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의 손을 잡았을 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첫 연애를 끝낸 뒤였던가, 이렇게 기억이 흐릿하게 나는 척은 못하겠다. 대학생이 되고 첫눈에 반한 남자애와 연애를 했다. 그때 쓰인 콩깍지가 벗겨지는데 4년이 걸렸고 4년 뒤에 그 남자랑 헤어졌다. 그런데 4년이 지나도 그 남자는 잊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련도 없고 오히려 잘 헤어졌다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 단계까지 갔는데도 나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스쿨버스에서 옆 자석에 누군가 앉았다. 남자였다. 고개를 숙인 채 누군가 내 옆에 앉는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그냥 손을 내밀어 ' 내 손 좀 잡아줄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손이 내 몸에서 떨어지는 걸 간신히 눌러 참았다.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형편없었다. 첫 시련은 정말 혹독했다.



IMG_9407.JPG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연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취준생 그리고 어설프지만 잘하는 척할 수 있는 영어강사 일을 하며 2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정말 놀라운 것이 남편과 첫 연애 역시 손잡기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는 여자 사람, 남자 사람일 때 같이 독립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됐는데 (남편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때는 4년 만에 만난 것이었다. 그만큼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튀어나올 정도로 쿵쾅거렸다. 분명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내 심장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찌나 심장이 아픈지 나는 한 손으로 심장을 꾹 누르며 영화를 봤다. 그러면서 단 하나의 생각이 났다. 옆에 있는 이 남자의 손을 잡고 싶다는 것.





IMG_9457 2.JPG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움켜잡으며, 옆에 있는 이 남자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며 참고 참으며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나는 이러다 심장이 터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나를 놓아주기로 했다. 어두운 영화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서 남편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졌지만 이내 따뜻하게 내 손을 다시 잡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외로움과는 헤어졌다.




그렇게 결혼한 남편이 있는데도 어제 하루 온종일 혼자라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스무 살 적에 느꼈던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는 원래 혼자인 상태에게 오는 외로움인데 이제는 모든 것을 잃은 상실감이 휘감은 외로움이다. 하 ____ 외로운 아줌마가 됐다니.




IMG_9495.JPG




솔이 등원을 시키고 돌아오는 길, 솔이 덕분에 가졌던 웃음기는 온데간데없고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휴대폰만 끄적이는 30대의 내가 있다. 연락 오는 사람은 점점 주는데 휴대폰 들여다보는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간다. 인터넷을 한다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내 허기진 외로움을 채우기 바쁘다. 하 _____ 오늘도 이렇게 울기 직전의 상태로 보낼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는 엄마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일단 씻고 나갔다.


사람들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니 내가 그렇게 외로워했던가 잠시 잊는다. 애기들 데리고 만날 때는 감정 상할 일도 많았는데, 아이들이 좀 자라 어린이집 등원 후 이렇게 홀가분하게 엄마들끼리 만나니 진짜 친구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그저 별것 아닌 이야기 하며 웃고 떠드는데 그렇게 좋고 고마울 수가 없다. 그중 한 엄마가 웹디자이너인데 나를 캐릭터 해서 예쁜 그림을 그려왔다. 컵도 만들었고 액자도 있다. 늦은 이사 선물이라고 주는데 벌써 이사한 지 일 년이 다돼간다. 그게 뭐 중요한가. 안 그래도 '혼자'라는 늪속에 허덕이고 있는 내게 나를 위한 선물이라니, 더구나 그 선물엔 솔이도 없다 나만 있다. 지금의 나만 있다. 얼마나 고맙고 따뜻한지 공차 마시다 울뻔했지만 잘 참고 그 고마운 마음에 힘을 얻었다.





IMG_9379 2.JPG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다시 혼자인 나로 돌아왔다. 그래 나는 원래 혼자다. 다른 사람 모두가 혼자다. 혼자 와서 혼자 가겠지. 쌍둥이도 세상을 떠날 때는 혼자일 테지. 그래 나는 다시 혼자임을 받아들이고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독인다. 그게 뭐 어때서. 인생은 나를 사랑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작은 사실을 다시 되새기며 남편과의 다툼을 끝내야겠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려 한 나 자신에게 오히려 기회겠지. 나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는 일.


오늘 엄마들과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한 엄마가 말했다. 자기 남편은 주말에 어디 놀러 가자 그러면 꼭 이렇게 말한단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런 생각이나 좀 하라고. 당신 나 죽고 나면 어떻게 살래?'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너무 로맨틱한 말이었다. 부부가 되면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약점, 아픔을 마주한다. 그러면서 더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고 다독인다. 그러면서 믿음도 생기고 정말 부부가 되어가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이걸 이용했다. 나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남편이 거리낌 없이 안아줄 때 거기서 멈춰버렸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그냥 남편은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를 사랑해줄 거라는 믿음을 이용해 사실은 나로서 살지 않고 그저 가족으로 의지하며 버텨왔다. 남편이랑 싸우고 보니, 이제 알겠다. 혼자가 슬픈 게 아니라 너무 약해진 나 자신이 가여웠던 거다.


그러니 다시 파이팅.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혼자 단추 잠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