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기준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_ 두번째

by 뚜솔윤베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자주 싸웠다. 아무리 남편과 잘 지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매일 손과장이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 뿐이였다. 그렇게 밤낮없이 서로 연락하면서 의지하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정리되는 것도 이상했고, 남편의 일방적인 차단을 손과장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지낸다는 것도 억지스러웠다. 초반에는 회사 이야기, 업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가까워 졌지만 내가 그 둘의 카톡을 봤을 즈음엔 동료의 경계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출근과 퇴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이른 새벽이든 늦은 새벽이든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도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누가 카톡을 보내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던 두 사람이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지낸다는 건, 남이 봐도 더 이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한테도 안보내는 아이들 사진을 보내면서 희희덕거리던 두 사람의 부자연스러운 일상은 더 부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그의 말을 믿고 믿지 않고는 나의 선택이겠지. 남편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 동안 생각없이 한 행동들이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남편의 이 부정도 긍정도 아닌 태도가 정말 싫었다. 처음에는 잘못했다며 빌었다가 곧 아무사이도 아니라며 정색을 했다. 실수였다고 했다가도 결백하다고 했다. 남들은 남편이 손과장이랑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그저 오피스 와이프로서 조금 의지했을 뿐인데 이렇게 난리를 친다고 생각하겠지만, 남편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랬다. 남편만은 자신의 잘못이 이렇게 해석될 수도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가지지 않길 바랬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나 없나 살피지 않고, 진솔하길 바랬다. 그래서 내가 남편이 바람이 난건가 아니면 나의 과대망상인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용기를 내 살아갈지 말지만을 고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 두면 생활비며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지 너무 막막하다며 꿋꿋이 회사를 나가는 남편을 보면서 이상한 무력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남편의 월급이 없더라도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가진 많지 않은 것들을 현금화시키면 그래도 얼마간은 지금처럼 살 수 있을텐데_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랬다. 그리고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회사를 옮겼으면 하고 바랬다. 돈돈돈 거리면서 손과장이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남편을 보면 마치 생활비가 그의 또다른 무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가졌더라면, 당장 남편 없이도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을 만큼 주변의 안정적인 도움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드라마 같은데서는 보란듯이 바람난 남편을 버리고 더 당당하고 멋있게 삶을 꾸려나가는 여자들도 많은데 내 현실은 외도의 현장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다보니 느닷없이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주말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 차에서 잠든 아이들을 뒤로하고 연주곡이 흐른다. 내가 남편과 손과장의 카톡을 처음 본 날도 이런 노래가 흘러나왔지. 무슨 데자뷔같다. 남편은 어김없이 아이들이 잠들면 이런 노래를 트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손과장과 나눈 카톡들이 선명해진다. 분명 낮에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 날도 그랬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그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얼마 전 남편과 손과장은 둘이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때 둘의 대화는 어느때보다 더 가까웠다. 그 중에서 숙소에 돌아가는 길이라며 보낸 손과장의 그림자 실루엣 사진과 손과장에게 마사지를 해준다는 다른 동료의 말에 남편이 발끈한 부분이였다. 나는 회사생활을 짧게 했지만 그래도 회사 동료와 선후배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는 상식선에서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내 상식선의 한계와 남편의 한계가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비치는 그림자 사진을 보내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나도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그런 사진은 보내본 적이 없는데 남편은 내가 보낸게 아니지 않냐는 말만 했다.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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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외 출장 중에 대만 동료 한 명이 손과장에서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 대화를 캡쳐해 남편에게 보냈다. 이 사람 마사지 잘한데 헤헤 같은 순진한 말을 하면서. 그런데 더 웃긴 건 그 카톡을 보자마자 남편은 저새끼 미친새끼라며 발끈했다. 남이 보면 여자친구한테 끼부리는 남자한테 분노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미친새끼라고 발끈하는 사람은 나의 남편이고 마사지는 마사지일 뿐 아냐? 라는 순진한 멘트로 내 남편을 자극하는 저 여자는 남편의 회사 동료이다.


정상적인 직장 동료라면 저런 카톡을 나누지도 않겠지만, 이미 나눈 대화라면 직장 동료의 선에서 그것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유부남이라면 손과장에게 조금 조심하는게 좋겠다는 말을 할 것 같다. 내 여친한테 마사지를 하겠다고? 미친새끼! 이렇게 눈알부터 뒤집는게 아니라 직장 동료로서 선을 지키면서 충분히 배려하며 이야기 했을텐데 남편은 용감했다. 철저하게 손과장을 지켜냈고 그런 남편을 보고 손과장은 좋아하는 듯했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생각해보면 진짜 이건 썸남 아니면 남친한테나 아니면 남편한테나 그것도 철없을 때 하는 소린데, 이걸 남편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변명했다. 이 일이 주말 나들이를 즐겁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올라 남편에게 물었다. 손과장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냐고.






남편은 어떤 말도 내 분노와 의심을 키우기만 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과장의 남자친구는 싱가폴에 산다고 했다. 아하,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러면 내 남편은 한국의 남자친구 쯤 되는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얼마나 자유롭게 밤낮 할것 없이 둘이 히히덕거릴 수 있었을까. 언젠부턴가 집에 돌아와서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빼지 않던 남편이 떠오른다. 나중에 애들이 휴대폰 끼고 살면 부모로서 무슨 말을 할거냐며 우리 먼저 좋은 모습을 보이자고 남편한테 잔소리 했었는데, 남편은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폰을 들고 들어갔고 주머니에 또는 언제든 손 닿는 곳에 휴대폰을 달고 살았다. 내가 자기 전 아이들이랑 책을 읽고 있으면 꼭 누워서 휴대폰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바람피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휴대폰을 끼고 산다고 하더니, 숨은 보물 찾기 하듯 남편의 외도 정황 한 조각을 찾아낸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내 상식선에선 둘의 대화나 둘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처럼 침묵하거나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을 하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다. 정말 억울하고 미치겠는 건 그 순간의 나다. 내 상식이 부정당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침묵 앞에서 무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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