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솔이 등원 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솔이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단 하나의 사실만 알아야 한다면 그것은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것.
솔이가 작년 9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녀 다행히 나도 여유 시간을 가지고 있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정말 좋아하는 글도 쓰고 있다. 그래도 좀처럼 내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 건 채워지지 않은 고립감이란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연애시절,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주위에 뜻 맞는 몇몇 친구가 있었을 뿐 대인관계가 넓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타지에서 신혼생활, 임신 출산을 겪다 보니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기가 어려운데 원래 있던 친구들도 하나 둘 소원해지기 시작해 결국엔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큰 행사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내 삶에 몰두하다 보니 안 그래도 친구 사귀는 재주가 없는데 이번 생은 틀렸다 싶기도 했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상황은 똑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주중에 열심히 육아와 가사 일을 남편은 회사일을, 그리고 주말엔 가족끼리 나들이를 간다. 그런 생활이 결혼 생활 5년 중에 신혼 1년, 임신 기간 1년을 빼면 3년을 꼬박 그렇게 지냈다. 나는 대체로 이런 패턴에 만족한다. 가족과 즐거운 추억도 만들 수 있고 또 남편과 연애 때와는 다른 동지애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
어제 오후엔 솔이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한 참을 놀다가 남편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가까운 기차역에 동료에게 회사차를 건네주러 갔다가 퇴근한다길래 나는 집에서도 가까우니 우리도 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남편은 바로 거절은 안 하지만 곤란한지 차가 많이 막히지 않을까? 그, 그래 좋아? 등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저녁밥 안 차리고 설거지 안 할 생각에 신이 나서 계속해서 기차역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남편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 애매모한 거절같이 들려 일단은 전화를 끊고 다시 연락하자고 했다.
솔이와 한 참을 더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솔이 킥보드를 밀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동료랑 같이 저녁 먹고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 걱정 말고. 남편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괜찮겠어?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가 저녁을 다 먹고 솔이가 잠자리를 준비하는 시간까지 연락이 없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가족끼리 제일 편안하고 좋다고는 하지만 왠지 오늘 오후 상황은 그동안의 시간들이 남편에겐 부담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없이 남편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 좀 숨이 막히기도 하겠지 3년을 꼬박 그랬으니. 그러고 보니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은 그저 편안함, 낯설고 새롭고 어려운 것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안도감. 변화하지 않으려는 마음.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남편과 무엇을 하지 않아도 육아하는 내 곁에,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그것에만 너무 몰입했던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어제 사진첩에서 남편과 둘이서 찍은 사진의 내 모습이 왜 그리 약해 보이고 슬퍼 보였는지 이해가 갔다. 분명 웃고는 있는데 어쩐지 슬퍼 보였다. 많이 약해져 있는 나 자신이 스쳐 지나가 괜히 외면하고 솔이 사진을 보며 웃고는 넘겼던 일.
나는 결혼, 임신, 출산을 하면서 나 자신을 많이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게 외부적인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작은 원망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큰돈은 못 벌어도 지금처럼 생활비 계산하며 옷 한 벌 못 사고 쩔쩔매다 괜히 가족한테 화풀이하는 상황은 안됐겠지. 나도 조금 더 가볍게 즐기며 살 수 있었겠지 하면서 꼭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처럼 생각했던 적도 많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 안에서 스스로 약해졌던 것이다. 남편에게 기대려고만 하고 숨으려고만 하고 그러면서도 변해버린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정작 나는 작은 휴대폰 안에서만 세상을 보려고 하는 못난이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남편도 변했겠지 나도 변했으니.
그런데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렇게 남편과의 관계,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지금 나는 왜 2세를 계획하고 있는 걸까? 정말 더 행복하기 위해 선가? 아니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제저녁에는 한 없이 가라앉았다. 솔이에게 티 내고 싶지 않아 많이 노력했지만 말없이 화장대 서랍을 정리하면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드넓은 대지의 첫 시작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은 워킹맘이든 육아맘이든 하나같이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