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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솔윤베씨 May 10. 2024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도통 모르겠다.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책 _ 구의 증명(최진영) 중에서








솔이는 속상할 때 

입을 닫는 스타일이다. 

아플 때 말고는 잘 울지도 않는다. 



타고나길 수다쟁이 유전자를 타고나

내 뒷통수에다 대고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는 녀석이

속상할 때 특히 엄마한테 서운할 땐 

입을 닫는다. 



오늘도 그랬다. 

멀찍이 뒤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오는 윤솔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앞서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민들레 홀씨를 

꺾어다가 불어대는 윤성이 엉덩이를 보면서 

윤솔이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할지 

고민했다. 








학원을 마치고 솔이는 친구들과 

아파트 커뮤니티 실내 놀이터에서 

놀겠다고 했다. 

윤성이도 누나를 따라 들어가 

방방거리다가 누나, 형아들이 안 놀아줬는지 

밖을 서성이는 나를 찾아

손을 잡고 실내놀이터로 이끈다. 



되도록이면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구석에

윤윤이들 가방을 내려놓고 

홀랑 뒤집어 벗어놓은 윤솔이 양말을

다시 뒤집고 

오가며 먹고 뱉어둔 추억의 과자

아폴로 비닐 한 데 모은다. 



그런데 저 멀찍이 트램플린 위에서

남자아이들의 격투기 소리가 들린다. 

한 두 학년 위의 남자 둘이

윤솔이 친구를 한꺼번에 공격하기도 하고 

또 윤솔이 친구는 고꾸라졌다가

눈이 뒤집혀 복싱을 하듯 주먹을 

허공에 휘갈기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이 흥분한 가운데

누구하나 웃거나 재밌어하지도 않는 가운데

저걸 싸움이라 불러야 할지 

놀이라고 불러야 할지

어쩌나... 

일어나 말릴까 말까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수십번



한쪽 모퉁이에서 놀란 건지

신기한건지 턱을 한껏 뒤로 밀어내고

두 눈으로 그 스파링을 흡수하고 있는 

윤솔이를 보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조용히 솔이를 불렀다. 

두 세번 불러도 

스파링의 열기에 내 목소리가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솔아 !!!! 소리를 질러 오라고 손짓하니 

옆에서 더 싸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여자애가 같이 따라 나온다. 



그리고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윤솔이는 쳐다도 안보고 

묻는다. 

'니 엄마야?'








입술을 굳게 다물고 콧김을 내뱉고

한 번 참았다. 

그리고 웃으며 솔이에게 말했다. 

저기 친구들 너무 위험하게 노는 거 같은데 

그만 하라고, 그리고 이제 집에 가자고. 



코앞에 있는 솔이에게 이 말을 하는데도 

니 엄마냐 물었던 여자아이가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씨발씨발 거리면서 

더 싸우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솔이가 마치 기찻길 반대쪽에 서 있는것처럼 

느껴진다. 



흥분해서 씨발씨발 거리던 여자애가

고개를 떨구어 내 눈과 마주치자

민망했는지 씨바를 하려다 말고 

귀엽게 웃으며 

시옷, 비읍이라고 낄낄거린다. 








하 _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도저히 무얼 참을 수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코로 깊은 숨을 내 쉬고 

윤윤이들 가방과, 옷을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솔이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건 아니라고. 

얼른 나가자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민들레 홀씨를 쫓는 윤성이 뒤로 

묵직한 관자놀이를 풀어낼 요량으로 

팽나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폭력성과 무례함에 대해. 



입을 닫은 솔이가 그 뒤를 따른다. 



솔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말을 할까.

내가 솔이를 혼낼까봐 혹시 겁을 먹은 건 아닐까.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간식을 챙기고 

책을 읽고 

저녁을 준비하고 

엘레나를 보고 

숙제를 하고 

양치를 하고 

자리에 누워 불을 껐다. 








평범한 일상이 다시금 

윤솔이를 수다쟁이로 만들었고 

뜨거운 내 콧김도 가볍게 날아가버렸다. 



팔베개를 하고 깔깔깔 웃어대는 윤솔이에게 

마치 아무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그 친구들 너무 위험하고 

거칠게 놀아서 엄마는 걱정도 되고 

보기 불편했다고. 



그리고 그 여자친구는 무슨 욕을 그렇게 하냐고

어른 앞에서 예의도 없이 

그게 뭐냐고 

그냥 삐진 친구처럼 가볍게 던졌다.

혹시나 또 정색하고 입을 닫을까봐 

조마조마해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솔이는 일상의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자기도 그 때 너무 화가 났다고

엄마는 그 친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욕하는 것만 보고 

그렇게 평가하고 나오는 모습에

화가 났다고 했다. 



?







나에게 화가 났다고?

엄마의 선입견에 실망했다고?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였다. 

나는 솔이의 대답은 생각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다시는 그런 위험한 놀이에 끼지도 말고 

욕하는 상스러운 애들이랑은 어울리지도 말라고 

어떻게 하면 안 그런듯

포장해서 말할까 그 궁리만 하고 

드디어 때가 되어 말을 했건만



엄마에게 실망을 했다는 말을 하며 

다시 깔깔깔 웃고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 중에는 

욕을 안하는 순수한 애들도 있지만 

욕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그런 것도 이해 못하냐는 듯이 내게 반문했다. 








엄마가 너를 온실 속에 넣어 

화초처럼 키우려는 속셈은 절대 아니지만

더구나 네가 화초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지만 

그렇지만 오늘 그 공간에서 

내 딸만이라도 쏘옥 빼오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은 사실이다. 



내가 나서서 격투기 하는 애들을 보드게임 시킬 수도 없고 

씨발씨발 거리는 애들의 입을 씻어줄 수도 없지 않느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할말하않' 그저 두 눈을 질끈 감고 

뜨거운 콧김을 내뱉고 일어나는 거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이는 내가 아니다. 

솔이 안에 있는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다.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솔이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씨발씨발 거리던 여자애도 

그게 무슨 말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들떠서 떠들어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평가하는 것도 섣부르단 것도 안다. 



혼자 속 시원히 

엄마에 대한 실망을 쏟아내고 

깊은 잠에 빠져든 솔이 이마를 쓸어 넘기며 

생각한다. 



엄마가 너에게 주고 싶은 건 

온실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고 

올곧게 살아갈 힘이라고. 

그리고 나에게도 스스로 말했다. 

지금 너는 딸에게 그런 사랑을 주고 있다고. 

충분하다고. 네 자신을 믿으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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