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을

널 사랑하지 않아.

by 자유지은



"널 사랑하지 않아. 이제 그만 헤어지자."


그녀가 제시한 이별의 이유는 명료했다. 유난히 또박또박 들리는 그녀의 말에 남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그녀는 대답이 없었고, 남자는 그녀의 마음이 돌아선 이유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지 말고 섭섭한 거 있으면 그냥 얘기해."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냥 너에 대한 내 사랑이 끝난 것뿐이야."


그녀의 말끝에서 그 어떤 슬픔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남자의 귀에 닿을 때면, 모든 단어가 바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산산이 바스러져있었다. 반박할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는 그녀의 이별통보에 남자는 슬픔보다 고통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마주 앉은 그녀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지긋이 깨문 입술, 테이블 끝에 고정된 시선...


그 모습을 본 순간 남자는 온몸의 수분이 전부 증발해버린 것처럼 극심한 갈증과 함께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붙잡아도 아무 소용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냥 그렇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함께 거리로 나왔을 때 두 사람은 카페 문 앞에서 어색하게 마주 섰다. 거리는 온통 가로수의 낙엽들로 뒤덮여 있었다. 바람결을 따라 이쪽저쪽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낙엽들의 부지런한 숨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할 말을 찾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녀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남자의 발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가."


"……."


남자는 그녀의 마지막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별 한지 꼬박 이틀이 지났다. 남자의 핸드폰은 평소보다 유난히 더 조용하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보며 알림음 설정을 확인해보지만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잘못한 게 없었는데 너무 쉽게 이별을 받아들인 게 유일한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남자는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불현듯 찾아온 이별의 순간엔 도무지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달리 어쩔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바보처럼 괜찮은 이별을 연기했다. 그리고 남자는 지금 전혀 괜찮지 않다.


"어제 술 마셨어요? 오늘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이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환절기라 몸이 좀 으슬으슬한가..."

남자는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은지 말꼬리를 감추며 둘러댄다. 그러고는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를 되뇌다가 '괜찮지 않다'는 것만 더 확인하는 꼴이 되었다. 남자가 괜찮지 않은 데엔 명백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녀가 떠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남자를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