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남편과 공식적으로 화해한 뒤, 한 일주일은 계속 무슨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지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왜 한 번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나가면 무서운 속도로 무너지는 그런 모습처럼 나도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랬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이상하게 하나의 장면만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남동생과 다시 아빠에게로 보내졌다. 중학교 때 집 나간 엄마가 돌아와 아빠가 출근한 사이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다시 집을 나갔다. 그때는 그게 내 인생에 무엇을 남길지 전혀 알지 못했고 그저 엄마와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로 설렜다. 그 후로 3년, 엄마는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 새벽녘에야 돌아오는 고된 노동의 삶을 살았고, 그 모습을 가감 없이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엄마와 함께 한다는 기쁨 뒤에는 희생과 죄책감이 따랐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열심히 공부하고 동생을 잘 챙기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이 시절은 내게 몇 안 되는 따뜻한 유년 시절로 남아있다.
그런데 3년 뒤, 엄마가 나와 남동생을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닥쳤고 그렇게 몰래 나온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겨우겨우 안정된 나의 일상이 다시 무너지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고, 우리 가족을 그리고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건 아빠라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 밤마다 아빠를 저주하는 글을 일기장에 썼는지 모른다.
언젠가 아빠가 번개에 맞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쓴 다음 날, 저녁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아주 무겁게 침묵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면 가로등조차도 희미한 시골길에서 도로변에 있는 공장 벽에 차를 들이받았다. 그리고는 이미 돌아버린 사람의 눈빛으로 일기장에 뭐라 썼냐고,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라고 되물으며 고꾸라져있는 딸의 안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잔뜩 겁에 질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딸을 태운 차를 벽에다 들이받는다고? 역시 아빠는 내가 상상하는 것을 항상 넘어서는 저급함이 있다.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가는 길, 그 길이 얼마나 어둡고 무서웠는지 _ 결국 이 차가 가는 곳은 주변엔 산 밖에 없는 외딴 시골 우리 집 일 텐데 과연 나는 오늘 밤 무슨 일을 겪을까 공포에 떨었다. 한 편으로는 일기장에 적은 대로 정말 뭐라도 맞아 죽어버려야 할 인간이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방에 앉으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겁을 먹었지만 아빠에게 한 말에 잘못을 구할 만큼 아빠가 떳떳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엔 가정을 지키지 못했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처만 줬으니 _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빠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빠는 잠시 옅은 웃음을 띠며 고개를 숙였다. 가소롭다는 듯이.
그 뒤의 일들은 정말 슬로우 모션처럼 매 순간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아마 이 상황을 천 번 넘게 글로 적고 만 번 넘게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말한다고 해도 지겹거나 잊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내 안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고개를 숙였던 아빠는, 돌변했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내 뺨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나를 뺨을 때리며 일으켜 세웠고 다시 뺨을 때리며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때 내 눈앞에서 흩날리던 나의 눈물, 콧물, 침 그리고 피들이 아련히 그려진다. 그렇게 몇 번을 같은 자리에서 앉았다 섰다 뺨을 맞았고 결국에는 방 한가운데서 모퉁이로 몰아붙여졌다. 그 순간의 고통은 사실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내 시선이 아빠의 손짓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모습만 남아있다. 그렇게 벽에 부딪혀 힘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보였다 아빠의 발이. 흰색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곧장 그 양말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떨궜을 때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만 보며 무력감과 공포에 떨던 오빠와 남동생이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 안돼! 그만!!!!
오빠와 남동생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서 아빠가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보인다. 아빠의 오른손엔 펄펄 끓는 냄비가 들려져 있었고 아빠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저 단호한 걸음걸이만 느낄 수 있을 뿐. 그 뒤로는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 개처럼 빌었다. 그 뜨거운 물이 내 몸에 닿았을까? 아무 기억이 없다. 그저 살려달라고 빌었던 순간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때 입으로는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진짜 내 마음은 죽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미 죽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런 인간한테 내 목숨을 비는 이 순간이 너무 비참하고 괴로워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랄까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나는 죽음 앞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때의 그 무력감과 굴욕은 사실 지워질 수 없는 무엇이다.
아마 이걸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겠지, 이 일이 이후부터 사실 내 마음속 저 바닥엔 항상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없이 약한 사람, 무력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람, 살려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는 사람. 실제로 그런 내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적도 많았다. 그 일 이후 성인 남자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과 두려움은 늘 따라다녔다. 누가 내 앞에서 큰 소리를 치거나 조금이라도 겁을 주면 기절을 하기도 했었고, 택배 기사나 택시 기사 등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성인 남자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사리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내 뿌리인 아빠라는 사람에게서 이런 경험을 하고도 몸과 마음이 온전할 수 있다면 살아있는 게 아닐 테지.
그런데, 왜 남편의 이혼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자꾸 떠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