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무릎 담요를 발바닥까지 휘감은 채 '그냥 아무 글이나 써보자' 이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담요가 얇긴 하지만 그래도 몇 번을 휘감으면 꽤 온기가 돌만도 한데 김 허니와 내가 서재 겸 옷방 겸 창고 겸 쓰는 이 방엔 보일러가 안 돌아서인지 뭘 해도 춥기만 하다. 솔이 자는 작은 방도, 뚜뚜가 자는 큰 방도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그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하다.
남편은 솔이 재우며 기절했고, 나는 뚜뚜를 재우고 설거지를 했다. 젖병 네 개도 씻어 놓았다. 점심 이후로 젖병 네 개가 나왔구나. 몇 개는 텅 비고 몇 개는 분유가 남아있다. 영유아 검진할 때 의사가 절대 하루에 1000ml는 넘기지 말랬는데, 넘기지 않았겠지? 그럼에도 중이염을 겪고 다시금 입맛을 찾아 매번 쪽쪽 빈 젖병 무는 소리를 내는 뚜뚜가 귀하기만 하다. 중기 이유식으로 잘 넘어와 아침저녁으로 쪽쪽 받아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솔이 어릴 때는 육아 서적대로 키우다 보니 언어 자극을 준답시고 한 시도 안 쉬고 솔이 옆에서 쫑알쫑알거렸는데, 뚜뚜는 그저 바라보며 웃고만 있게 된다. 가끔 솔이 챙길 때는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른 채 아침시간이 지나기도 하지만 눈만 마주치면 배시시 웃어대는 뚜뚜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며 가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런 뚜뚜도 요즘은 잠투정이 늘고 새벽에도 몇 번이나 깨 칭얼거린다. 오늘 밤도 그러하겠지 생각하며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젖병을 씻고 치발기들을 씻어두었다. 언제 또 엥~ 하고 울어댈지 모르니 일단 씻기부터 하자, 급한 마음에 화장실에 들어와 바지도 윗옷도 팬티도 훌러덩 벗고 보니, 아 맞다 _ 오늘 낮에 뚜뚜 목욕시키고 나도 샤워를 했었지.
아까 양치도 미리 했으니 세수만 하면 되는 상황에 홀라당 다 벗어재끼기부터 한 내가 거울 속에 있다. 누가 켜놨나 싶은 환풍기에 금세 닭살이 돋는다. 급하게 팬티만 입고 세수를 하는데 쳐지지도 않는 작은 가슴이 보인다. 지금 이 몸에 수술하면 밥그릇 엎어놓은 거 마냥 흉하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세수를 끝마친다.
요즘은 자주 뭔가를 까먹는다. 쓰던 걸 자꾸 써서 그렇지 마스크는 안 까먹고 잘 챙기는데 휴대폰을 놓고 나온다던지, 차 키를 놔두고 온다던지, 요가매트 뭐 이런 것들을 놓고 와 신발 신은 채로 까치발로 집 안을 걸어 다니기도 한다. 솔이한테는 나가기 전에 뭐 챙겨라 뭐 해라 뭐 해라 잔소리를 엄청 해대는데 정작 내가 매번 뭔가를 빠뜨리는 요즘이다.
오늘 하루도 뒤돌아보면 너무 정신이 없었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고, 아 이런 부분은 나이가 들어도 늘 어렵기만 하다 이런 느낌도 들었다. 애 둘을 키우는 건 참 익숙해지지가 않는구나, 그래도 오늘은 심술은 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뭐 이런 날이었다. 솔이 리듬체조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솔이가 불러 준 돼지 삼 형제 노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조차 잊고 바보처럼 또 불러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며 웃어댔다.
글도 모르는데 어찌 노래 가사는 저렇게 잘 외울꼬, 음도 안 까먹고 부를 때마다 어찌 저리 정확하고 앙증맞을꼬. 그 생각을 하며 내가 무슨 글을 쓰려고 담요를 둘둘 말고 이 오밤중에 여기 앉아있을까? 그 생각을 한다. 나는 요즘 도통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