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어제는 남편과 새벽 세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솔이 재우고 운동일지를 적었고, 남편은 시차 적응 중인지 잠든 지 두 시간 만에 깨서 내 앞에 마주 앉았다. 평소에는 남편 혼자 수다를 떠는 편인데 이렇게 늦은 밤, 그리고 앞 날이 막막할 때면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젯밤이 그런 날이었다.
이제 곧 월급날인데 월급날이 달갑지 않고 걱정만 된다. 이미 각자의 생활비는 바닥났고, 돌아오는 주말엔 친구 결혼식 축의금도 내야 하고, 출장 다녀오면서 쓴 카드값이며, 이번 달 적금도 못 넣었는데...... 스쳐만가도 감사할 월급이 늘 깊은 상처까지 내고 달아나버리는 우리의 현실.
우리 세 식구, 남편의 수입은 꽤나 많은 편이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나는 아직도 남편의 월급만큼 매달 벌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편의 노동이 값지고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많은 돈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남편도 나도 옷다운 옷 한 벌 안 사 입고 신발은 항상 해를 거듭해 신고 버릴 지경이 돼서야 사는데, 그만큼 우리는 사치와 거리가 먼 부부인데 왜 월급은 그토록 가벼운 것일까.
남편이 출장 가기 전날 어디서 땀내 쪄는 낡아빠진 백팩을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뭐냐 물었더니 최 과장이 버린다기에 가지고 왔다는데 한숨이 나왔다. 버리려고 한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딱 봐도 그 이유를 알만큼 낡았는데 그걸 도대체 왜 가지고 왔냐니 출장 가서 막 쓰려고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바보같이 웃으면서 이거 만 다리 덕이라고 말한다. 정말 바보 같은 말이다. 그래서 만 다리 덕인데 어쩌라고?
남편이 지금 메고 다니는 가방은 작년 생일에 셀프 선물한 샤오미 백팩이다. 이만 원 조금 넘게 주고 샀는데 아직까지 멀쩡하게 잘 쓰고 있다. 그 가방을 살 때 조금 좋은 걸 샀으면 했는데 얼마나 가성비 좋냐며 우겨대던 그 남자가 만 다리 덕이니 뭐니 낡아 빠져 땀내가 날 것 같은 메이커 가방을 주워왔다.
남편은 외동아들로 부유하게 잘 자라, 중고등학교 때 남들 부러워할 메이커 옷은 다 입어봤다. 시어머니가 직접 말해주셨다. 내 학창 시절엔 리바이스, 케빈 클라인, 폴로, 나이키 뭐 이런 것들 누구나 들으면 메이커구나 알 수 있는 옷들이었다. 그런 옷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을 받았는데 그 대접을 받던 사람 중 하나가 나의 남편이다. 심지어 남편은 그 당시 그런 메이커 옷들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저 좋은 것을 해 준 부모의 마음만 든든했겠지.
그랬던 남편이 지금은 남이 버린 백화점 가방을 들고 와 출장을 간다니, 내 속이 뒤집어진다.
그리고 어제는 회사 단체 티셔츠가 나왔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귀가했다. 똑같은 티셔츠 세 개. 여름에 씻고 벗고 할 여유분 옷이 없어서 나도 마음이 쓰였는데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단체 티셔츠를 생각하면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처음 단체 티셔츠를 맞췄을 때 회사 부장이 회사 워크숍 날짜까지 티셔츠에 새겨서 아무도 입고 다니질 못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옷이 좋은지 내 바느질 통을 뒤져 수 놓인 날짜를 한 땀 한 땀 뜯는 게 아닌가. 결
국 숫자 두세 개 뜯고는 포기했지만 그때는 왜 저러나 싶었다.
무튼 결혼 후 적절한 결핍이 남편을 행동하게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쩜 이렇게 조금도 나아짐 없이 매달, 매 월급날 우리의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지 _ 어제는 그 이야기를 하느라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새벽 세시에 나는 잠들었지만 남편은 아직도 마음은 바르셀로나에 있는지 통 잠을 못 자고 아침에 출근했다.
어제 대화 마지막에 나는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방법은 내가 돈을 버는 것이라고. 무슨 일을 해서든 소소하게나마 내 용돈, 생활비를 버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인데 그게 참 어렵다고. 지출을 줄이는 방법은 이미 수없이 시도해봤지만 도통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지독하게 절약해서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못되고 그런 강력한 동기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외식 좀 줄이자, 놀러 좀 그만 다니자 이렇게 말해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콧바람 쐬러 차 시동을 건다.
그러니, 이렇게 쓰면서 살고 싶으면 수입을 더 늘여야 하는데 남편의 월급은 고정되어있다. 그리고 내년 연봉을 기대한다고 치더라도 우리의 소비는 연봉 인상률을 훨씬 웃돈다. 내가 돈을 버는 게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 올 초 큰 마음먹고 일을 해보겠다고 사업자등록까지 냈는데, 그렇게 사장님이 된 지 5개월째 유령회사이다. 마켓 사장님인데 마켓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두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렵냐고? 시작이 두렵다. 변화가 두렵다. 안주하고 있는 이 일상을 벗어던지는 것이 두렵다. 잘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_ 삶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정말 창피하다. 부끄럽다. 다이어리에 수없이 많은 계획을 적고 다짐을 하는데도 정작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항상 핑계는 있다. 돈이 없으니, 시간이 없으니, 지금 당장은 다른 일이 먼저니, 그렇게 올해를 넘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수면 위에 올라올 때면 나는 정말 창피하다. 부끄럽다.
아, 나는 왜 행동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