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언젠가 잠자리에 들기 전 솔이랑 티격태격했던 날이 있었다. 평소처럼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꼭 안아줬지만 솔이는 기가 막히게 내 마음을 느끼고 대꾸도 안 하고 등 돌려 잠이 들었다. 대게 내가 그렇듯이 낮에 잔소리를 좀 심하게 하거나, 혼을 많은 낸 날이면 자면서 자꾸 뒤척이게 된다. 솔이 손가락 빠는 소리도 더 선명하게 들리고 여기저기 데굴데굴 구르며 피아노 밑에 들어가 있거나 이불을 다 걷어차고 배를 다 까고 있는 솔이가 더 잘 느껴진다. 그러면 자다가도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이불도 덮어주고 머리도 쓰다듬으며 뽀뽀도 해주는데 이게 내 마음을 좋으라고 그러는 걸 아는 건지 솔이는 자다가도 새침을 떤다.
다음 날 아침 솔이는 일어나 말했다. 자는 내내 꼬인 리본 같은 기분이었다고. 이 말을 듣는데 꽤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 아직까지 솔이에겐 내가 절대적이고 전부일 수 있는데 그런 엄마한테서 찬바람이 불면 얼마나 오갈 데 없는 기분일까. 얼마나 속상할까.
그런데 참 육아란 어려운 게 이렇게 마음으로 느끼고 배워도 또 까먹고 또 잔소리에 꾸지람에 후회에 반성에 자괴감에 그렇게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 든다. 오늘이 그랬다. 오늘은 솔이도 나도 온종일 꼬인 리본 같은 기분이다.
아마 내가 긴장하고 걱정하고 불안하면 그 마음이 자꾸 솔이에게 전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오늘은 요가원을 오픈하고 처음으로 내 요가원에서 수업을 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많이 긴장되고 걱정되고 두렵기도 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래 뭐 부딪혀보자는 마음을 먹고도 오늘 아침에 그날 선 긴장 잠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잘 자고 일어나 뚜뚜랑 신나게 노는 솔이에게 쓸데없이 재촉하고 잔소리를 했다.
늦게 일어나 바쁜 건 나인데 솔이에게 뭐 입을래부터 시작해 제자리 앉아 밥 좀 폭닥 폭닥 먹어라를 지나, 로션 발라라, 양말 신어라, 안에 러닝 하나 더 입어라, 입기 싫다는 초록색 패딩 입어라까지 _ 내가 생각해도 좀 지나치다 싶게 화난 모습으로 솔이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 뭘 좀 하고 싶어 하는 솔이에게 '다음부터 빨리 준비해 그럼' 이렇게 책임전가까지 하고 보니 사실 좀 많이 부끄러웠다.
유치원 가는 길, 솔이는 아무 말 없이 더 느린 걸음으로 나를 따라왔지만 나는 부끄러움과 별개로 바쁜 마음을 붙잡고 낙엽을 밟으며 앞서 걸었다. 낙엽 이야기도 하고 싶고, 벌레 이야기도 하고 싶고 거미줄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엄마는 빨리빨리 빨리빨리 무조건 빨리하라고만 하니 기운이 빠진 거 같았다. 나는 이왕 앞서 걸은 김에 더 빨리 가서 아파트 기둥 뒤에서 '워이~!' 깜짝 놀라게 해줄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다급히 달려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솔이의 뒷모습에서 불안함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른 다다가 웃으며 장난을 쳤지만 솔이 얼굴은 쉽게 풀리지 않고 굳어있다. 아휴 _ 빨리빨리라는 말을 아예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아니 다시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났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을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한 시간쯤 밖에 나가 걸었다. 까먹어야 하니까. 툴툴 털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니까. 한 번 엄마랑 틀어진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이 망가지는 건 아니라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다시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피아노 연주회를 마치고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오는 솔이에게 환하게 웃으며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솔이는 나보다 더 잘하고 있다.
나도 빨리빨리 자라야지. 엄마 6년 차의 성장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