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안경을 바꿨다. 2년쯤 썼나? 기분 전환도 할 겸 한 번 바꿔 볼까 생각하던 찰나 솔이가 밟아서 안경이 부서졌다. 여차여차해서 쓰고 다녔는데 얼마 전 솔이 하원 길 카시트 벨트를 채우고 돌아 나오는데 안경알이 바닥에 탁 하고 떨어졌다. 그래서 고쳐서 쓸 수도 있는 안경을 두고 새로운 안경을 하나 맞췄다. 금테를 두른 안경이라 바싸다. 또 솔이가 밟을까 봐, 남편이 무릎으로 찍을까 봐 안경집에 넣어두고 지금은 헌 안경을 쓴다.
뚜뚜 백일잔치 때 멋 부린다고 한 번 쓰고 아직까지 한 번도 쓰고 나간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콧등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헌 안경을 막 쓰며 지내고 있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내 눈이 안경 없이는 한 치 앞도 못 볼만큼 나빴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솔이의 투명한 마음도 가끔은 모르며 지나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안경이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가족들이 모두 잠든 저녁, 온통 오늘의 나와 솔이 생각뿐이다.
꺼진 방 불을 켰을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늘 저녁 나는 솔이에게 너무 많은 실수를 했다. 너무 감정적으로 솔이를 함부로 대했다. 폭주 기관차처럼, 정신이 나간 여자처럼 혼자서 씩씩거리며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다 타버린 재처럼 가라앉아있다. 남편은 야근하고 늦게 와서 내가 화 난 줄 알지만 나는 제풀에 꺾여 말이 없다.
동생에 대한 질투라기보다, 동생만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 솔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솔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도 솔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뚜뚜는 잘 토하는 아이다. 지금은 뒤집기를 하는 시기다. 그러니 밥 먹고 눕혀 놓으면 무조건 뒤집고 무조건 토한다. 그런 뚜뚜와 솔이를 같이 본다는 건 아직까지 어려운 숙제다. 아니 꼭 토를 많이 해서 뒤집기를 자주 해서 그렇다기보다 셋이서 함께 하는 시간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 다지만 잘하고 있는 건지, 그런데도 왜 솔이의 마음은 저렇게 날카로워지기만 하는 건지. 온통 그 생각뿐이다.
비 오는 날, 유치원에 다녀온 날이면 솔이는 많이 피곤해한다. 어제는 엄마 기다리느라 늦게 잠이 들어 오늘은 유난히 더 피곤해했다. 그리고 예민했다. 엄마랑 같이 놀고 싶은데 엄마는 뚜뚜 곁을 떠나질 않는다. 예전에는 배드민턴 채로 풍선 치기 놀이도 재미나게 했는데 지금은 뚜뚜를 안고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그러다가 또 안방에 기저귀 갈러, 뚜뚜 맘마 먹이러, 뚜뚜 옷 갈아입히러 _ 뭐든 뚜뚜가 중심이 돼서 솔이의 흐름이 자주 끊긴다. 그럴 때마다 솔이의 행동과 표현은 과장되고 거칠어진다. 때리고 꼬집고 발로 차고 뭐 그렇게 노는 건지 발버둥 치는 건지 내 곁을 떠나질 않는다.
뚜뚜를 안고,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니 자기도 업어 달라고 한다. 뚜뚜 바운서에 눕히고 솔이도 업어줄게 하니 같이 안고 업어 달란다. 아까 놀이하면서 한 번 안고 업고 했더니 그게 재미있었는지 또 하고 싶어 한다. 근데 나는 못하겠다. 제대로 업는 게 아니니 목이 졸려 못하겠다. 그래서 뚜뚜 내려놓고 솔이도 업어 주겠다고 하니 마음이 상해서 때리고 발로 찬다. 이런 응석을 받아줘도 되나 싶으면서도 안 그래도 상한 마음을 괜한 훈육으로 더 아프게 하기 싫어 웃으며 장난스레 받아줬다. 그런데도 마음이 안 풀리는지 제 방에 들어가 몇 번 문을 쾅쾅 닫는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자꾸 나와서 내 엉덩이를 두들긴다. 얼굴은 세상 밉다.
그렇게 삐진 채 침대에 누워있는 솔이 곁으로 가서 말했다. 이러이러해서 그랬다.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 엄마는 언제나 솔이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너무 샘 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데리고 나와 밥을 먹는데 혼자 먹지도 안을뿐더러 한 숟가락 먹여주면 입에 물고 그림 그리고, 장난감 만지고, 밥 먹을 생각을 안 한다. 그 사이 바운서에서 울어대는 뚜뚜를 안았다 눕혔다를 하며 솔이 밥을 먹이는데 세월아 네월 아다. 밥 먹을 때마다, 이 반찬 안 먹는다, 맵다, 너무 많다, 너무 뜨겁다며 번번이 뱉어낸다. 그러고도 한 숟갈 입에 넣어주면 또 세월아 네월아. 뚜뚜는 울어대지, 솔이는 천하태평이지, 언제 먹이고 언제 씻기고 언제 재우나 _ 둘째는 배고프다고 울면서 젖병을 물리는 또 먹지를 않는다.
배 안고프면 먹지 말라고 식판을 치우고 둘러업고 샤워실로 데려가 씻겼다. 새로 산 샤워 커튼을 내려달라는데 그거 내려주면 또 논다고 정신없을 테고 욕실 문 앞에서 울어대는 뚜뚜는 어찌 보며, 하 _ 뭘 참는 건지는 몰라도 속으로 꾹 참고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에 뚜뚜 없이 목욕시켜 줄 때 하자니 자기 혼자 씻는다고 샤워 커튼을 내려달란다. 그 말도 무시하고 그냥 씻겼다. 화났는데 화 안 났다고 말하는 엄마처럼 솔이가 뭐라 하든 일단 씻기고 나왔다. 그리고 로션을 온몸에 바르고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렸다. 목욕할 때도 양치할 때도 머리를 말릴 때도 엄마의 거친 손길에 아프면서도 참고 있는 솔이를 발견했을 때 무언가 불길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는 잠시 화를 누르고 (왜 화가 났는지 그때는 몰랐다) 솔이에게 말했다. ' 엄마가 화가 난 거 같을 때 혹시 솔이를 아프게 하면 꼭 말해달라고, 그건 잘못된 거니 꼭 말해달라고 '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잠시 뚜뚜 좀 보라며 주방에 나와 분유를 타고 있을 때 솔이가 귀를 틀어막으며 뛰쳐나왔다.
뚜뚜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솔 이방으로 뛰어나 울고 있는 뚜뚜는 안고 나오며 솔이에게 다그쳤다. 동생한테 뭘 했냐고, 분명 솔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울었을 거라 생각하고 다그쳤다. 아닌 척하려고 했지만 솔이는 알았겠지, 눈시울이 붉어지며 꾹 참으며 자기는 또 토할까 봐 뒤집으려는 뚜뚜를 좀 잡고 있었다고.
순간 깨달았다.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 솔이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샘 해서 동생 좀 쥐어박았으면 어때, 그게 뭐 큰일이라고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게 뭐 큰일이라고 애를 저렇게 얼어붙게 만들었는지.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왜 솔이를 그렇게 쏘아보았는지. 하 _
한 손으로 뚜뚜를 안고 한 손으로 솔이를 감싸 안으며 울음을 참고 있는 솔이에게 울고 싶으면 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이를 혼낸 게 아니라 무슨 일인지 알아야 했다고 비겁한 거짓말을 하면서 고백했다. 엄마도 이렇게 셋이 있는 이 상황이 쉽지 않다고. 다시 초보 엄마가 된 기분이라고. 잘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이 말을 꼭 했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와버렸다. 이런 고백들이 솔이를 너무 빨리 철들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그렇게 양쪽에서 울어대는 솔이와 뚜뚜를 달래고 들어와 뚜뚜 분유 먹이며 솔이에게 잘 자라고 말했다. 이미 지쳐버린 솔이는 아빠 언제 오냐는 말만 하고 뒤돌아 잠이 들었다. 뚜뚜도 분유를 다 먹고 잠이 들어 안방에 눕히고 나왔다.
식탁에 놓인 먹다 남은 솔이 밥, 같이 놀자고 꺼내놓은 풍선들, 욕실 앞에 바운서, 솔이 옷들, 쌓인 젖병들 그런 거 뒤로 하고 불 꺼진 거실 소파에 누워 멍하니 휴대폰을 했다. 인스타도 하고, 단톡방도 확인하고 뉴스도 봤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그렇게 누워있다 작은 방에 들어가 꺼진 불을 켜고 거울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솔이의 질투가 불편한 것이다. 나를 못난 엄마 부족한 엄마로 만드는 기분이 들어 한 번씩 미쳐버릴 것 같다. 엄마도 한다고 하는데, 솔이도 사랑하고 뚜뚜도 사랑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너는 날카로와만 지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_ 나를 몰아세우는 솔이의 응석에 무너진다. 그런 날들이다.
나도 정말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 그런데 뭐든 하면 할수록 솔이의 얼굴은 굳어만 간다. 그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뭐가 부족한 걸까 _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