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이곳에서 집중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오늘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왔다. 글을 쓰는 일이 직업도 아닌데 이렇게 커피값까지 내가며 생색을 내야 할까, 생각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 않는가.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글쓰기다. 그러니 나는 남편을 만나 한동안 잊고 있던 글쓰기 본능을 다시금 꺼내어 그 꼬인 매듭을 다시 풀고 싶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일이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 밥솥에서 찐빵 하나 꺼내먹고 출근한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런 서두를 붙인다. 아메리카노 가장 작은 거 하나에 위안 삼으며.
오늘 등원 길, 솔이가 발레복을 입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발레복 신발 한 짝은 찾으며 본격적으로 발레 모닝이 시작되었다. 어제 새벽 이불에 쉬아하고 아무 옷이나 갈아입혀줬더니 내내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 뜨자마자 좋아하는 옷으로 달려든다. 요즘의 솔이는 그렇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 그런 솔이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엄마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발레복에 신발, 공주 머리띠까지 하고 한 껏 신이 났다. 현관 앞에서 준비를 하고 기다리니 어디선가 접이식 옷걸이를 들고 나온다. 어제저녁 아빠가 쌀통 옆에서 찾은 휴대용 옷걸이. 그게 신기했는데 그걸 어린이 집에 가지고 가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라고 했더니, 혼잣말을 한다.
' 내가 이거 어린이집에 가져가면 친구들이 내 거야, 내 거야 하고 뺏아가겠지?'
나는 말했다. ' 처음 보는 거니 다들 궁금해는 하겠다. '
'그럼 가져가지 말아야겠다' 솔이는 뒤돌아 식탁 위에 옷걸이를 올려두고 가벼운 걸음으로 나온다.
하, 귀여운 녀석. 귀엽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편에 주름이 진다. 솔이는 종종 저런 모습을 보인다. 맛있는 간식이나 새로운 장난감을 자랑은 하고 싶은데 친구들이 달라고 하거나 만져보려 할까 봐 미리 걱정하는 일. 또 상황은 정확이 기억이 안 나지만 놀이터에서도 솔이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 우리 꺼 누가 가져가면 어떡해 '
솔이의 마음이 그런 거겠지, 정말 우리의 것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는 거겠지.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이 너무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확히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대중목욕탕엘 가면 늘 불안해했다. 목욕 바구니를 놓고 탕 안에 들어가면 꼭 누군가 와서 내 목욕 바구니에서 샴푸나 치약을 몰래 쓸 거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때수건이나 치약을 마음대로 빌려 쓰는 할머니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건 내 기억인지 착각인지 단 한 번뿐이었던 거 같은데 나는 그 불안 때문에 탕 안에서도 언제나 목욕 바구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아, 얼마나 피곤한 삶이었던가.
과거형으로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그런 마음이 남아있다. 아니,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낮아져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산다. 그러니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하고 불안한가. 그런데 오늘 그런 내 인생을 솔이를 통해서 본 듯해 마음 한편이 쪼그라들었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생각만 해도 불안하고 우스꽝스러워 남편한테나 한 번씩 농담으로 말하는데, 그걸 솔이는 세상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니.
정말 너는 완벽하게 나를 닮았구나.
아마 솔이가 그러는 이유는, 장난감을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과 친구들로부터 장난감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이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솔이에게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 솔아,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선량해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는단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런 일은 없어' _ 대신에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여러 방법 중의 하나 일 수도 있다고, 미리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게 집착과 불안의 문제로 자라지 않도록 솔이의 마음을 더 꽉 채워주고 싶다. 솔이가 그런 감정들로 흔들리지 않도록. 솔이를 더 많이 더 건강하게 사랑해야겠다.
오늘 글은 여기서 끝. 오늘은 솔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잘 자고 왔으면 좋겠다. 솔이를 보내고, 솔이를 기다리는 나의 자유시간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