위해 우리는 정해진 일정대로 학원을 다녀야 했고, 키 크는데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하고, 비린 우유를 벌컥벌컥 마셔대었다. 중학생 때는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중간, 기말고사는 물론 수행평가라고 부르는 매 순간순간이 평가의 연속이었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한 문제도 틀려선 안됐다. 하지만, 난 그렇게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다. 리코더를 불다가 음계가 한 번 틀리면, 자유투를 던지다 백보드를 맞은 공이 림에 닿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면, 날짜를 착각해 외우지 못한 영어 단어를 적어야 하는 작은 갱지를 볼 때면, 한숨이 나왔고 머릿속엔 실망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초등학교 때 참가한 정보올림피아드에선 학원에서 배운 VBA가 아닌 C로 문제를 풀어야 했고 그때까진 세상 모든 코딩 언어가 VBA인 줄 알았던 나는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울면서 시험장을 나왔다. 중학교 때 참가한 수학경시대회에선 미지수에 아래 첨자가 붙은 것을 처음 보았다. 끝내 시험지에는 이름과 학교 따위의 신상정보 외에는 적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물을 건너 대한민국에 들어온 전인 교육은 ‘anything’이 아닌 ‘everything’이 되어 우리 세대에게 학교에서 보내는 모든 순간이 입시에 반영되는 지독한 추억을 선물하였다.


김밥이 담긴 봉지를 든 손에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귤과 커피로는 부족했던지 기어코 옮긴 숙소까지 호스트 커플의 손에 빵과 귤을 손에 들려 전달해 준 할머니와, 저렴한 가격의 숙소에 김치까지 전해 주는 호스트 커플에게 줄 작은 성의까지 함께 담았던 터였다. 할머니께 김밥을 드렸더니 연신 등을 두드리시며 왜 이런 걸 갖고 왔냐고 타박하셨다. 싫지 않은 타박이다. 그리고 이내 두 봉지를 탄 게 분명한 인스턴트커피를 내어오셨다. 마침 집에는 호스트 커플이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이 좋아서 오다가 만나셨다고 한다. 이렇게 깊은 바다에서 어떻게 스쿠버다이빙을 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니, 직접 해변으로 데려가서 어떻게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친절히 알려주셨다.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차마 빈말로라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진 못했다. 다만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 해초며 물고기 등을 보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상상을 해보며 부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냉장고에서 당근 세 개를 꺼내어 물로 헹구었다. 하얀 말의 이름은 행복이라고 한다. 행복이가 신나게 당근을 씹어댈 걸 생각하니 내가 행복했다.


행복이는 엉덩이를 쭉 뺀 채 얼마 안 남은 풀밭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풀을 골라 뜯고 있었다. 한동안 지켜보니 당근 냄새를 맡은 건지, 인기척을 느낀 건지 고개를 돌려 쓰윽 쳐다본다. 가져온 당근을 손에 들고 휘휘 흔들어 보이니 얼른 몸을 돌려 다가왔다.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교감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귤보다는 당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익숙한 몸짓으로 당근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대기 시작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정신없이 당근 세 개를 먹여주었다. 세 번째 당근을 줄 때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가씨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행복이에게 말을 걸었다. 행복이는 보기보다는 냉정한 녀석이었다. 당근을 주는 내게는 머리를 내밀어 콧잔등과 머리털을 쓰다듬게 해 주었지만 꼬마 아가씨한테는 그 정도의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뾰로통해하는 모습을 보니 당근을 더 가져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음에 올 때는 일곱 개쯤 가져와서 당근을 좀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내가 가져온 당근이 다 떨어진 걸 눈치채고는 다시 풀밭으로 돌아가 먹을 만한 풀을 찾고 있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놈임이 분명했다.


돌아오는 길은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적신 땅과 지각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한껏 열기를 뿜는 태양의 앙상블로 덥고 습했다. 스콜이 막 쏟아지고 난 뒤의 방콕의 뒷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텅 빈 봉지를 흔들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마치 아프리카까지 갈 여비를 플로이에게 다 바치고 돌아선 레오 같아서 우스웠다.


이곳에서 난 매일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 순간 처음 보는 것들과 마주치고 있다. 그 속에서 난 한없이 외롭다. 매일 들어야 할 교육이 있고, 차도 없어서 행동은 제약된다. 난 어쩌면 제 발로 넓고 아름다운 감옥에 들어선 것 같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난 그런 모든 것들을 볼 때마다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살펴보고, 나의 미래를 어렴풋이 계획하고 있다. 나는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이곳에서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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