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속으로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솔이 방학이 끝났다. 친정과 시댁에서 무더운 시간을 보내고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했고 솔이와 나는 아직도 에어컨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더위 속에서 낮잠 자며 뒤척일 솔이를 생각하니 (어린이집에 각 반마다 선풍기, 큰 유희실에 에어컨이 있다) 마음이 무거워 자체 방학을 했다. 솔이와 함께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때마침 요가 학원도 내일까지 휴가고, 헬스장을 한 동안 못 간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개미 한 마리 없는 날씨에 솔이를 보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다고 너무 즐겁지도 않다. 오랜만에 가질 혼자만의 시간에 들떠 어제저녁엔 아주 꼼꼼히도 하루 계획을 짜 두기도 했다. 남편이 보내 준 커피 쿠폰으로 아메리카노도 한 잔 즐길 생각이었는데, 짝꿍이 생겼으니 일단은 보류. 남편이 솔이와 함께 전화를 받은 나에게 '너무 무리하지 마' 충고한다. 분명 충고다, 그렇게 의기양양 솔이랑 가정보육 한데 놓고 둘이 또 싸우고 성질부리기 전에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뜻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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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까지는 허허 호호 즐겁다. 솔이가 늦잠을 늦게 자서 이제야 씻고 컴퓨터 앞에 앉는데도 웬일인지 아직까지 기분이 허허 호호하다. 점심때 폴리 보여 달라는 솔이를 겨우 꼬셔 라디오를 들으며 밥을 먹는데, 안타까운 사연 하나가 들여왔다.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지켜나가던 한 연인이, 오랜 기다림 끝에 양가의 결혼 허락을 받은 후, 남자 친구가 교통사고로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 밥 한술 뜨고 고기 얹어 솔이 먹으느라 정신이 없는데도 그 사연이 어찌나 애절하고 마음이 아프던지, 솔이에게 말했다. 떠난 사람도 혼자 남은 사람도 참 안됐다, 마음 아픈 이야기다 그지? 마치 내 이야기인양 정말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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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들은 솔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내가 라디오로 들어가서 혼자 남은 사람 옆에 있어줘야겠다. 엄마 나 라디오에 넣어줘 ~~~~ "

솔이 말을 듣고도 마음이 정말 아팠다. 순수한 솔이의 마음과 고운 표현이 내 심장을 두들겨 패는지 너무 사랑스러워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세상 진지한 맞장구를 치며 솔이를 위아래로, 옆으로 꾹꾹 누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정말 솔이 말대로 혼자 남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하며.



그렇게 깊은 슬픔도 아이의 순수함에는 못 당하나 보다. 솔이와 따듯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포도 껍질을 뱉는 솔이 옆모습을 보는데,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옥이 언니.

서울 이사와 유일하게 언니라 부르며 따랐던 언니, 옥이 언니. 지금은 연락이 거의 끊겨서 안 본 지도 꽤 오래다. (옆 옆 동에 산다 ㅠ) 언니에 대해선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었지만,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혼자 추어탕을 먹을 때도 한 그릇 사주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안 났다. 당장에 언니가 보고 싶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연락해도 서로 마음에 응어리가 있으니 관계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거란 걸.



그런데 정말 반갑고 고맙게도 지난주, 친정에 있을 때 아침 일찍 옥이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며 차 하잔 하자는 언니의 전화. 나는 그동안 연락할까 말까 고민만 하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언니 전화를 받으니 너무 반갑고 고마워 서울 올라가면 꼭 연락하겠다고, 추어탕을 사주겠다며 말을 쏟아냈다. 긴장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런데, 오늘 라디오에 들어가 위로해주고 싶다는 솔이의 말이 언니를 떠오르게 했다. 내가 먼저 연락할걸, 괜히 연락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지, 언니는 나를 별로 가깝게 생각 안 할 텐데 쪽팔리면 어쩌지, 괜하 무안하면 어쩌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솔이처럼 사연을 몰라도, 누군지 몰라도 그냥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깨끗한 마음만 있으면 됐을 텐데.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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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주위에 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간관계의 단계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아예 새로운 인연을 만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그러고 보니 예전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그 친구들도 취업, 결혼, 개인 사정으로 연락이 소원해지고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으니 정말 휑한 느낌을 많이 받기도 한다. 애기 엄마들 사귀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고 육아 동지라는 말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는 요즘. 라디오로 들어가겠다는 솔이의 말이 무슨 법정스님의 현답처럼 들리는 오늘이다.



그나저나 내일은 더 덥다는데 어린이집 가나요 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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