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남편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법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_ 두 번째

by 뚜솔윤베씨

바람난 남편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법.


정말 내가 궁금했던 건 이것이다. 육체적 외도든 정서적 외도든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무너진 신뢰 위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랑 이혼을 하니 마니 서로 끝을 향해 달릴 때도 검색창에 이혼이라는 단어 한 번 적어보지 않았다. 아마 이혼이라는 법적 절차는 앞으로 내가 마주할 새로운 시간과 무관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님이 이혼이라는 서류상의 결별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서로에게서 지워지는 모습을 보아와서인지 이혼이라는 단어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다시금 같은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뒤론 어두운 터널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 들었다. 막막했다. 어쩌면 이혼이라는 선택지가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짧은 후회도 스쳤다.



어떻게 바람난 남편과 '다시' 살아갈까.

무의식 중에 나의 기준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부모의 감정적인 다툼에 노출되지 않길, 가정의 울타리가 흔들리는 불안에 떨지 않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길. 그것이 나의 기준이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전에 일단은 부모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엄마로서 일상을 지켜내는 게 가장 중요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른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꼭 크든 작든 상처를 주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자연스럽게 세상과 조화롭게 자란다.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남편에 대한 배신감, 분노, 슬픔과 같은 마음들은 잠시 잊히기도 한다. 킥보드를 타고 거침없이 달려다가는 아이들의 뒤꿈치만 보고 있어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순간이면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를 마주했던 날카로운 봄날은 새까맣게 잊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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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잊힌다면 너무 억울하겠지.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마주할 때면 이상한 허기가 느껴진다. 남편이 찍어 보낸 시간대별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편이 온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도 남을 것 같은데, 사진 속에는 없는 그의 마음이 더욱 나를 괴롭게 한다. 무슨 마음일까.

남편을 아는 사람 모두가 ' 세상 모든 남자가 바람을 펴도 내 남편만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단언할 만큼 남편은 가정적이고 따뜻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남편을 아는 사람 모두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남편은 보통 남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신뢰가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고 컸다. 그랬던 남편의 배신을 마주한 뒤, 내게 전해지는 남편의 일상은 더욱 그를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기대치가 너무 커서 이렇게 와르르르 무너지는 걸까. 남편이 어떠한 증거를 들이대도 믿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던 그의 모습은 거짓이었던 걸까. 그 '알 수 없음'을 마주할 때면 공포에 가까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공포에 가까운 감정은 매우 빈번히 남편과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회사 사람들이랑은 이제 말도 안 하고 점심도 같이 안 먹는다는 남편의 말에도 화가 났다. 그동안 내 눈치 보느라 회식 한 번 못하고 살아온 인생이 가슴의 한으로 남아있다는 남편을 알게 된 후로는 어떠한 일도 나에 대한 원망으로 남을 것 같았다. 당신 때문에 회사에서도 이렇게 왕따처럼 지내고 있지 않느냐 그 말이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제외하곤 매 순간이 무너짐이었다. 바람난 남편과 잘 살아보려고 하는 나의 노력은 매 순간 제대로 된 시작도 못해보고 흩어졌다. 왜냐하면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건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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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며 회사를 꿋꿋이 다녔고, 회사에는 변함없이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가 있다. 이번 연봉 협상에서 남편이 적극적으로 손 과장을 대신 어필해 준 덕분에 높아진 연봉으로 오래오래 남편과 함께 회사를 다닐 그 여자. 며느리의 예민함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 생각하는 시부모에,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까지. 어느 것 하나 바뀐 것 없는 이 상황에서 오직 '나'만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뭐든 검색부터 하고 보는 남편조차도 '자신의 외도 후 아내와 잘 사는 법'에 대해선 검색해 보지 않았을 테다.



그 생각을 하니, 내가 느낀 허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첫째 아이 영어 과외가 있던 수요일 저녁, 거실에 남편과 함께 앉았다. 윤성이랑 셋이서 자석 블록을 가지고 놀다가 고개를 숙인 채 남편에게 말했다. 손 과장과 지사장의 연락처를 달라고. 그리고 대만에 있는 사장의 이메일 주소도 같이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남편은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알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남편 눈을 바라보며 지금 당장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카톡으로 전해진 손 과장의 연락처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윤성이는 부서진 자석 자동차 블록을 다시 붙였다 떼였다 놀았고 남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전화를 거는 내게 온 신경을 쏟았다.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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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과장에게 전화를 걸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휴대폰 컬러링 때문인지 곧 들려올 목소리가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라는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손 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나를 소개하면 될까 고민할 것도 없이 누구 씨 아내 누구라고 말했다. 살면서 이 문장을 내 입 밖으로 내어본 건 정말 처음인 듯했다. 누구의 아내 누구. 손 과장은 흠칫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무슨 일일까 이년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숨을 고르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전할 말이 있어서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가끔 남편 사무실에 갈 때면 그렇게 살갑게 나를 언니 언니 부르며 웃어댔던 게 떠오른다. 마치 본처를 위로하는 후처의 아량 같은 거였을까. 왜 그렇게 우리 윤윤이 들을 물고 빨고 좋아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역겨운데 윤윤이 들을 좋아하는 손 과장을 보면서 행복하게 웃고 있던 남편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손 과장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하고 있는 나를 보는 남편의 표정은 어떨까. 손 과장의 목소리에 너무 집중해서인지 남편 생각을 못했다. 그때 남편의 얼굴을 기억해 둘걸 아쉬움이 든다.



불길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듯 보였다. 살갑게 언니라고 부르던 누구의 아내 누구 씨가 만나자고 하니 이번 주는 약속이 다 잡혀있다고 했다. 다음 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스케줄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달라고 답했다. 나는 너를 꼭 봐야겠으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마자 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사장은 남편의 밥줄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아주 스니키 하면서도 막강한 사람 중 하나다. 얼마 전에 남편과 손 과장이 힘을 모아 이 지사장을 좌천시켜 아주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상태라 내가 전화하기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연결된 통화에서 복사 붙여 넣기 하듯 말했다. 누구의 아내 누구라고.



지사장 역시 흠칫 놀랐지만 곧 침착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내가 한 번 뵙고 싶다고 말하자 구체적인 요일과 시간을 언급하며 약속을 잡았다. 전화한 게 월요일인가 화요일이었는데 나는 금요일쯤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사장은 너무 약속이 늦어지면 내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최대한 더 이른 요일에 보길 원했다. 예상대로 적극적인 태도였다. 지사장 입을 타고서 퍼져나갈 내 남편의 부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속화되진 않을까 순간 걱정이 될 만큼.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남편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남편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윤성이의 자석 블록을 정리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희열이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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