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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래요, 원래 다 그래요.

내가 이 지경인데

by 뚜솔윤베씨

초보반이라고는 하지만 각 회원들마다 실력차가 크다. 내가 벽을 짚고 팔을 돌리며 음파 음파 연습을 할 때 선두그룹들은 평영 발차기를 하고, 내가 겨우 익힌 팔 돌리기와 호흡법으로 킥 판에 온몸을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갈 때 그 선두그룹들은 한 팔 접영을 한다. 그리고 내가 속한 레인을 제외하고는 그 멋짐 터지는 양팔 접영에, 오리발에, 다이빙에 무슨 상어처럼 물속을 오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멋있고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한 설렘과 기대, 걱정이 차오른다. 그중에서도 파이팅이 제일 강렬하게 차오른다. 나도 정말 수영을 잘하고 싶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있지만 선생님이 처음으로 이제 킥 판을 빼고 자유형을 하라고 했을 때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돌았다. 핑핑.

한 번도 킥 판 없이 수영해 본 적 없는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온 것처럼 마치 등껍질을 떼어내고 진화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비운의 거북이처럼 눈물이 핑핑 돌았다. 나는 킥 판 없이는 수영 못해요.라는 말이 저절로 계속해서 나왔다. 하지만 수영장의 정말 독특한 점이 있다면 마치 펭귄 무리 속에 속해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첫 번째 펭귄이 물살을 가르면 주르르르르 다 따라가게 되어있다는 것. 자석에 들러붙는 쇳가루처럼 우르르르르 따라붙게 되어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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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서 그것도 킥 판 없이 처음으로 물살을 갈랐을 때, 두 번 팔을 저었나 그리곤 멈춰 섰다. 그 두 번 팔 돌리기를 하면서도 깊은 물속에 풍덩 빠진 것처럼 물속에서 꽤나 크게 허우적거렸다. 그러면서 물은 물대로 먹고 귀에 물이 가득 차 물 밖에 나올 땐 눈물인지 콧물인지 침인지 모르게 온 얼굴을 뒤덮은 물을 훔쳐냈다. 내가 이 지경인데 내가 이 지경인 걸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선두그룹들은 이미 개구리처럼 평형 중이고 선생님은 내 엄마도 아니다. 나를 보고 있지도 않다. 나는 비빌 곳이 없다는 걸 콧물을 닦으며 확인하고 다시금 물속으로 풍덩. 팔을 열심히 휘젓고 발을 구르고 고개를 까딱이며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도 다시 제자리에 선 느낌이다. 25미터가 너무 멀고 험난하다.



수영을 한 건지 걸어온 지 모르게 다시 출발점에 왔을 때 나는 이건 분명 잘못된 상황이라는 걸 알리려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이건 아니라고, 저는 아직 킥 판을 뗄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물도 너무 많이 마시게 되고 귀는 아직도 먹먹한데 물이 빠질 생각도 안 한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밑으로 가라앉기만 한다고. 나는 다시 내 킥 판을 껴안겠다고! 그리고 나도 사람들처럼 귀마개를 사 온 다음 킥 판을 떼고 자유형 연습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바쁘시다. 선두그룹 보느라, 코칭하느라, 내 말의 구 할은 잘라서 들으신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더듬더듬 킥 판을 찾아 손을 뻗는데 그런 나를 가로막으며 선생님이 말했다.



누구나 그렇다고,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처음엔 다 그렇게 물도 먹고 귀에 물도 들어가고 하는 것 같지도 않게 시작을 한다고. 그러니 그냥 하라고. 익숙해지고 결국엔 하게 된다고. 그리고 귀마개 하면 계속해야 하니까 귀마개도 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마치 아빠처럼.



그때는 아빠 같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얄밉기만 하더니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선생님 답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인간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 하지만 정말 선생님의 말대로 그날 이후로 나는 킥 판에 의지한 자유형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물을 먹을 때도 귀에 물이 들어가 먹먹해 콩콩콩 뛸 때도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흘려보냈다. 평형을 하는 사람들도, 접영을 하는 사람들도 물속에선 나처럼 고된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다독였다. 언제나 배움은 삶의 큰 기쁨이라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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