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흔들리는 마음이 아니라 지쳐버린 마음이라고 적고 싶었는데, 왜 인지 흔들리는 마음이라고 적었다. 어제는 7시 반에 솔이 재우며 같이 잠들어 버렸다. 오늘 아침 7시에 일어났으니 12시간을 내리 잠만 잤다. 새벽에 남편이 나간다고 가방을 둘러메고 들어와 인사할 때 잠시 깨곤 꿈도 안 꿨는지 기억도 없이 잠만 잤다.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실눈을 떴을 때 훌러덩 올라온 티쳐츠에 왼쪽 젖가슴이 그림 그려놓은 듯 나와 있었다. 왼손은 또 바지춤에 꼽고 자다 일어난 내 모습을 마주하며, 아 남편아 이것만은 제발 보고 가지 말았어야지 하는 탄식을 내뱉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어젠 정말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큰 날이었다. 그래서 아마 7시 반쯤 되었을 때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꺼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요 며칠 인간관계에 마음이 지쳐 가을 하늘 보면서 어깨를 축 떨군 날들이 많았는데 어제는 고개도 못 든 날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건 솔이 이야기였다. 6월쯤 유치원에 나가기 시작하고 7월쯤인가 솔이가 그랬다. '선생님은 날 안 좋아하나 봐' _ 그때는 뭐 선생님이라고 모든 아이들이 다 사랑스럽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넘겼다. 그런데 어제저녁엔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이 나만 혼낸다고. 그래서 정말 솔이만 혼내냐고 물었더니, 음 다른 아이들도 혼내긴 하는데 나보다는 덜 혼낸다고 말했다. 그리곤 오늘 내가 먼저 민호 앞에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 보고만 맨 뒤에 가라고 해서 속상했다고 울먹였다. 또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친구가 뺏어갔는데 그 친구는 안 혼내고 나를 혼냈다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나도 속상했다. 솔이가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든 과장이든 나는 속이 상했다.


많이 속상했겠네라고 위로하고 엄마가 선생님한테 무슨 일이었는지 한 번 여쭤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고민이다. 말 꺼내기가 정말 쉽지 않아 다음 날인 오늘까지 마음이 무겁다. 내 아이만 이뻐해 달라는 걸로 비치면 어쩌지? 괜한 오해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래서 솔이한테 나쁜 영향이 가는 건 아닐까? 내내 그런 생각만 하게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네이버 지식인에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내 아이가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모든 아이들에게 평균적인 사랑과 관심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아이가 미움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건 선생님의 실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꺼낼까 말까 계속해서 고민만 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남편과 어제저녁엔 작은 한 판을 했다. 아마 여기서 내 남은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7시 반에 기절했겠지. 낮에 시어머니 전화가 그 도화선이었다. 시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신다. 어머니 그림 선생님이 언젠가 우리 결혼식 부케 사진을 달라고 해서 전해드렸던데 그 그림이 완성됐다며 번호를 줄 테니 감사의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제가요?'라고 되물으며 그 이유를 여쭤보았다. 너무 예쁘게 잘 그려주셨으니 전화 한 통 하라시길래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여전히 왜 전화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결혼식 부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리지도 않았고, 그 부케가 그렇게 소중하고 상징적이지도 않다. 결혼식 액자를 벽에서 떼어낸 지 벌써 5년도 넘었다. 그리고 그려주신 그림을 우리 집에 걸고 싶지도 않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유명한 그 그림 선생님이 우리를 생각해 주신 게 나는 하나도 달갑지 않고, 그러니 전화 한 통 드리는 게 그렇게 싫은데도 나는 그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허니도 자라면서 이런 일 많았겠네? 허니는 그럴 때마다 영문은 모르지만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으로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뿌듯해하셨다는데, 그 말을 하면서 그냥 한 번 해치워버려라 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그럼 허니가 그 선생님한테 전화하라고 말하니 남편이 갑자기 화가 났는지, 그래 알겠다. 지금 할게, 내가 할게, 그래 지금 할게 라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그런 것도 하나 못하냐는, 그게 뭐 그리 힘들고 대단한 일이냐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아닌척하면서 지금 당장 전화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나는 포도랑 사과 접시를 내밀다 말고 정색하면서, 왜 그리 공격적으로 말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뒤돌아서 설거지를 하고 씻고 솔이랑 잠들어버렸다. 내가 이 남자랑 결혼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얼마나 고개를 많이 숙이고 다녔는지 알기나 하냐면서,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다 하고 또 생색은 얼마나 많이 듣고 지냈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전화 한 통 안 한다고 그렇게 쏘아붙일 일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열불이 난다.


내가 어머니 그림에 사실 조금 예민하다.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다. 솔이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남편이 출산 휴가를 5일 받았는데, 마침 그때 어머니 그림이 전시회에 걸렸었다. 근데 5일이나 쉬면서 어머니 그림 보러 안 왔다고 조리원에 있는 나를 혼내셨던 분이다. 그때도 시아버지께 전화를 해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하셨었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뚜뚜 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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