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부산에 내려온 후로 가장 크게 아픈 날들이다. 남편과 윤성이의 감기를 이어받아 지난주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당연히 나도 감기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번엔 스쳐 지나가지 않고 며칠째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가래는 얼마나 들끓는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런데 이 감기라는 게 참 신기한 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글도 쓰게 한다.
지난 주말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온 뒤 차에서 잠든 윤성이와 남편을 뒤로하고 윤솔이와 먼저 집으로 올라왔다. 온몸이 욱신욱신 다 팽개치고 아침에 덜 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이나 한숨 자고 싶은데 윤솔이는 비가 온다며 배시시 웃는다. 비 오는 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그 앞에서 책을 읽으면 너무 기분이 좋다며 몸을 베베 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윤솔이는 캠핑 의자를 챙겨 거실 창 앞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저녁 찬거리 챙기며 솔이 간식을 준비한다. 솔이는 그 완벽한 타이밍에 입이 심심한지 간식 없냐며 책에 고개를 파묻고 먹을 걸 달라고 한다. 치즈떡을 프라이팬에 구워 꿀만 뿌리면 된다고 말하면서 분주히 움직이는데 그새를 못 참고 간식 달라는 소리를 연신 해대는데 , 아 정말 이불에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몸의 무게추가 코랑 머리로 쏠린 건지 어찌나 머리가 무겁고 힘이 드는지 치즈떡 뒤집는 집게를 집어던지고 싶게 몸이 말이 아니다. 그 와중에 따발총처럼 먹을 걸 달라는 윤솔아기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자식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진심으로.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알아달라는 걸 수도 있겠다) 이렇게 저돌적으로 간식타령을 해대는 솔이를 생각하니 이제껏 때맞춰 식사 챙기고 학원 라이딩 하며 챙긴 간식이며 하나라도 더 입에 넣어 든든하라고 쫓아다닌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허탈해진다. 가래가 끓어대니 세상만사 의미를 잃는다.
그래도 또 차려준 떡이랑 우유, 배를 오물오물 먹고 있는 윤솔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굴로는 웃음이 안 나는데 내면 깊숙이 바보처럼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마주한다. 그러면서도 윤성이 낮잠에서 깨면 배고플 테니 얼른 갓 지은 밥에 생선이라도 구울 생각에 바쁘다. 아 정말 침대에 철퍼덕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싶지만 월요일까지 기다리자 생각한다. 윤솔이 학교 가고 윤성이 어린이집 가고 나면 마음껏 아픔을 누릴 테다.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며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오롯이 이 감기를 누리리다.
오랜만에 쓰는 평범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