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을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요가원에 도착하면 일단 소리부터 질러야지 생각하면서 스스로 성격파괴자나 미친 여자가 아닐까,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을까.


올해 초 자른 앞머리가 콧방울을 지나쳐 인중에 다다른 솔이는 언제나 커튼 친 얼굴로 다닌다. 이 더운 날에도 삔 하나 안 꼽고 그렇게 치렁치렁 앞머리를 내리고 다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얼굴이라도 안 이쁘면 말을 않겠는데 그 이쁜 이마에 이목구비에 얼굴을 가지고서 저렇게 다니니 나는 솔이 앞머리에 목이라도 매는 사람처럼 솔이를 볼 때마다 앞머리 좀 넘길까 _ 말한다. 딴 데 정신 팔려 있을 때 슬그머니 핀을 꽂아주고 나면 언제 또 뺐는지 인중에 다다른 앞머리가 살랑인다.







어제는 숲놀이터 가는 날이라 긴 바지를 입고 갔다. 돌아오면 더울 테니 갈아입을 여벌 옷으로 얼마 전에 산 치마바지를 넣어뒀는데 하원할 때 보니 긴 바지 그대로다. 덥다며 긴 바지를 접는 솔이에게 왜 옷을 갈아입지 않았니 물으니, 치마바지는 싫다고 한다. 분명 마음에 든다고 샀는데 옷장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솔이는 7살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치마를 입고 등원한 적이 없다. 헐렁한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최근까지 여름 샌들도 안 신고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멋진 게 좋다는 솔이는 화장실 앞에 적혀 있는 '숙녀용'이라는 말도 싫어했다. 자기는 숙녀가 아닌데 왜 그게 쓰여있냐고. 아이의 성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변화가 많이 낯설고 더 솔직히 말하면 불편하기도 하다. 더 솔직히 적으려니 용기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엄마 눈엔 안 멋있는데, 엄마 눈엔 안 귀여운데, 엄마 눈에 영 아닌데 솔이는 그게 좋다면서 잘 웃질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엄마가 싫어서 청개구리처럼 엄마 말을 안 들으려 하는 건지, 아니면 나와는 다른 미적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지. 그 상황이 가끔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좀 예쁘고 단정하게 다니면 보기도 좋을 텐데 ( 아마 이 문장이 내 솔직한 마음일 수도 있겠다. 밖으로 보이는 솔이 모습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 그런데 항상 솔이에게 이 말을 하기가 스스로 부끄러운지,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것 마냥 뒤로 숨기고 엉뚱한 말로 솔이를 설득하려고 한다.


어제저녁엔 눈이 잘 안 보이니 머리는 좀 넘겨보는 건 어떨까 했다가, 오늘 아침엔 머리를 단정하게 넘기면 조금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 보일 텐데 어때?라고 상냥하게 말했지만 표정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오늘 아침에도 솔이는 인중을 스치는 앞머리를 내리고 유치원엘 갔다. 그런 솔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항상 죄책감이 밀려온다. 가장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는 엄마처럼, 솔이보다 서른이나 더 나이도 많으면서 유치하게 솔이를 통제하려는 내 욕심이랄까 날카로운 그 욕구에 부끄럽기도 하다.






그려려니~ 가 잘 안 된다. 앞머리뿐이랴 밥이며, 샤워며, 옷이며, 공부며, 놀이며, 요즘 뭐 하나 솔이랑 잘 되는 게 없는 듯하다. 그러면서 불안하기도 하다. 나의 이 조건 있는 사랑이, 내 아이를 힘들게 할까 봐.

언젠가 솔이가 자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내 속마음을 말 못 하게 하더라? _ 아마 감기가 2주째, 항생제를 먹고 있는 주말 아파트 단지 내 분수대에 놀러 가자고 졸라대는 솔이에게 왜 말을 안 듣냐고 쏘아붙인 날 저녁이었을 테다. 참 유치하지만 그렇게 감정이 앞서게 되면 이제껏 읽은 육아서적과 이제껏 적어온 나의 육아 기록, 엄마 성장을 위한 노력들이 있기나 했었나 싶게 , 형편없이 아이를 혼내고 만다. 그러면 그런 나를 마주 보는 솔이는 정말 말 문을 닫아버리고 가만히 아무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본다. 그 순간이 정말 싫은데도 잔소리가 몇 날 며칠 준비한 것처럼 끊이지 않고 나온다.

그날 저녁 솔이는 엄마에게 쫓겨날 뻔했다고 일기를 쓰고 내게 말했다. 가끔 엄마는 내 속마음을 말 못 하게 하더라?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력해 본다면 나라는 사람에게서 '겸손'이라는 말은 찾기가 어려운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오만방자한 사람인 것 같진 않지만 겸손한 사람도 아니다. 근데 솔이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나의 결핍된 겸손과 지나친 오만이 어쩌면 나와 내 아이를 힘들게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다르게, 나는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남편도 나를 사랑한다. 부모가 행복하고 사랑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건강할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 아래 솔이에게 그리고 윤성이에게 내 숨겨진 욕심, 통제하려는 마음, 나의 불안함을 모성애로 포장하진 않았나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솔이와 윤성이는 당연히 행복하게 밝게 자라겠지 그런 오만 같은 것.

그리고 노력을 게을리한 것. 엄마로서 성장하는 것. 조건 없이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 진짜 좋은 솔이의 엄마가 되는 것.







아주 작은 순간순간들이 모여 이 글을 적지만, 오늘 아침 유치원 물놀이 행사 때문에 신이 난 솔이의 기분에 같이 웃어주지 못하고 옷이며 머리며 밥이며 잔소리만 해 댄 것에 후회를 기록한다. 나는 내가 꿈꾸는 엄마가 되기 위해 이 글을 기록한다. 오늘 오후에는 고기랑 가지전, 수프를 끓여 조용히 같이 저녁밥을 먹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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