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 지난날 언젠가 쓴 글일 텐데 그때의 그 마음이 너무 고스란히 전해져 읽고 또 읽는다. 도대체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
모래를 씹으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해본다. 삶이 재미가 없달까 애들 크는 거 맞춰 살다 보니 정신없이 하루가 가는데도 넋 놓고 차 창 밖을 바라본다. 지난주 일요일 요가 수업을 하면서 생각했다. 감정 소모가 너무 큰 시간들이었다고, 해 바뀌고 눈 내리는 입춘이 지난 지금까지 너무 지쳐버린 기분이 들었다. 지난달 도시가스 비가 30만 원을 넘자 당장에 남편 방에 보일러를 잠겄는데 그 냉기는 남편과 나 사이에 흐르는 한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제 저녁엔 정수기 아래에 놓여 있는 컵들을 보고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 이거 허니가 또 꺼냈냐고, 물 마실 때마다 새 컵 꺼내 쓰면 어쩌자는 거냐라는 말을 담아 물었다. 좀 전에 물 마실 때 하나 꺼내 쓰더니 설거지하고 뒤돌아 서니 또 하나가 놓여있다. 이놈의 설거지 정말 징글징글하다. 남편은 자기가 꺼낸 게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도 마지막엔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서 설거지를 하는데 그 미안하다는 말이 자꾸 맴돈다. 우리의 대화가 이렇다. 하루 중에 나누는 몇 안 되는 말들이 대부분 이렇다. 물 컵 좀 꺼내 쓰면 어떤가 안 씻으면 될걸 그게 뭐라고 군대 선임인 양 선배인 양 잔소리인 양 집에서 물도 제대로 못 마시게 쏘아붙였는지, 미친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남편에게 전혀 웃지 않는 아내가 되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남편 퇴근하면 교대로 애들 보면서 저녁 먹고, 남편이 뚜뚜 재우러 가면 내가 설거지, 젖병 씻고 솔이 씻겨서 재우러 들어간다. 그 사이 나누는 대화들이라곤 날씨 이야기, 애들 이야기, 공과금 이야기 뭐 그게 다다.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지만 그쯤 되면 남편도 나도 육아에 지치고 회사일에 지쳐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아이들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하니 입이 바싹 마른다. 말없이 주어진 시간 안에 밥을 열심히 먹고 또 교대하고 솔이랑 윤성이랑 놀고 하루를 정리한다. 이게 일상이다.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이다.
전에 같았음 애들 다 재우고 성공했다고 엉덩이를 흔들고 나와 살금살금 속삭이며 이야기도 하고 야식도 시켜먹고 영화도 보고 했을 텐데 언제부턴가 애들 옆에서 잠들지 않아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휴대폰으로 남들 사는 이야기만 들여다보고 시간을 보내다 잠든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일부러 남편과의 시간을 피했다. 왜 고부갈등은 꼭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