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1일 차
재수해서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다.
기대한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서, 기숙사가 떨어져서 생각해보지도 않은 자취를 시작한다.
부랴부랴 부모님과 2주 전에 올라와 방을 계약하고, 이것저것 채워 넣은 덕에 막막한 채로 혼자 올라오지는 않았다. 어제는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혼자 짐을 챙기고 필요한 것들을 미리 체크해 두었다.
자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혼자 사는 것에, 집을 떠나는 것에 싱숭생숭한 마음이 가득했다.
나중에 놀러 오겠다는 가족들에게는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다.
왔다 ‘가는’ 게 나는 싫다.
왔으면 데리고 가지, 왜 내버려 두고 가.
이별하는 건 어렵다. 이건 아무래도 우리 집안 내력이다. 할머니와 엄마, 나까지 이어지는 이별의 무게는 우리를 모두 눈물짓게 한다. 지난 목요일에는 할머니집에서 밥을 먹다 엄마, 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넷이서 울어버렸다. 정확한 눈물의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린 눈물 고인 얼굴을 마주 보며 헛웃음 짓는 걸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들 참, 손녀 대학 간다고 이렇게 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을 거야.
어제 짐을 챙기는데 할머니가 전화 오셨다. 엄마아빠도 없으니 떠나는 날 아침에 할머니 댁에서 밥 먹고, 할아버지 차 타고 공항을 가라고 하셨다.
그 말에 씩씩하게 짐을 챙기던 나는 또 울어버렸다. 그리고 할머니께 할머니, 할아버지 보면 다시 울 거 같아서 그냥 혼자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오빠는 이미 일주일 전에 올라갔고, 부모님은 여행 간 텅 빈 집, 정리되지 않은 짐이 가득한 방 안에서 한참 눈물을 흘렸다.
엄마와 저녁에 통화하며 왜 눈물이 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도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라고, 아예 소리 내어 크게 울어버리라고 했다. 영상통화하는 내내 울컥울컥 했다. 엄마한테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아마 눈치챘을 거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어젯밤에 적어둔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집과 짐을 정리했다. 꾹꾹 눌러 담은 캐리어와 백팩을 들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과 얘기를 하다 “집 떠나 고생한다. 엄마 아빠가 해주는 밥 먹다 혼자 해 먹게 생겼네?”라는 말을 들었다.
맞지, 이건 고생이다.
수하물을 부치고 수속하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엄청 긴 줄을 서게 되었다. 심지어 속도 조절차원에서 수속을 중단하기도 했다. 무거운 백팩을 지고 겨우 비행기 탑승구 앞에 와서야 한숨 돌렸다.
한국이라 누가 내 짐을 가져가진 않겠지만, 혼자라서 인지 짐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망설여졌다. 탑승해서는 작은 키로 낑낑대며 겨우 무거운 짐을 좌석 위 선반에 올렸다.
착륙한 후엔 빠르게 백팩을 메고 수하물 벨트로 갔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혹여 캐리어가 그 사이에 나올까 봐 꾹 참고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유독 오늘따라 캐리어가 늦게 나왔다. 이건 기분 탓이 전혀 아니다.
암튼 난 캐리어를 찾고 공항 구석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한 후에야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자취방까지는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낯선 풍경을 보며 버스를 한 번 환승하고 1시간 정도를 달렸고 내려서는 다이소와 약국을 들렀다. 그 후에 양손에 짐을 든 채 낑낑대며 마을버스를 탔다. 총 3대의 버스를 타고서야 겨우 자취방에 도착했다.
냉기가 흐르는 낯선 자취방에 보일러를 켜고 짐을 풀어 정리했다.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아침부터 뭘 먹지도 못한 채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자취방 정리를 하고 5시에야 라면으로 첫 끼니를 해결했다. 원래 라면 되게 좋아하는데,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기숙사, 자취방에 입주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러 온 가족들을 많이 마주쳤다. 괜히 우리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져서 영상통화를 했다. 아마도 몇 주는 매일 얼굴을 봐야 될 것 같다.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고향 떠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진짜 보고 싶다.
이제 막 재수라는 고등학교 4학년 생활을 마친 나는 안전하고 따뜻했던 둥지를 벗어나 혼자살이를 시작한다. 순식간에 방을 구하고, 본가에서 짐을 옮겨 왔다. 나도 아직 어색한 공간을 내 물건들이 하나둘 차지했다.
자취는 상상도 안 했는데, 사람 사는 거 생각대로 안 된다는 말이 참이었다.
유튜브 썸네일로 봤던 ‘드디어 자취의 꿈을 이루다’라는 멘트는 나랑은 안 어울리는 소감이었다.
향수병에 매일 밤 울 까봐 걱정이다. 혼자된 서러움을 느끼고, 이 글을 다 쓴 후엔 깜깜하고 낯선 이 방에서 홀로 잠들어야 한다. 침대에 누워도 바로 잠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집에 있을 땐 다 큰 줄 알았는데, 집 밖에 나오니 아직도 아이였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연약한 갑각류는 성장과정을 거칠 때 단단한 껍질을 탈피해서 한껏 연약해진 상태로 성장한다고 했다.
나 또한 생각지 못한 자취에 연약해지는 나를 마주한다. 이 역시 더한 성장을 하기 위함일까. 예상치 못하게 혼자가 되어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이 성장통과 외로움도 나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라고 위안하며 이 너울을 잘 넘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