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가족 이벤트가 생겼다. 남편 생일에 선물 받은 아웃백 식사권.
나는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비 탔다고 한턱 쏘는 선배 따라 두어 번 가 본 게 전부, 남편은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한 번 가봤는지 안 가봤는지 정확하지 않은 상태. 아웃백 빵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걸로 봐서 일단 가 본 걸로. 그렇게 십 년도 넘게 발길 닿지 않았던 곳에 식사 초대권이라니, 더군다나 스테이끼 집이라니. 이런 글을 쓰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칼질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지 마주하며 웃음이 나온다.
남편은 구글링으로 일단 정보를 모았고 쓸 수 있는 쿠폰들, 메뉴들,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하는지 잔뜩 메모를 했다. 나는 솔이 머리를 땋으며 생일 쿠폰을 쓰면 치킨 샐러드를 공짜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막 기타 치며 노래 불러 주냐며, 자기는 그런 거 부끄럽다며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다. 그렇게 작은 설렘으로 우리는 아웃백으로 간다.
솔이가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넘어가면서 우리 가족의 외식은 더없이 즐거웠다. 사실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엔 내가 자유롭게 음식을 먹지 못해 제한적이었고, 솔이 이유식을 먹일 때면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식당들만 골라서 갔다. 그러니 불을 쓰는 고깃집이라던가, 횟집이라던가(남편 생선 안 먹습니다), 사람 많은 맛집은 항상 제외했었다. 일단 이유식을 먹을 만큼 어릴 땐 주로 낮잠을 자는 시간과 우리 식사 시간이 겹쳤다. 그래서 잠든 솔이가 깨지 않을 조용한 식당, 유모차를 둘 공간이 있거나 아기 의자가 있거나 뭐 그렇게 따져가며 가다 보니 칼질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었다.
그래도 외식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자리에 앉아 천천히 음식을 먹는지가 채 1년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남편과 나 둘 중 한 사람은 솔이를 맡고 나머지 사람이 허겁지겁 뜨겁거나 차갑거나 상관없이 일단 식사를 마치면 교대로 먹곤 했었다. 솔이가 부모 식사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고 식당에서 몇 번을 일어났다 앉았다,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도 그렇게 남이 해주고, 내 돈 써서 먹는 밥이 맛있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다 추억)
다행히 솔이의 유아식이 시작되고는 그렇게 허겁지겁, 촉박한 외식은 많이 줄었다. 솔이도 앉아서 스스로 젓가락질도 하고 우리가 먹는 음식도 나눠먹을 여유가 생겼다. 아직 매운 음식은 못 먹으니 제외하고라도 돈가스, 쌀국수, 칼국수, 볶음밥, 자장면, 보쌈 등 꽤나 많은 종류의 외식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일 년 가까이하다 보니 돈가스, 국수는 지긋지긋하다. 우리 동네에서도 돈가스, 국수_ 여름휴가를 가서도 심지어 해외여행을 가서도 돈가스나 국수만 먹었던 것 같다. 지긋지긋한 돈가스 국수 같으니. 그런데 뚜뚱 아웃백이라니. 큰 설렘으로 우리는 아웃백으로 간다.
사실 내 입맛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입맛이다. 맵고 짜고, 특히 해산물을 좋아한다. 어릴 때 중국집에 가면 오빠랑 동생은 자장면을 시키는데 나는 꼭 매운 짬뽕을 시켜서 국물까지 다 마셨다. 가족끼리 온천을 다녀오면서도 아빠가 돈가스 먹을래 매운탕 먹을래 물으면 꼭 매운탕을 먹자고 했었다. 남편 만나고는 단 한 번도 먹지 않았지만 나는 철마다 과메기에 전어에 그리고 민물매운탕까지 먹으며 자랐다. 이 맛있는 걸 안 먹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정확한 생선과 인데 남편은 나와 정반대이다. 남편은 아침으로 맥모닝을 먹고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고 저녁으로 피자를 먹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다. 추어탕과 민물매운탕은 입에도 못 대는 사람이다.
그러니 솔이의 유아식을 겸한 가족 외식 메뉴가 지긋지긋한 건 나뿐이다. 그런데 횟집은 아니더라도 칼질하는 스테이끼 집이라니, 너무 설레고 긴장돼 솔이 머리를 땋는 동안 떨림 가득한 콧노래가 나온다.
드디어 아웃백.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적어온 대로, 선물 받은 쿠폰 가격에 맞추어 멋지게 주문을 했다. 스테이크 고기도 제일 큰 사이즈로 했고 생일 쿠폰으로 샐러드도 시켰고 이런 데서 먹는 수프도 나온단다. 그리고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버섯요리도 먹고 싶대서 기분 좋게 그것도 시켰다. 드디어 끝. 그런데 점원이 밝고 높은 톤으로 주문을 확인하며 물어본다.
고기는 어떻게 구워드릴까요?
이런 질문을 생전 들어본 적 있었던가, 그래도 남편보다 두어 번 더 가봤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주문했는데 이 질문을 받으니 말문이 막힌다. 맵게 덜 맵게는 많이 들어봤는데 고기를 어떻게 구울지는 드라마에서나 본 것 같다. 그것도 솔이 낳고 텔레비전을 없앴으니 정말 까마득해진다.
웰던? 미디엄? 뭐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적당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의 당황스러움과 고민이 너무 오래 걸렸나 보다. 아니면 당황해서 빨개진 내 얼굴을 봐서인지 남편이 웰던으로 해달라고 말했고 나는 머쓱해하며 앵무새처럼 그 말을 따라 했다. 웰던으로 해주세요.
아마 웰던이 아니라 시뻘건 핏물이 흘러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 십 년 만에 온 게 들통이라도 난 것처럼 부끄러워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연애할 때도 국밥 스타일이었고 육아하며 칼질 좀 건너뛰었다고 그게 창피한 일은 아닌데 나는 왜 아웃백 앞에서 이렇게 작아졌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허허허 웃으며 주문을 마치니 곧 스테이크가 나온다. 불쑈도 해준다. 맛도 좋다. 그렇게 와구와구 먹고 있다 보니 점원이 와서 무릎을 꿇으며 즐거운 식사 하고 계신가요 친절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아웃백은 정말 멋진 곳이었구나.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빵이 필요하냐며 빵도 더 챙겨준다. 세 식구라고 빵도 세 개씩이나 준다. (아직 하나는 냉동실에 남아있다) 아웃백은 정말 멋진 곳이었구나.
그렇게 특별한 가족 이벤트를 마치고 돌아오며 솔이는 몰라도 남편과 나는 옅은 흥분상태임을 느낀다.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추억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식사 초대권 없이 또 갈지는 모르겠다. 사실 돈가스, 국수를 많이 먹긴 했지만 지긋지긋 까지는 아닌데 오버를 한 듯하다. 세상에 맛있는 돈가스 국숫집이 얼마나 많은데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