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건조기는 내 육아 일상의 최고로 애정 하는 아이템이다. 최애 템. 이불빨래 걱정도 없고, 장마철도 끄떡없다. 그런데 너무 자주 빨래를 하고 너무 자주 건조기를 돌리다 보니 기계의 속도에 내가 허덕일 때가 많다. 거실 한가운데 '빨래 개기'만 남은 옷들이 한가득 쌓여만 간다. 방금 전에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빨래를 개야겠다며 거실로 나갔다. (아마 이틀 만에 집에 왔는데 내가 할리우드 환대 없이 노트북을 꺼내 들어서 토라졌음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 널브러진 빨래 사이에서 솔이가 단추 달린 내 니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말했다.
' 엄마, 이거 단추 잠그게 좀 입어봐'
하하하 ^^
그렇다. 솔이는 요즘 단추 잠그기에 빠져있다. 단추 홀릭 중이다. 자기 잠옷부터 시작해 내복에 있는 똑딱이, 조끼 단추, 코트 단추 그리고 마주 보이는 엄마 옷 단추는 모조리 풀었다 잠갔다 한다. 그 재미가 어찌나 쏠쏠한지 한참 그러고 있는 솔이는 바라보면, 입을 허 벌리고 고도의 집중을 한다. 귀엽고 기특하다. 처음에는 좀 어설퍼서 짜증도 내고 도와달라고도 하더니 어느새 능숙해져 풀었다 잠 근거 맞나 싶게 재빠르게 처리한다. 큰 단추 작은 단추 상관없이 손끝이 야무져 보고만 있어도 엄마미소가 저절로 생긴다.
오늘 하원 길에 솔이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다. 이불마다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그걸 선생님이 떼니 솔이가 그건 잘못됐다고 자기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설명이 장황했지만 나는 단번에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솔이가 할 수 있는 일 (솔이와 관련된 모든 일, 그리고 솔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누군가 했을 때 솔이가 얼마나 분노하는지. 아마 선생님이라 단계를 조정해서 표현했나 보다. 그런 솔이의 모습을 선생님이 가만히 관찰하고 솔이가 스스로 해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는 생각이 감사했다. 그리고 솔이의 독립성과 의존성이 공존하여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성장 중이라 말씀드렸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자라도록 도와달라고 ^^ 엄마의 사심인가 개인적인 부탁인가?
솔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마냥, 똑똑하겠지 공부를 잘하겠지, 온순하고 침착하고 호기심이 많겠지. 이렇게 부모 좋을 대로만 아이를 평가하고 정의 내리기를 많이 했었다. 여전히 솔이를 가끔 보는 시부모님, 엄마 그리고 다른 지인들은 솔이를 그렇게 생각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지 않다. 세상의 정의가 중요하지 않음을 정말 매일매일 깨닫는다. 왜냐하면 솔이는 이전에 없고 이후에 없을 새롭고도 고유한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솔이가 가진 성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색채가 뚜렷해지는 요즘 나는 솔이에게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삐뚤어진 변기 뚜껑을 바로 놓은 일, 자기 옷은 꼭 자기가 골라야 하고, 윗옷 아래옷 한 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밥을 먹다가 조금이라도 흘리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것, 과자를 먹거나 음식을 먹을 때 손에 묻는 게 싫어 꼭 닦고 또 먹어야 하는 것, 길을 가다가도 높은 하늘을 잘 바라보고 숨겨진 자연을 찾는 것, 엄마가 새 옷을 샀는지 아닌지를 잘 기억하는 것, 그리고 엄마의 말을 잊지 않고 되돌려주는 것 등등 솔이의 모습들이 새싹처럼 자라나고 있다.
그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바르거나 착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그냥 솔이가 솔이로 자랄 수 있도록 인내할 뿐이다. 마이너스 육아겠지. 색을 입혀 무엇인가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본연의 색을 띠도록 하는 것. 솔이에게 줄 수 있는 평생의 선물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다짐한다. 나는 나, 솔이는 솔이, 남편도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