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모든 걸 배우지 않았으니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윤성이가 막 잠들었다는 말을 듣고, 요가원을 나서려다 다시 앉아 블로그를 열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이 순간이 쉽게 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꼭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야지 다짐한다.


지난 화요일부터 솔이는 다시 유치원에 가기 시작했다. 월요일에도 가려고 옷도 다 입었는데, 나랑 싸우는 바람에 아침 댓바람부터 울기만 하고 유치원엔 안 갔다.


지난주 왕할머니 장례를 마치는 마지막 날 솔이는 할머니 댁 계단을 내려오다 발목을 삐었다. 발목이 조금 약한 편이라 일상생활에서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엔 꽤나 충격이 컸는지 오른 다리가 팅팅 부어 절뚝이며 걷는다. 서울에 올라와 소아과엘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정형외과에 가보라시며, 아마 깁스를 해야 할 듯하다고 말하셨다. 그 말을 듣고 솔이는 내게 귓속말로 ' 깁스는 절대 안 해'라고 말했다.


절대 안 한다고 했던 깁스를 하면서 솔이는 엉엉 울어댔다. 긴장을 했는지 가만히 상황을 보고만 있다가 다리에 어설픈 신발 같은 게 신겨지고 하얀 붕대를 붕붕 감기 시작하자 솔이는 진짜 일곱 살이 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절대 깁스를 안 하고 자기 신발을 신겠다며 발버둥 치는데 나는 참 이상도 하지? 솔이가 그렇게 아기처럼 울어댈 때는 웃음이 나온다. 애는 우는데 엄마가 웃을 순 없으니 꾹 참고 달래며 진료실을 나올 때 생각했다. 왜 이렇게 지금의 솔이가 귀엽고 사랑스럽지?







아마 평소 너무 체면을 차리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는 솔이의 애씀을 보다가 아기처럼 울어대고 숨길 수 없는 마음이 표현될 때, 나는 진심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은 저렇게 엉엉 울어도 울고 나면 솔이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질까 뭐 그런 생각? 그 생각에 빠져있어서 엉엉 우는 솔이를 꼭 안아주고 달래기만 했는데 그 울음소리가 너무 컸는지 간호사 선생님이 두 번이나 병원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울면 안 된다고 혼내고 가셨다. 훈육도 모르고 공중도덕도 안 가르치는 이상한 엄마처럼 생각한 건지 뒤통수에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솔이의 울음이 반갑고 깁스가 반갑다.


솔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집에 가자마자 깁스를 풀 것이고, 아무 데도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자기 신발을 신고 나갈 거라고 말하면서도 엄마가 안된다고 할 걸 알았는지 '엄마 약속해' 엄마 약속해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나도 그 상황이 정신이 없고 처음 가는 곳이라 당황해 커브를 돌다가 차 앞 범퍼를 담벼락에 들이받기도 했다.






그날 저녁 솔이는 말했다. ' 나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는 게 싫어, 깁스 보여주기 싫어. 나도 엄마처럼 커서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거야 '라는 말을 남기고 잠들었다. 낮에 너무 울어대서 진이 빠졌는지 스르르 기절하듯 잠들었는데 나는 그런 솔이를 한 동안 바라보았다. 나를 닮은 딸. 혼자서 뭐든 다 해내는 씩씩한 딸이길 바란 적 없지만 그 마음이, 그 투정이 귀엽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런 삶은 너무 외로운 걸 솔아?








월요일. 유치원에 절대 안 가겠다는 솔이를 붙들고 양말을 신기며 나는 이상하리만큼 화를 냈다. 아픈 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니야. 친구들도 걱정해주고 아픈 걸 알면 더 배려해줘서 잘 지내다 올 수 있는데 왜 우냐고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 표정이 그랬다). 그래도 솔이가 안 간다고 떼를 쓰자 나는 훈육을 빙자한 협박을 했다. 참 유치한 지고 _ 너 이러면 유치원에도 영영 못 가고 요가원도 못 가고 진짜 아무 데도 못가. 잘 때도 붕대 안 풀고 샤워도 못 해. 그 닥치는 대로 안 되는 상황들을 말하며 겁을 줬던 거 같다. 엉엉 울기만 하지 그 협박이 안 먹혔는지 끝내 그날 솔이는 집에 남았다.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나처럼 외롭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혼자서도 잘한다는 칭찬에, 의젓하다는 칭찬에 진짜 나를 숨기지 않았으면 하는 _ 내 어린 시절 나에게 하고픈 말들을 지금 솔이에게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 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솔이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반듯하게 펴지지 않았다.







함께 요가하는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전했다. 아이가 납득할 수 있는 타협점이 필요하다고, 예를 들면 깁스 위에 양말을 신거나 하는 방법으로. 혼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없고 사람의 몸은 약하기 때문에 다칠 수밖에 없지만 천천히 배워가면 된다고. 우리도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배우지 않았으니 천천히 솔이를 기다려줘야 한다고.


이 말을 듣는데 내 코끝이 찡한 건 너무 오버인가. 무튼 이 정답 같은 조언 및 위로를 듣고 그날 저녁 솔이에게 사과했다. 진짜 내 마음을 말하며, 솔이 마음을 더 알아주지 못하고 화만 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다음 날 솔이는 붕대 위에 양말을 신고 유치원에 나서려 했는데, 양말 신은 깁스가 더 도드라져 보여 그냥 유치원엘 갔다. 대신 깁스 신발을 신고 가서 엄마가 집에 가져가고 솔이 신발 두 짝을 신발장에 넣고 오기로. 그리고 하원할 때는 엄마가 업고 차까지 가기로.


유치원 선생님께 솔이의 사정을 말하며 유리 넘어 손 흔드는 솔이는 보니, 고맙고 대견하다. 잘 적응하고 재미나게 놀고 오길. 이 글을 쓰는 3일째 솔이는 여전히 깁스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지금 이 상황에 많이 익숙해졌는지 쿨해졌다. 친구들과 여느 때처럼 잘 지내고 편안해 보인다. 오늘 아침 등원 길엔 보안관 아저씨가 ' 솔이 다리 다치고도 유치원 오고, 씩씩하네 ' 큰 소리로 칭찬을 해 주시니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네 라며 작은 소리로 말하고 웃었다.




나도 이 글을 다 적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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