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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가연 Feb 09. 2021

크레이지 꽃 레이디

식물 중독의 시작

언제부터 칩거를 계속했는지조차 기억이 흐릿한 요즘이다.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취미를 시도했다. 그렇게 코로나 3종 마약에 빠지게 되었다. 보석 십자수, 뜨개질, 그리고 원예. 원예에는 가장 최근 취미를 붙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취미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뜨개질을 시작하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직물을 뜨고 싶어진 것처럼, 화분을 하나 들이곤 온 집안의 빈 곳에 옆록소를 뿌리고 싶어졌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제일 처음 들여온 화분이 하필이면 초대형 아레카야자였다. 정말 우연한 시작이었다. 점쟁이로부터 집에 나무를 두면 운이 좋다는 이야길 들었고, 비염이 심한 터라 공기정화식물 하나쯤은 두고 싶었다. 그렇게 아레카야자를 골랐다. 기왕 집에 들이는 거 비싼 걸로 하자고 개업 선물용인 대형으로 골랐다. 일주일 뒤 문짝만큼 큰 화분이 도착했다. 듬직한 자태를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쟤는 전입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바닥면적을 저만큼 차지하면서 월세도 안 내다니.


동봉된 설명서를 보니 일주일에 한 번 겉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라고 적혀 있었다. 초보답게 일주일에 한 번, 일단 많이 물을 주었다. 곧 푸르던 잎이 시름시름 마르기 시작했다. 잎이 마르니 물을 더 많이 주었다. 그러니 더 메말라갔다. 심지어는 지렁이며 벌레도 뱉어 냈다. 아무리 물을 줘도 말라가기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식물이 마르는 원인은 과습이었다. 지금 보면 흔한 초보의 실수지만, 식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초대형 화분을 들여왔으니 뻔한 결과였다. 

반려동물 중 똥 안 싸고, 냄새 안 나고, 털 안 날리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물을 들이면서 번거로움을 회피하긴 불가능하다고. 식물도 똑같았다. 벌레 안 생기고, 잎 안 떨어지고, 과습 안 오는 식물은 세상에 없었다. 그저 한 생명이 살아있다면 당연히 번거로움은 따랐다. 지금 그 아레카야자는 잘 자라고 있다. 겨울도 잘 지냈다. 요즈음 날씨가 살짝 풀려서인지 계속해서 새순이 돋고 있다. 옆을 지나갈 때마다 잎사귀로 뺨을 때려대니 그만 좀 컸으면 좋겠지만서도 참 기특하다.

최근 여러 사건을 겪었고 이제서야 생활이 안정되었다. 방 구조를 싹 바꾸었고 새 화분을 들였다. 식물을 키우는 건 참 어이없다. 예상치 못한 죽음도 있다. 그러나 매일 관찰해주고 잎이 말하는 대로 물을 주면 알아서 대체로 쑥쑥 큰다. 과도한 걱정으로 물과 비료를 퍼 부으면 오히려 말라죽는다.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로서 적당한 거리를 둔다. 내가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기보단 식물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더 잘 산다.

가끔 살아있기도 버거운 날이 있다. 체내에서 지속되는 생화학작용조차 어렵고 답답한 날. 나도 똥 싸고, 냄새나고, 털 날리는 짐승이기에 씻고 밥 먹어야 하는데 그 조차 힘든 날. 그럴 땐 키친타월에 물 조금 묻혀서 잎사귀를 닦는다. 먼지 엄청 나온다. 다 닦아주고 나면 반질반질하다. 가지치기의 흔적이 밑동에 남아 있다. 쌓인 먼지만큼, 잘라낸 잎사귀만큼 시간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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