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일 뿐
라식 수술을 한 지도 꽤나 오래다. 서울에 살면서도 같은 서울이라고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압구정에서 나는 서른 해 지나 새로운 눈을 떴다. 썬글라스를 끼고 병원 주차장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새로 태어난 거라고. 앞으로 내가 보게 될 세상은 전에 없이 선명하고 뚜렷하고 깨끗하리라. 낮은 콧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안경 따위, 썬글라스도 수경도 대체할 수 없었던 안경 따위 이제는 벗어던지고 보란 듯이 눈화장을 하고 내친김에 쌍꺼풀 수술도 하리라.
그렇지만 라식 수술은 아이 둘 육아에 조금의 수월함을 더해줬을 뿐, 요가 수련할 때 작은 수고스러움을 덜어줬을 뿐 내 앞의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아니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더 선명하거나 뚜렷하거나 깨끗하거나 _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시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여행의 이유. 지난 6월 다녀온 베트남 여행에서 기록하고픈 몇몇 순간들이 있는데,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떤 순간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아마 이것 또한 과거의 내가 살아온 모습 중 하나겠지. 글쓰기도 미루고 저녁 반찬 준비하기도 미루면서 둘 중 그나마 더 하고픈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비 핑계 삼아 저녁은 나가서 사 먹어도 되겠는데 글쓰기를 이번에도 미루면 영영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 잊어버릴 것 같아 넉넉지 않은 시간을 알면서도 제목을 적고 글을 써 내려간다.
베트남 여행은 즐겁기도 했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편도염을 심하게 앓기도 했고, 그 와중에 윤성이가 장염에 걸려 내내 고생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더군다나 비행시간이 밤낮이 바뀐 터라 아이들 챙기면서 쪽잠을 자느라 신경이 내내 곤두서 있었다.
저녁 8시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12시에 도착. 호텔 픽업 택시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 숙소에 도착했는데 엉뚱한 곳이다. 알고 보니 픽업 기사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 엉뚱한 픽업 차량을 타서 엉뚱한 호텔에 내린 것. 이럴 땐 누가 돈을 내며, 숙소는 또 어떻게 찾아가며, 새벽 2시에 아이들의 칭얼거림과 베트남의 뜨겁고 습한 기온은 어찌할 것인가. 그래도 여행이니까 _ 이것도 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 거라는 염원으로 기운을 차렸다. 웃긴 일도 없는데 연신 웃어대며 윤윤이들에게 나트랑의 새벽을 설명했다.
드디어 도착한 숙소. 바로 맞은편에 휘황찬란한 클럽이 있다. 핫하디 핫한 베트남의 젊은이들과 여행객들이 클럽 안팎으로 바글거린다. 뭘 본 것도 아닌데 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 그 시끌벅적한 클럽이 그저 문란해 보일 뿐 흥이라곤 돋질 않는다. 음악 소리는 또 얼마나 크고 담배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그런데 바로 길 건너에 우리가 첫 여행을 시작할 호텔이 있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한 건물에 있어야 할 클럽과 모텔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따로 지어놓은 것 마냥 호텔마저 불순해 보인다.
엉뚱한 픽업 택시를 타고 도착한 불순한 호텔엔 징그럽도록 빠알간 장미로 온통 장식되어 있다. 실제로 그 새벽에 장미꽃향이 코를 찌른다. 또 로비 문을 다 열어놓아서인지 에어컨도 작동이 안 되고 그 새벽에 우리처럼 도착한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마치 새벽 꽃시장 마냥 호텔 로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나는 장미향에, 사람들의 열기에 압도당해 그리고 무엇보다 엉뚱한 택시 기사에게도 돈을 지불하고 타지도 않은 우리 호텔 픽업 차량에도 이용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상황에 짜증이 콧김으로 새어 나온다. 그래도 이 또한 추억이 되리니 하며 많이 참았다. 무얼 참는 건지는 몰라도 내 안에 뜨거운 무언가를 억눌렀다. 새벽 두 시엔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나는 참았다. 내가 폭발 한 듯 클럽을 당장에 옮길 수도 없고 나트랑의 날씨를 몰아낼 수도 없고 이 호텔의 장미를 시들게 할 수도 없단 걸 아니까. 참았다.
하지만 오래 참지는 못했다. 나는 과거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자꾸만 살아가게 된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한 번만 더 꾹 눌렀으면 이 글을 쓸 일도 없었겠지만 나는 오래 참지 못했다. 택시 이용료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눅눅한 로비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멀찍이 앉아있는 솔이에게 말하듯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아니 도대체 이 호텔은 이 많은 장미로 무얼 할 생각이냐고 _ 이 싸구려 모텔 같은 데를 아빠는 왜 예약한 것이며 맞은편 클럽은 도대체 뭐냐고. 냄새도 날씨도 뭐 하나 좋은 것도 없는 여길 왜 선택한 건지 엄마는 너무 짜증이 난다고. 그 와중에 중국사람들은 밤낮없이 이렇게 시끄럽고 예의라곤 모른다고. 천박하다고. 엄마는 너무 싫다고 여기가 싫다고. 이쯤 말했을 땐 옆에 솔이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볼만도 한데 한 번 터진 입이라 그런지 아랑곳 않고 눈에 보이는 선명하고 뚜렷하고 깨끗한 모든 것들에 불평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도대체 언제 틀 생각인지, 아니 에어컨이 있기나 한 건지, 저 큰 장미를 천장에 달아놓고 떨어져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장미밭을 만들어 놓은 건지, 설마 방마다 장미가 있는 건 아닌지 혼자 기겁까지 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화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감정을 다 쏟아붓고 나서 고개를 돌렸을 때 솔이 얼굴엔 어색한 주름이 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방금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천장에 달린 장미를 바라보며 저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또 우리 앞에서 여전히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는 중국인들을 보고 너무 시끄럽다고 말했다.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며 클럽 음악 소리에 정신이 없다며 이 호텔은 정말 별로라고 말했다. 마치 내가 한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앵무새 인형처럼, 무슨 말이든 날개를 흔들며 똑같이 따라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앵무새 인형처럼 솔이 입에선 내가 한 말들이 똑같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솔이의 옆모습을 보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잘못 탄 택시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도 솔이와 윤성이는 나트랑의 밤하늘을 보며 설레어했었다. 엄마 아빠가 정신없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신나게 호텔 로비로 뛰어와 장미를 만져보고 신기해하며 뱅글뱅글 돌기도 했었다. 새벽까지 잠을 설쳐 피곤하고 더위에 많이 지쳤을 텐데도 연신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뛰어다녔다.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새로운 언어에 신기했는지 한 동안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새침하게 지나가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떼지 못했었다. 솔이와 윤성이는 여행의 낯선 순간들을 새롭고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그런 설렘을 선명하고 뚜렷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다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런 순간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이 여행길에 오른 것이었으니.
그런데 엄마의 감정과 언어에 숨 죽이게 되는 아이들의 설렘을 마주하면서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설렘을 방해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 이 여행은 우리 가족 각자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짧았지만 분명하게 내 안에서 그런 생각이 싹텄고 부끄럽지만 솔이에게 말했다.
방금 엄마가 한 말들은 엄마가 많이 지쳐서 과장되게 불평이 나온 거지 _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솔이가 보는 이곳, 우리 호텔 그리고 사람들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말과 기분 그리고 생각까지 많이 닮게 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모든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고. 조금 전 엄마의 모습은 솔이의 기분과 다를 수 있다고. 그리고 말하고 보니 엄마가 불평이 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이럴 땐 꼭 엄마를 따라올 필요가 없다고. 솔이 눈에는 저 장미가 너무 멋지고 근사할 수도 있는데 엄마가 괜히 엄마 생각을 강요한 건 아닌지 후회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그랬더니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색하게 자리 잡고 있던 솔이 얼굴에 그늘이 가신다. 그리고 처음 여행을 나서던 그때의 생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 그래, 엄마 _ 엄마도 좀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해 봐 '
품 안의 자식이 열 살 까지라면 아직 일 년도 넘게 남았는데 솔이는 이렇게나 빨리 자라 있다. 그리고 방에 가보면 너무 멋지고 좋을 거라고 씩씩거리는 엄마를 달래주기까지 한다. 부끄럽고 한 없이 고맙기만 하다. 그때 솔이와 그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나는 너무 오만하게 남은 여행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가끔 부모라는 이름을 달기에 부족한 순간도 마주한다. 솔이는 그런 순간을 꼭 정면승부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 아마 세상 모든 아이들이 모든 부모에게 그런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_ 베트남 여행의 한 순간을 기록해 본다.
그리고 베트남 여행을 다 끝내고 돌아봤을 때 우리의 첫 번째 호텔이었던 장미 대잔치 하바나 호텔이 가장 좋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 장미들 앞에서, 밑에서 사진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모른다.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일 뿐 장미는 아무 잘못이 없다.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