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남편은 솔이를 재우고 나와 진이 빠졌는지 맥주잔을 들고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일본 놈들은 일은 정말 못한다는 말을 하며 메일을 적었다. 주인이 어떤 놈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좋다고 헤헤 거리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강아지처럼 나는 그렇게 남편 옆에 잠시 앉아있었다. 나 좀 봐주라 하는 눈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남편의 오픈마인드를 기다렸지만 김 허니는 끝까지 나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뚜뚜가 무슨 진을 저렇게 빼놓았길래.



어제저녁엔 솔이를 일찍 재우고, 뚜뚜를 남편에게 맡기고 요가 학원엘 다녀왔다. 그래도 딱 잠만 재우면 되도록 목욕도 시켰고 분유도 먹였고 뭐 다 했다. 완벽하게 배게 위에 눕히기만 하면 끝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문을 나섰다. 하지만 뚜뚜는 잘 생각이 없었는지 잘듯 말 듯 하면서 두 시간을 더 놀다가 내가 들어오기 직전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맥주캔 따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뚜뚜 깨면 어쩔 거냐며 남편은 속삭이는 듯 큰소리를 쳤다. 치 _ 누군 뭐 애 안 재워봤나. 그걸 맨날 하는 사람도 여기 있구먼. 무슨 호들갑.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오늘 남편과 수다를 떨고 싶었다. 뭐 동네 애기 엄마 이야기나 요가학원 이야기, 남편의 회사 사람들 이야기나 부자가 되는 이야기 뭐 그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 속에 오가는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순환이 잘 안 되고 있다. 남편과 특히 둘이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면 나도 무서운 호랑이 엄마 탈도 벗고, 육아고 집안일이고 똑 부러지게 하는 야무진 똑순이 엄마 탈도 벗고, 그러면서도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잘 해내는 아내 탈도 벗고 _ 뭐 일단 다 벗 어재 끼고 말을 하다 보면 정말 힐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제는 그러지 못했다.




요가 지도자 과정은 일요일에 여덟 시간 교육, 주중 최소 3회 이상 요가원 수업을 들으며 수련을 해야 한다. 근데 거의 3주째 수업을 못 듣고 있다. 다행히 일요일에는 친정엄마가 와 주셔서 별 걱정 없이 집중할 수 있는데, 평일에는 뚜뚜 데리고 요가원에 가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수련을 못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또 뚜뚜를 데리고 오가자니 뚜뚜에게 너무 미안해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그러니 애들 일찍 자는 날에 부리나케 갔다 오는 수밖에 없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스치는 그 생각을 붙잡고, 그래도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가 육퇴를 했다면 내 전화를 받겠지? (베프와 감정싸움 중)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어 담백하게 그 집 애 이야기, 우리 집 애들 이야기를 나눴다. 남의 집 애는 정말 빨리 큰다. 돌잔치 갔다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돌이 다돼간다니, 뚜뚜는 태어났다고 조리원에서 전화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긴다며 낄낄거리며 전화를 했다.





친구는 부럽다고 했다. 애들 재우고 운동이라니, 자유시간을 맘껏 누리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_ 아, 너마저.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3주 만에 탈출하듯이 나와 운동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액셀을 밟고 있는데 나를 자부라 칭하다니.(자부:자유부인)

허탈한 마음 뒤로 아, 그 집에 가 벌써 두 돌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가을을 타고 있다.

외롭다면 지금 내 상황에 너무 안 어울리려나? 그냥 마음에 차가운 바람이 스친다. 가을이 주는 의미 때문일까? 아니면 늘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는 일상 때문일까? 육아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가? 허허 무튼 요 며칠 마음이 그랬는데 친구도 남편도 허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부지런히 순간을 기록해야지.



차가운 바람이 스친다. 내일은 솔이 숲 놀이터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이다. 따뜻한 아침밥 챙겨줘야지.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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