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생각하며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남편은 솔이와 키즈카페도 가고 식사도 잘 챙기며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저녁 시간이 다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솔이에게 너무 차가운 엄마, 무서운 엄마는 아닐까 하고.


남편과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 말 잘 듣는 착한 학생, 부모님 뜻 거스른 적 없는 착한 자식이었다. 타고난 성격도 유순하고 기질적으로 누구와 싸운다거나 남에게 쓴소리를 할 만큼 자기 목소리가 뚜렷하지도 않다. 전형적으로 타인과 자신의 욕구를 적절히 맞혀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대게 화를 당하는 입장,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로 보이는 사람, 착하지도 않으면서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 그러다가 속이 뭉그러지는 그런 사람들이다. 나는 솔이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닮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었다. 인생을 살아보니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험난 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이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솔이는 속세에 찌들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선량함과 따스함을 가진 아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양보하고 친구가 넘어지면 걱정하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나누기를 좋아한다. 친구들이 고집을 부리고 공격을 할 때도 대체로 당하고 울기도 많이 운다. 문화센터 다닐 때도 많이 치여서 속이 상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솔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솔이가 독립적이고 강하게 자라 불필요한 상처로 눈물 흘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솔이를 엄하게 대했던 적이 많았다. 얼마 전, 가족끼리 놀이터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다들 손을 씻는데 솔이가 신발을 못 벗는다며 신발을 신고 거실까지 들어왔다. 나는 얼른 신발장 앞에 가서 벗고 오라고 했는데 솔이가 혼자는 벗을 수 없다며 울기 시작했다. 요즘 독립과 의존 사이를 외줄 타기 하는 솔이라 나는 그런 솔이를 믿고 끝까지 신발을 벗겨주지 않았다. 나갈 때도 혼자 신었으니 ( 혼자 하고자 할 때 도움을 주면 울고불고 난리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벗을 때도 혼자 하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솔이는 그게 너무나 서럽고 속상했는지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상태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자기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됐겠지. 자기 자신을 잘 챙기는 법을 알았겠지.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바쁘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강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내가 강하게 키운다고 솔이가 그렇게 자랄까? 그리고 솔이가 행복할까? 그 일이 나에게는 좋은 훈육이자 가르침이었지만 솔이에겐 그저 부모의 냉담한 반응, 외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도대체 나는 누구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내 자식을 키우고 있는 걸까?








그리고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가진 피해의식이 솔이에게 전해지고 있구나. 내가 이 아이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해 주고픈 세상은 이게 아닌데 나는 나의 약함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구나 깨달았다. 나는 솔이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를 행동하게 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가진 두려움이란 것을 알지만 나는 솔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지 않았던가. 세상의 어떤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길, 그래서 솔이가 온전하게 자신에게 몰입하여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라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왜 타인의 판단에, 세상의 잣대에 맞설 방패부터 솔이 손에 쥐어주고 있는지, 왜 삶의 방향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밖을 향하도록 말하고 있는지.






집으로 돌아와 영상을 보고 있는 솔이 옆으로 다가가 볼에 뽀뽀를 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 천사 같은 눈빛에서 나는 확신했다. 솔이를 솔이답게 키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하고 보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걸. 비록 언젠가는 솔이도 인생의 쓰라림을 맞보더라도 그 주체는 솔이가 되어야 함을.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 무엇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하게 성장하는 인생' 마이너스 육아.

금방 잊고 또 부모라는 권력으로 내 욕심을 채우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