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고부갈등은 언제나 부부싸움으로 이어질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이 시간에 배가 고프니 당혹스럽다. 며칠이나 집 밖에 안 나갔는지도 모르게 집콕을 했더니 씻어도 씻은 건지 모를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밖은 그렇게 춥다는데, 계속되는 한파에 남편은 퇴근 길마다 귀가 빨개져 집으로 온다. 지난번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엔 눈썹이 얼었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었지. 하지만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는 날들은 때론 사막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고 얼음찜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싹트는 봄이 온 것 같기도 하고 바깥처럼 바람이 세차기도 하다.


솔이는 12월 중순에 갑자기 방학을 했고 삼월 언제쯤 개학 예정이다. 긴 방학을 엄마와 뚜뚜와 집에서 보내고 있다. 좋아하던 리듬체조 학원도 문을 닫았고 매주 오시던 학습지 선생님도 지난달엔 건너뛰었다. 하지만 솔이가 제일 좋아하는 역할놀이를 쉼 없이 할 수 있고 집에 작은 피아노도 생겼고 모래놀이 장난감도 생겼다. 팝아티라고 뭐든 만들 수 있는 비즈 놀잇감도 생겼고 전집도 두 세트나 생겼다. 나와 솔이는 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Winter is coming. (왕좌 버전)









오늘 저녁엔 젖병까지 다 씻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는 길에 줄넘기를 챙겼다. 솔이 것도 챙겼다. 솔이는 백 개, 나는 천 개만 하고 오자 말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정말 춥긴 추운 날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손 닦으려고 챙겨 간 물티슈 한 장이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와 그 찰나에 얼어버렸다. 그 말을 하며 솔이와 뛰었다. 이왕 나온 김에 좀 뛰고 가자고. 그렇게 하나 둘하나 둘 구령을 외치며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종종거리며 뛰었다. 솔이는 진짜 줄넘기 백 개를 했고, 나는 오백 개 만 하고 말았다. 천 개를 할 수도 없을 것 같았거니와 왈칵왈칵 쏟아지는 소변에 더 뛰고 싶지 않았다. 의자에 걸터앉아 솔이 줄넘기 개수를 세면서 생각했다. 아니 그냥 힘이 좀 빠졌던 거 같다. 지워져 버린 출산의 흔적을 마주하며.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렸다. 글을 적으며 무작정 시어머니 욕만 담고 싶지 않아서, 이성을 찾으려 무던히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러면서 남편과 정말 많이 싸웠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영문도 모르는 남편에게 나는 냉탕과 온탕을 미친 여자처럼 오갔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도 새 해를 맞이하고서도 나는 남편에게 쌀쌀맞게 굴었다.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을 잡았고 비꼬았다. 성숙이라곤 모르는 여자처럼 서른다섯을 지나 서른여섯의 해를 맞이했다.


지난 주말, 외출하고 돌아와 솔이 저녁 챙겨 줄 생각은 안 하고 같이 티브이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세상 한심하고 철딱서니 없는 사람 대하듯 쏘아붙였다. 남편이 그렇게 핀잔주듯 말하지 말라고 했을 때 나는 남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한숨 쉬며 말했다. 핀잔주는 거 맞다고,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편을 긁었다.





아 _ 도대체 왜 고부갈등은 언제나 부부싸움으로 이어질까?









지난달 시부모님이 서울에 한 동안 와 계셨다. 요가 자격증 시험일에 맞춰 솔이랑 뚜뚜를 돌봐주러 오셨다. 덕분에 부족했던 공부도 했고 시험 준비도 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결과도 얻었다. 그런데 시부모님들이 부산으로 돌아가신 후로 나는 밤잠을 못 이뤘다. 분하고 서럽고 아니꼬워서 참을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며칠은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남편을 보면 이가 갈렸다.


육아 스트레스였는지 뭐였는지 몰라도 시어머니는 내게 상처되는 말만 쏟아내고 가셨다. 원래 이런 분이셨나 몇 번이나 생각하게 할 정도로 놀라운 비아냥거림도 여우짓도 하고 가셨다. 나는 지금도 그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같이 참지 말 걸 참아야 되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날 정도다. 말 그대로 고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고부의 갈등이 서럽고 화가 나는 건 내가 이 집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 민낯을 마주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가 생각하는 며느리가 곧 모든 가족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일 테니. 아마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내려가신 후에 서러움을 넘어선 분노 같은 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온종일 화가 가시지 않은 날도 있었다.







[며느라기]는 웹툰이나 드라마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남편은 이게 다 나의 자격지심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도 한 때는 내가 문제인가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이젠 아니다. 내가 느끼는 게 그렇다면 그게 맞는 거다. 어머니는 너무 많은 실수를 하셨다. _ 어머니 욕을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지만 겉과 속이 다른 건 어머니의 잘못이다.


무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고부갈등이 자꾸 부부싸움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그냥 남편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었다. 어머니가 내게 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비아냥거리며 너네 엄마가 이렇게 유치하게 날 엿 먹였다 똑같이 유치하게 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머니한테는 연락 안 하는 거, 오는 전화를 사무적으로 받는 거, 뭐 이런 식의 남은 알지도 못하는 분풀이만 하고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고 있다. 이런 나 자신이 바보 같고 속이 터져 남편한테 더 화가 난다.


언젠가 새벽같이 뚜뚜를 재우며 말했다. '요즘 내가 허니에게 좀 딱딱하지?' 남편은 그렇다며, 그런데 자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곤란해하길래 _ 그래 네가 무슨 죄냐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마음도 잠시 날이 밝고 남편 얼굴을 보니 또 울화가 치민다. 발이라도 걸어 넘어뜨리고 싶을 정도로 심통을 난다.






지난 12월 31일, 닭 두 마리를 시켜 화기애애하게 설거지 안 해도 되는 저녁을 보내며 남편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단순한 사람이라고, 허니랑 싸우면 어떻게 해서든 허니랑 풀고 사람들이랑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풀거나 그게 어려우면 아예 안 보고 넘어가는 게 나라고. 일단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나라고. 그게 안되면 될 때까지 마음앓이를 한다고. 근데 시부모님들과의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오래도록 지겹도록 나를 힘들게 한다고. 그리고 너도 힘들게 한다고.


나도 허니한테 화 안 내고 싶고 허니랑 싸우기 싫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깨기는 싫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할라피뇨가 잔뜩 올라간 푸라닥을 먹으며 울며 말하며 별걸 다 했다. 근데 그렇게라도 말을 하고 보니 마음 한편이 좀 시웠했다. 그래 이렇게라도 들어주는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남편은 말했다. '나도 장모님한테 서운한 게 있는데.....'


뒤로 안 돌아보고 듣지도 않았다. 아 _ 너도 참고 살고 있으니 나도 그렇게 하라고?

정수기 앞에서 냉수를 내려 마시며 생각했다. 고부갈등이 왜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다 그럴만하니 그런 거겠지.


이 글은 결론이 없다. 뭐 마무리 지을 멘트도 생각이 안 난다. 남편은 뚜뚜 재우러 들어가 잠들었고 솔이는 줄넘기하고 꿀잠 자고 있다. 나는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끼고 노트북 앞에 앉아 이 글을 적고 있다. 내일 아침엔 소고기 구워 솔이 밥 줘야겠다. 간식으로 고구마 삶고 냉장고에 오래된 반찬들은 모아서 버려야지, 솔이 새로운 전집이 곧 올 테니 책장 정리도 마무리하고 뚜뚜 새로운 간식도 좀 만들어야지. 참 냉동실에서 고등어도 한 마리 꺼내놔야겠다.




잠이나 자러 가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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