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글을 적을까 생각하며, 거실 식탁에 앉았다. 7:44 시계를 보며 그래도 남들 밥 먹는 시간에 밥을 먹는구나. 위안을 삼는다.


온종일 먹은 그릇들을 제 때 제 때 씻었는데도 저녁 한 끼 먹고 나면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한가득이다. 뚜뚜 젖병도 세 개나 나와 있고 솔이 유치원 물병도 있다. 등 뒤 가스레인지 위엔, 다 먹은 된장찌개 냄비, 불고기 구운 프라이팬, 양배추 찐 냄비 세 개가 뚜껑도 반쯤씩 열려 있다. 할 일이 이렇게나 가지런히 있는데도 오늘은 뜨거운 매실차 한 잔을 마시며 등을 지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 주지 않을 일이지만, 이 상태로 내일을 맞이한다면 더 정신없고 마음만 더 바빠지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글을 적을까 그 생각으로 지금을 보내고 있다.







솔이랑, 남편 저녁 챙겨주고 뚜뚜 재우러 들어갔다가 나오니 이 시간이다. 먹다 남은 반찬 위에 고맙게도 비닐이 올려져 있다. 그 비닐을 걷으며 남은 된장찌개를 다 붓고 밥을 한 그릇 떠와 자리에 앉는다. 7:44. 다행이다. 그래도 남들 다 밥 먹는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구나. 태풍이 온다는데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창문을 좀 열어뒀더니 남편이 못마땅한 말들을 흘리며 자기 방에 앉아 선풍기를 고정시킨다. 시원하기만 하고만 뭐가 덥다고 저러나.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쳐 기분이 가라앉는다. 파이팅하고 설거지하고 양치하고 몸 좀 풀고 기록하고 자면 딱인데 그걸 딱 멈추고 가라앉는 기분만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내가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그런 생각.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 요가 좀 한다는 사람들, 아니 내가 만나본 요가강사들만 해도 하나같이 다 젊고 예쁘고 날씬한데 내가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그러면서 솔이가 덕지덕지 바른 발 매니큐어, 다 갈라진 발뒤꿈치, 종아리에 난 까슬한 다리털까지. 요즘은 워낙 땀을 많이 흘리고 샤워를 자주 하다 보니, 로션 제대로 안 바른지도 오랜 거 같은데. 제대로운동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되어가는데 복근은커녕 뱃살도 감당이 안된다.



그렇다고 내가 체력이 너무 좋아서 모든 걸 다 커버칠 레벨도 못된다. 아직도 플랭크 2분 버티다 보면 사지가 다 떨리고 온 몸에 땀이 흐른다. 머리 서기 좀 하고 내려오면 어지러워 한 참을 누워있는다. 제대로 된 복근 운동은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너덜거리는 나 자신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내가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요가 자격증 따서 또 흐지부지 되는 건 아닌지, 종종 이렇게 나 자신이 작아진다. 세상에 예쁘고 멋있고 독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갑자기 얼마 전 솔이의 귓속말이 생각난다. 리듬체조 학원에서 솔이 앞에서 훌라후프를 좀 굴렸다. 손으로도 돌리고 멀리 보냈다 돌아오게도 하는 것도 했고 훌라후프 줄넘기도 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꼬마가 따라 하길래 넌 더 잘할 거야라고 칭찬해줬는데, 그 말을 들은 솔이가 내가 다가와 속삭였다. '엄마가 최고야'


나는 가끔 당황하거나 스스로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솔이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솔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나의 그런 모습들을 너무나 빨리, 정확하게 알아차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쭈구리 아웃을 했다. 이러이러해서 마음이 좀 급했다, 속이 상해서 그렇게 밉게 행동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괜히 너에게 날카롭게 말이 나왔다. 엄마도 처음인 게 많아서 실수를 많이 한다. 그럴 때 얼굴이 좀 빨개지거나 머쓱하게 행동하거나 괜히 아닌 척을 하게 된다고. 이렇게 자세하게 말 안 해도 더 잘 알 텐데도 괜히 감정에 대한 정의를 알려준답시고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그래서 그런가 훌라후프 돌리다가 엄마가 좀 쭈구리처럼 보였나? 그렇게 내게 속삭였다. 엄마 응원해 주려고.



내가 최고라니. 엄마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 글을 쓰려고 처음 앉았을 때는 막연히 '내가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이 한 문장만 떠올랐는데 막상 글을 적다 보니 '엄마가 최고야'라는 말로 마무리가 된다. 솔이를 생각하니 경쟁력 따위 무슨 상관?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얼른 글을 마무리 짓고 쌓여있는 설거지부터 해치우자는 마음이 든다. 그래 엄마가 최고라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래, 나는 솔이 엄마고 솔이 엄마는 최고지. 최고지.












끝. (feat. 인스타 너무 많이 하면 안돼요, 제 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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