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솔직하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오늘 글은 최대한 짧게 써보자 마음먹는다. 담담하게, 솔직하게, 누가 읽든, 아무도 읽지 않든 _ 담담하게, 솔직하게.

윤성이를 재우고 빨래들 사이에서 반바지 세 개를 골라 작은 방 베란다에 숨겨두었다. 윤솔이가 모르길, 없어진 줄도 모르게 그냥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제저녁 샤워를 끝내고 몸에 로션을 발라주는데 바지 고무줄 자국이 너무 선명해서 그걸 보는데 걱정도, 짜증도 아닌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솔이에게 말했다. 윤성이 옷 입는 건 좋은데, 너무 작아서 솔이 몸이 불편한 옷은 이제 입지 말자. 솔이는 싫은 건지 민망한 건지 알았다고 말했지만 오늘 아침 어김없이 윤성이 바지를 입고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솔이는 윤성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그러나, 핑크가 싫어서 그러나 싶어 새 옷을 사다 놓아도 윤솔이는 어김없이 윤성이 옷장 문을 열었다. '왜 그런지' 솔이 마음을 생각하기도 전에 짜증이 났다. 아니 뭔가 속상했다. 그때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짜증 섞인 말만 한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_ 그 이유를 알겠다.

자꾸 입던 옷만 입고, 윤성이 옷만 찾길래 진짜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그러나, 유치원에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겨서 그러나 싶어 어디 나갈 때마다 갖고 싶다는 옷은 다 사주었다. 그렇게 쌓인 옷만 옷장 두 칸을 채우고도 남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새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간 적이 없다. 살 때만 너무 좋아서 사자마자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테크를 떼고 (환불도 안 하겠다고 단언해 놓고) 집에 돌아오면 고이 모셔놓기 바쁘다. 나는 그것도 사실 속상했고 돈도 아까웠지만 솔이 마음만 풀린다면, 얼마든지 할부를 더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답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쌓인 옷을 두고도 윤성이 옷장을 서성이는 윤솔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한 힘 빼기만 할 것 같아서 그냥 입고 싶은 거 맘껏 입으라 말했다. 윤성이 옷이든 엄마 옷이든 너 입고 싶은 대로 입으라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지만 절반 정도는 포기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말 한 뒤로 솔이는 윤성이 옷만 입는다. 그것도 윤성이의 새 옷이 아니라 윤솔이가 어릴 때 입었던, 지금은 작아져 윤성이에게 물려준 옷들.

솔이는 유치원에서 키가 제일 크지만 팔다리가 길쭉길쭉 날씬해서 윤성이 옷들이 '들어는'간다. 그 가느다란 다리에 쫙 감기고 엉덩이가 바지를 먹어도 일단 들어가기는 들어간다. 윗옷들은 냄새가 나서 대부분 다 버렸고 남은 반바지 몇 벌이 있는데 그걸 돌려가며 입고 있다. 고무줄 자국이 선명히 나고 허벅지가 조여 활동하기 불편해 보이지만 솔이는 그 옷을 입고 나오며 항상 함박웃음을 짓는다.

어제저녁에 입은 바지는 솔이가 6개월 때 처음으로 문화센터에 입고 갔던 아가방 여름하의 바지이고, 오늘 아침 등원길에 입은 바지는 두 돌이 되기 전에 이마트에서 산 청반바지다. 사이즈로 보면 75 또는 80. 28개월인 윤성이가 입어도 작은 바지들을 윤솔이는 매일 같이 찾는다. 솔직히 _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너무 괴롭다.

이 마음을 누가 알까. 남편은 이 말을 하면 느낄 수 있을까 지금 내 마음을.








솔이의 이런 모습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게 다 내 탓처럼 느껴진다. 솔이가 사랑 가득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윤성이가 없었던 그때로 자꾸만 뒤로 걸어갈 때. 솔이의 퇴행을 마주할 때 _ 엄마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울부짖을 때 나는 타버린 재처럼 힘이 빠진다. 가끔 내 안에 없는 걸 바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 사랑이 진짜 부족한 걸까. 작아진다. 하지만 오죽하면 저럴까. 얼마나 그때가 그리우면 저렇게 해진 옷들을 입고 좋아할까.



그런데 그 모습을 자꾸만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용기가 없어 나는 그 옷들을 모아 베란다에 숨겨놓았다. 뒤돌아서니 코끝이 찡해진다. 솔아 엄마가 더 노력할게. 매일매일 더 큰 사랑으로 솔이를 사랑할게. 불안해하지 말고 초조해지지 말고 엄마가 안아줄게. 고개 숙이며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느끼는 죄책감보다 내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긴다. 나의 사랑이 솔이 삶에 단단한 뿌리가 되길 _ '나'라는 흙 위에서 꽃 피울 솔이의 삶을 위해.

담담하게, 솔직하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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