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낮잠을 자고 난 뒤 기운이 조금 나는지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청바지에 청치마를 입고 가방에 간식을 좀 넣어서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솔이의 자발적인 행동엔 언제나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나선 산책에서도 솔이는 여전히 기운이 없는지 자주 휘청이고 발목을 삐기도 한다. 안아달라는 말은 안 하지만 날아다니는 꿀벌이 무섭다면서 눈을 가리고 걷기도 하고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한껏 몸을 움츠리키도 한다. 하지만 따스한 햇살 아래 놀이터를 거부할 아이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 수족구로 열이 올랐던 요 며칠 잘 걷지도 못해 다리 힘도 약해졌는지 내 손을 꼭 잡고 눈만 이리저리 살피는 솔이가 귀엽고 애처롭다.
우리 아파트는 근방에서 꽤나 단지가 크고 특히 아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하원, 하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놀이터에 아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렇게 많고 많은 놀이터 중에 그네가 있는 곳은 딱 한 군데. 그것도 단 두 개밖에 없어서 그네를 타려면 언제나 줄을 서야 하고 타면서도 뒤에 줄이 신경 쓰여 맘껏 타기란 쉽지 않다. 오늘도 솔이는 그네를 타려고 줄을 섰다. 그네를 워낙 좋아해 어릴 때부터 그네를 타고 싶으면 꼭 줄을 서야 한다고 알려줬더니 이제는 자동으로 줄이 빨리 줄 것 같은 곳에 항상 먼저 가 있는다. 특히 두 개 그네 중에 의자가 좀 더 넓고 안정적인 그네가 있는데 그곳의 인기는 정말 핫하다. 솔이가 선 줄에는 초등학생쯤 보이는 여자애가 이미 그네를 타고 있고 그 뒤에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유치원 고학년, 그리고 솔이가 있었다.
우리 앞에 줄을 선 아이 엄마가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줄 선 아이 엄마(줄 엄마) : 너 몇 학년이니?
그네 타고 있는 아이 (그 아이): 3학년이요.
줄 엄마 : 그럼 이렇게 뒤에 동생들이 줄을 많이 서 있는데 꼭 혼자서 그렇게 많이 타야겠어?
그 아이 : 이거 조금만 타고 저거 타러 갈 거예요?
줄 엄마 : 삼 학년이니까 그렇게 혼자만 타는 게 괜찮은 건지, 학교에서 그래도 된다고 했는지 한 번 생각해봐, 너는 그럴 나이가 되니까
그 아이 : (울먹이며) 짜증 나 (그네에서 내려 그냥 가버렸다)
줄 엄마 : (자기 아이를 그네에 앉히며) 쟤 삐졌다.
음.. 무슨 상황이지. 나는 그 아이가 얼마나 그네를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 아줌마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단지 솔이랑 내가 줄을 서자마자 이런 대화가 오갔고 그 아이는 울면서 걸어갔다. 근데 정말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우는 아이 뒤로 자기 아이를 앉힌 그 아줌마는 아이가 열 번도 타지 않았는데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뒤에 동생 기다리니까 이제 그만 타고 내릴까?'
나는 너무 황당하고 줄을 서 있는 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누군가를 밀쳐내고 그네를 탄 아이는 그네를 실제로 타지도 않은 듯했다. 엄마가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저 말을 했으니.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눈치를 줬나? 그런데 그 아줌마는 계속해서 양보해야 하니 그만 내리라 하고 싫다는 아이에게 그럼 다른 놀이터도 안 가고 엄마 혼자 집에 갈 거라는 둥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결국에는 아이를 그네에서 내리게 했다.
저만치 걸어가는 엄마를 급하게 따라가는 그 여자아이의 샤방한 드레스와 아이 엄마의 구두 굽 소리가 굉장히 불편했다. 도대체 놀이터에서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그 상황에서 엄마가 가졌을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가 본 엄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상황. 양보하며 지내고 사이좋게 지내기. 욕심부리지 않기. 그런데 사실 놀이터는 양보를 배우러 나가는 곳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있는 곳도 아니다. 놀이터라는 공간은 아이가 즐겁게 노는 곳일 뿐이다. 사실 그네처럼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를 타려면 양보도 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그게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위의 상황에서 그 아이는 즐겁게 그네를 타지도 못했고 양보나 배려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엄마가 뺏어준 그네에 잠시 올라탔다가 금방 내리라고 명령을 받았을 뿐. 어른들이 아이의 놀이를 이렇게 망쳐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아마 그 상황에서 어른들이 없었더라면 시간은 좀 걸렸겠지만 스스로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고 기다림도 배웠을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터에 어른들의 체면, 욕심, 이기심만 남아 있는 듯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처음 솔이랑 놀이터에 나갔을 때 이런 적이 많았다. 누군가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내 마음이 불편해 솔이가 얼마나 더 타고 싶어 하는지 마음도 묻지 않고 간식 준다는 핑계로 얼른 내리게 했던 기억. 그렇게 내려와 간식을 먹고 다른 기구를 타고 놀면서도 결국엔 그네가 타고 싶다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돌아가는 솔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중요한 건 내 아이의 마음이라고, 그것이 타인에게 심각한 폐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솔이의 기쁨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다른 애기 엄마 보기 불편하다고 솔이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나면 항상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짜증 나는 스타일이 되더라도 엄마는 누구보다 아이의 마음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나의 놀이터 3년 차 깨달음이다. 그러면 놀이터 나가는 게 즐거워지고 그래서 자주 나가니 갈등 상황에 조금 더 유연해지고 진짜 양보랑 배려를 천천히 알려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인데 이렇게 '아이들의 놀이공간'에서 어른들이 나서서 해결하고 기준을 정하고 규칙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스스로 갈등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애초에 차단시키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타인과 소통하는데 더욱 심각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건 나의 예전 모습을 되돌아보며 느낀 감정이다. 자기반성이지. 나도 놀이터 꼰대가 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오늘의 글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