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네 생각이고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남편은 분리수거하러 나갔다. 나는 양치질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각자 솔이 재우고 뚜뚜 재우고 나와 콘푸레이크를 말아먹었다. 바나나 쫑쫑 썰고 견과류 넣어 야무지게 먹었다. 애들 재우고 나오면 꼭 이렇게 허기가 진다. 콘푸레이크 딱 한 그릇이 육아의 허기일 텐데 먹으라면 뭘 더 못 먹겠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생리 전이라 그런지 식욕이 폭발하고 있다. 요즘은 회가 그렇게 당기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네 나 참.


곧 있음 남편의 생일이라 무얼 할까 고민하면서 이 시국에도 남들은 다 한다는 호캉스 한 번 가볼까? 솔이를 재우고 옆에서 호캉스를 검색한다. 가격을 보니 호캉스는 안 되겠다 싶어 온천을 검색하니 그건 또 성에 안 찬다. 어! 무슨 12시간도 못 있는데 일박 이일도 아닌데 왜 이래 가격이 비싼지 이 돈이면 뭐도 하고 뭐도 하고 할 텐데 싶으면서도 산전망 도시전망 한강 전망을 고르고 있다. 욕조가 크면 가족탕 왔다 치고 놀 수도 있으니 방을 좀 큰 걸 할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조식이 빠지면 안 되지 싶어 조식까지 포함하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두 달치 생활비가 그냥 훅 날아간다. 멈추자 멈추자 여기서 멈추자.


그렇게 호캉스 생각은 멈추고 유튜브에서 '그건 네 생각이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검색한다. 설거지하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이 노래를 틀길래 가사가 너무 찰떡이라 나도 모르게 꺼이꺼이 웃으며 이유식 스파츌라를 흔들어댔다. 솔이도 나도 남편도 흥에 겨워 몸을 흔들어대고 뚜뚜는 뭔가를 막 빨면서 번갈아 우리를 바라봤다. 리듬도 너무 좋고 가사가 끝내주는 노래다. 오늘의 모든 피로가 이 노래 한 곡으로 다 씻겨 내려가는 느낌.

그렇게 기분 좋게 저녁을 마무리하고 남편과 콘푸레이크를 먹으며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아 정말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어도 내 스타일이다. '그건 네 생각이고'








참 좋다 좋다라고 말하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아까 이 노래를 튼 이유가 있다고 _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라 꼭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데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오늘 낮에도 설거지하면서 이상하게 설거지만 하면 뭔가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것 마냥 속으로 시어머니 흉을 보고 있다. 그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불만 차댔던 그 모든 일들에서 했어야만 하는 말들을 혼잣말로 무슨 연극하듯이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도 그랬다. 뚜뚜 젖병 씻을 때는 정말 빠져들었는지 솔이가 부르는 말도 제대로 못 들었다. 하 _ 중학교 때도 내 방 거울 보면서 낮에 못한 말들을 혼자 중얼거렸었는데 서른을 한 참 넘어서도 이러고 있다.



타고나길 소인배로 타고났다 생각하련다. 무튼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여전히 시부모님들 전화에 불편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무언가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뭐 굳이 풀어보자면 시부모님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너무 속 태우지 말고 우리 갈 길 가자 _ 이런 말이겠지. 그렇다고 모든 감정들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래 쓸데없이 괜한 에너지 쓰는 것보다 그 시간에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 좀 더 집중하면 내 인생이 행복하겠지 생각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니. 방금 이 문장을 쓰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털어버리자 진짜 마음먹는다. (언제까지 갈지 확신할 순 없다.)



벌써 열두 시가 넘었네, 얼른 솔이 옆에 가서 자야겠다. 분리수거 끝내고 씻고 돌아온 남편이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생일 선물 미리 주면 안 되냐고.

지난 내 생일 때 받은 에어 팟 프로가 갖고 싶었는지 그걸 사 달래서 미리 사놨더니 개코같이 눈치채고 저런 말을 한다. 생일 때 미역국도 안 끓일 건데 줄 선물까지 미리 가져가면 생일날 내가 쥐고 있는 패가 아무것도 안 남을 거 같아서 안된다고 말했다. 내 생일 때 받은 똑같은 선물을 다시 하려니, 내 생일의 감동이 줄어드는 거 같아서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나지만 안 줄 수는 없는 노릇.








오늘의 평범하고 소소한 그렇지만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며, 이만 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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