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 뒤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_ 두번째

by 뚜솔윤베씨

[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중에서.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

이 '충분한 시간'에 대해 가늠할 수 없어서 나는 불안했다. 잊혀지면 억울한 것 같은 행복의 순간도 아닌데 나는 나의 지난 날 고통을 꼭 기록하고 싶었다. 고통이 고통으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꼭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흐려지는 기억과 불행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나의 방어본능 때문에 쉽게 컴퓨터 앞에 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고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담담한 생각도 들었다. 구지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일상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하지만, 나는 다시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혼도 안하고 같이 살면서 이 일을 글로 만천하에 공개하면 피해가 되지 않을까요? 라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 잃었던 식욕이 돋듯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들이 더 없이 소중하게 다가오면서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일의 끝은 내가 생각해도 아리송했다. 나는 남편을 용서한 걸까? 용서할 순 없지만 아이들을 보고 살기로 마음 먹은걸까? 아니면 남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두려웠던 걸까.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는 결론없이 끝이 났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했고, 나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와 남편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 후로 남편은 회사 사람들과의 사적인 대화를 차단했고 단톡방도 다 나왔다고 했다. 손과장과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더 이상 업무 외의 이야기는 나누지 말자는 말을 끝으로 마무리 했다고 했다. 공교롭게 회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 이동이 있었고 짝꿍처럼 붙어있던 손과장과의 자리도 멀어졌다고 했다. 그 뒤로도 남편은 사진에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는 어플로 찍은 사진들을 수시로 보내왔다. 마치 자신의 일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하듯 기록했고 그 기록들로 자신의 결백을 뒷받침하려는 남편의 노력도 고스란히 담겨왔다. 회사 업무 사진에도, 혼자 먹은 점심 메뉴 사진에도, 출장갈 열차 티켓 사진에도 그 날의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어 있었고 성실하게 그 기록들은 내게 전해졌다. 남편은 그런 기록들로 나의 불안을 낮추려고 하는 듯 했지만 사실 그런 사진들을 마주할 때마다 더없이 비참했다. 그런 사진을 받고도 자꾸 남편을 의심하게 되는 내 자신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리 부부의 신뢰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도 그를 믿지 못하지만 그도 나를 믿지 못한다. 아내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부부간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상처였다. 어쩌면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보다 믿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없이 사는 부부는 상상이 되는데 서로 믿지 못하는 부부가 가정을 지키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더 큰 불행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불행 속에 지금 나와 그가 있고 우리 아이들이 있다.






'우리'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 불행을 얼른 걷어내야겠다 마음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전처럼 서로 일상을 전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다 같이 저녁을 먹었고,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고단했던 서로의 하루를 위로했고, 아이들의 재롱에 웃었고, 책을 읽고 잠이 들었다. 이제껏 살아왔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또다시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면 이상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슬픔과 분노가 일기도 했다. 아마 그 때부터 집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이제 엄마 아빠 정말 화해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더 좋은 배우자가 되고자 고민했고 그러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자책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언제부터였을까'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모든 순간들이 그 시작인 것처럼 느껴졌다. 둘째 낳고 부터일까, 요가원 준비하면서부터 일까, 양가 부모님들 와계시면서 서로 멀어진 걸까. 무슨 일이든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하고 시작과 끝이 명확해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탓일까 _ 파탄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남편과 내가 이렇게 산산조각 난 원인이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마치 그 원인을 찾아내면 남편과 진짜 화해를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친사람처럼 아이들 앞에서는 행복한 엄마 아빠로 웃고, 뒤돌아서면 넋을 잃고 울어대는 처참한 일상을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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