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오랜만에 친정엘 다녀왔다. 윤성이를 데리고 눈바람 부는 고속도로를 달려 '엄마'에게 다녀왔다. 윤성이는 그 시간이 지겨운지 몸을 배배 꼬며 할머니 집 다 왔어? 몇 번을 물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짜증 한 번 부리지 않고 지루함을 이겨낸 윤성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평일 낮에 그것도 친정에 그것도 윤성이랑 단둘이 오기란 또 처음이다. 혼자 가도 될 것을 왠지 꽃 피듯 싱그럽고 귀여운 윤성이를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나 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를 부르며 종종 달려가는 윤성이의 뒷모습을 보니 그 순간의 기쁨은 비유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식이 주는 기쁨은 비할 데가 없다.
나름 삼대가 만났다. 그런데 성이 다 다르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성을, 나는 아빠의 성을, 윤성이는 남편의 성을. 그렇게 셋 다 다른 듯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란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할 때쯤 오랜만에 간 친정은 왜 이리 낡고 오랜만에 본 엄마는 왜 이리 나이가 드셨는지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애 키우느라 요가원 하느라 정신없이 살긴 했지만 정말 올해만큼은 유난히 양가 어른들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지 일 년에 몇 번 못 보고 눈바람 부는 이 한 겨울에 엄마 얼굴을 보는데 깊어진 주름이 너무 선명하다. 날카로운 바람과 맑은 하늘과 작아진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데 몇 년 만에 본 것처럼 엄마의 나이 듦이 낯설어 아무 말이나 하게 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 집을 헤집고 있는 윤성이만 찾게 된다. 집에서는 혼자서 잘 놀면 그게 그렇게 고맙고 이뻐서 그 사이 얼른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친정집에 와서는 윤성이만 끼고 있게 된다. 우리 윤성이가 얼마나 똘똘한지, 어린이집에서 뭐든 시범맨으로 맹활약하고 있다고, 이번에 머리는 또 얼마나 밤톨같이 깎았는지 온통 반지르르 윤기나는 자식 자랑만 하게 되는데 내 마음속엔 엄마의 주름과 약해진 이가 선명해진다.
엄마는 자식 셋을 낳으면서 멀쩡한 이를 여섯 개나 뽑으셨다. 그게 산통이었는지 몰라도 임신했을 때 이가 그렇게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멀쩡한 이를 뽑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 따라 치과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다. 자주 간 건지 가끔 갔던 치과가 인상 깊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내 이로 고생을 하셨다. 딸은 엄마 닮는다면서 제발 이것만은 닮지 말라고, 윤솔이 임신했을 때 수백 번도 더 말씀하셨었는데 정말 다행히 나는 치아는 아주 건강하게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멀쩡한 이를 뽑아서 낳은 자식들이 다 건강하게 자라 나름의 삶을 꾸리고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엄마의 이는 어느 순간 힘없이 무너졌다. 젊은 나이에 임플란트를 했고, 부분 틀니를 했고 남아있는 이와 잇몸도 제 역할을 못할 만큼 약해져 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마주한 엄마의 얼굴에서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엄마의 미소에서 가슴이 저려온다. 윤윤이들 때맞춰 치과에 데려가 진료 보고 썩은 이 하나 없이 건강하게 잘 키우는 기쁨을 누리면서도 엄마 치과 모시고 갈 생각을 못 하고 / 안 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야속하다. 야속하다는 말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귀하고 맛난 것 생기면 부모 생각 않고 자식 입에 먼저 넣기 바쁜 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가 야속하다.
꽃은 피고 꽃은 지겠지.
오늘 문득 늦은 밤 세수를 하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스쳤다. 피어나는 자식을 바라보는 것과 지는 꽃처럼 나이 드는 부모를 바라보는 것. 봄을 맞이하고 겨울을 보내는 것. 자연의 섭리 같은 거.
엄마한테 이 치료를 얼른 받아야겠다고 말씀드렸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치료할 돈은 모아뒀으니 걱정 말라고 대답하셨다. 돈 걱정부터 한 건 아닌데 엄마 말을 들으니 괜히 더 마음이 불편하다. 문제는 시간이라고 했다. 앞쪽에 무너진 이가 다섯 개 정도 되는데 이걸 하나씩 임플란트를 하려면 일 년이 넘게 걸리고 또 한 번 해봐서 그런지 겁이 난다고 하셨다. 그래서 해야 하는데, 엄마도 아시는데 엄두가 안 난다고 그렇지만 모아놓은 돈은 있으니 걱정 말라고 또 말씀하셨다. 무얼 해드려야 할까. 나는 왜 태어나서 저렇게 이쁘고 건강한 엄마의 이를 아프게 했을까. 왜 사랑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고 왜 성장은 희생 위에 꽃 피는 걸까 뭐 그런 생각.
얼른 그제 들었던 적금을 깨서 엄마 통장으로 조금의 용돈을 보냈다. 아마 이것은 내 마음을 위한 위로겠지. 윤성이 데리고 오느라 정신없어서 빈손으로 왔다고 통장으로 보내 미안하다고 말하고, 김치 잘 먹겠다고 말했다. 진짜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앙버터 호두과자를 꼭 사 오고 싶었는데 그걸 안 사 온 게 너무 후회가 된다. 후회가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윤성이는 한잠에 들었다. 운전하면서 새근새근 잠든 윤성이를 급하게 돌아보며 그 찰나의 기쁨을 누린다. 자식은 아무것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온 마음과 사랑이 흐른다. 자식이 주는 기쁨은 비할 데 없다. 정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