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한 그릇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임신 12주 차.



사람이 아프다가 회복될 때 제일 먼저 돌아오는 게 식욕이다. 나는 오늘 자 12주 1일 차로 식욕 요정님을 맞이하고 입덧 요정님과 작별하였다. 그렇게 나는 회복 중이다. 지난 두 달은 정말 괴로우면서도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입덧 때문에 하루 온종일 누워있어야 했고, 일상이 뒤엉켜버렸고, 솔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버거웠다. 솔이가 먹는 작은 식판 하나 채우지 못해 반찬가게를 수시로 갔었고, 퇴근하고 오는 남편에게 밀린 집안 일과 육아를 전부 다 쏟아붓고 누워있어야 했다.


입덧 덕분에 취미에 없는 요리를 당분간 안 할 수 있었고, 먹고 나면 괴롭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음식들은 그때 그때 나가서 혼자 사 먹고 들어왔다. 입덧 덕분에 지쳐가는 와중에도 운동을 하며, 솔이에게 에너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나는 더욱 성숙하겠지 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내 뱃속에 튼튼하게 집을 짓고 자라는 동안 나도 내 그릇을 키우기 위한 성장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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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의 두 달만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 점심으로는 자장면 한 그릇에 생전처럼 공깃밥 추가, 양념까지 싹싹 쓸어 담고 와서 그런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오늘 자장면을 먹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장면 한 그릇 오천 원. 딱인데, 같은 면이면서 스파게티는 왜 이렇게 비싸지? 자장면에 돼지고기도 야채도 많이 들어가는데 음 이건 아니야, 파스타에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었어. 여기가 중국 성이니까 이탈리 아성이라던가 뭐 파리 성 이렇게 해서 합리적인 파스타 가게를 하나 차려야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자장면이 너무 맛있고 배가 불러오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허허 웃었나 보다. 나에게 정말로 식욕 요정이 온 게 분명하다.



그렇게 자장면을 먹으며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제저녁에 뽀뽀해줘서 고맙다고.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어제저녁 유난히 소화가 잘 안 되고 그렇다고 방귀도 빵빵 힘 있게 안 나와 솔이를 재우고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속 편히, 맘 편히 방귀나 좀 뀌어보려고. 남편은 마침 방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누워 입 꾹 다물고 휴대폰 보며 잔잔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일을 마친 남편이 어둠 속에 나타나 다짜고짜 뽀뽀를 해댔다.




뭐 키스다. 그 자체는 너무 로맨틱하고 에로틱해서 좋았는데, 지금은 방귀 시간. 더구나 덮고 있는 담요만 들면 구린내가 진동을 할 테고 입을 한참 다물고 있었더니 입에서도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즉, 나는 아무런 준비도 안됐는데!!! 기습 구애에 적잖이 당황, 괜히 ' 이 양반이 동네 창피하게 왜 이래~'라는 반응으로 남편을 돌려보냈다. 그러고 내내 누워 속 편히, 맘 편히 쉬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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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자장면 한 그릇에 마음이 넓어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입덧하느라 폐인처럼 지내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보듬어 주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나도 애정표현을 적잖이 하는 편이긴 하지만 결혼 5년 차가 되니 딥키스는 선뜻 선택지에 올라오지 않는데, 남편은 고맙게도 올바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구나 싶어 그 고마움을 전했다. 자장면 사진과 함께 : )




사실 입덧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나만큼 남편도 힘든 시간이었다.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육아하랴, 집안일 하랴, 일 하랴, 아내 비위 맞추랴 등등 아직 본격적인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하얗게 불태워버린 남편의 체력과 정신력에 조용히 박수를 보내며. 다행히 정상궤도로 진입한 12주 차 오늘 남편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눠야겠다. 근데 남편은 출장 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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