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고 난 후에

그는 정말 몰랐던 걸까

by 자유지은


"자기야~ 우리도 꽃구경 가자."


여자의 목소리는 벌써부터 한 톤 높아져 있었다. 그런 여자의 기대와 달리 남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너무 짧고 건조했다.


"그래."


남자의 시선은 식당 벽면에 걸린 텔레비전 야구 중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자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주부터 벚꽃 축제라던데, 다음 주에 비 온대. 우리 이번 주말에 갈까?"

남자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야구 경기의 이닝이 종료되자 되물었다.

"이번 주? 이번 주말은 우리 팀 홈경기라 보러 가야 되는데..."


"또 가?"


여자의 날 선 말투에 남자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주까지만. 어차피 다음 달부터는 일 때문에 바빠서 못 보러 가잖아."

남자의 말에도 여자는 지지 않았다.

"그럼 나는. 작년에도 자기가 야구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다 양보했잖아. 난 1년 기다린 건데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야?"


"이번 주 티켓 정말 힘들게 구했는데 이번까지만 좀 양보해주라. 응? 꽃은 다음 주에 보러 가도 되잖아."



남자의 말은 꽤나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작년에도 비슷한 말을 수십 번 들었던 여자는 이제 그때처럼 순순히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도 봄날의 벚꽃놀이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였다.

"글쎄, 다음 주에 비 많이 와서 이번 주말 지나고 가면 꽃 다 떨어질 거란 말이야. 야구는 1년에 100 경기도 넘게 하는데 이번 주가 아니라도 되잖아. 내가 뭐 하자고 하면 만날 바쁘다고 하면서 야구는 잘만 보러 가고..."


여자는 그동안 섭섭했던 일들이 떠올랐는지 거의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괜찮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한 거지. 이렇게까지 가고 싶어 하는 건지 몰랐지. 미안, 미안해. 근데 벚꽃만 꽃은 아니잖아."


남자는 여전히 여자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단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벚꽃길의 낭만을, 그 로맨틱한 순간을 친구가 아닌 그와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겨울과 봄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온 세상에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도 여자의 마음에 완전한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이별하고 말았다. 주변에서는 야구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와 헤어지고도 여자는 한참동안 곰곰히 생각하곤 했다.


그는 정말 몰랐던 걸까. 그 꽃은 그냥 벚꽃이 아니었다는 걸.
꽃이 지고 난 후엔 그 길을 찾는 사람들도, 그 의미도 사라진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걸까.





야구 시즌이네요.

참고로 저는 무적LG트윈스의 평생회원입니다. ^-^

픽션인데 오해하실까봐 살짝쿵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