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담소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은 누가 처음 했을까?


우리 부부는 여행 전에 대판 싸우고 각자 다른 깊이의 나락으로 떨어진 뒤, 태교여행을 떠났다. 태교여행이란 말이 무색한 것이 여행하는 내내 뱃속의 둘째 생각은 1도 안 한 듯하다. 그냥 지금의 우리 세 가족_ 남편, 나 그리고 솔이가 함께 있음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 둘째 태교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여행을 시작한 뒤 우리 부부는 새로움과 낯선 환경이 주는 분위기에 도취되어 이전에 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듯 없던 일이 됐고 화해는 따로 안 했지만 나는 다시금 '우리 남편 같은 사람 또 어디 있겠어' 이런 노망난 생각에 흠뻑 젖어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12시, 솔이를 재우고 고구마를 먹으며 남편과 담소를 나누었다. 낮에 솔이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낮에 솔이랑 내가 싸울 때 내 눈빛이 얼마나 독살스러웠는지, 솔이를 혼낼 때 이런 표현은 삼가는 게 좋다는 반성 아닌 반성을 하며 고구마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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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에서 넘어온 고구마는 너무나 달콤하고 맛이 좋아 앉은자리에서 접시를 거의 다 비웠다. 양치질하고 귤이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솔이는 그렇게 매몰차게 재워놓고는 엄마 아빠는 이렇게 달콤하고도 찐득하게 야식을 즐기고 있노라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고구마의 달콤함에 젖어 끝까지 웃다가 일어났다.



나는 요즘 솔이와 새로운 주제로 자주 부딪힌다. 전에는 '제발 좀 폭폭 먹어라'라는 주제로 시시때때로 부딪히다가 언젠가부터 나도 마음을 비우고 솔이도 때가 되니 조금씩 먹게 되어 이 문제로는 이전만큼 열을 내지 않는다. 새로운 주제는 '옷'이다. 아마 자아가 한창 커지고 있고 자기표현의 능력이 자람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 자신의 기호가 분명해지고 타인과 자신의 모습이 다름도 느끼게 되는 시기. 솔이의 왕성한 자아표현의 대부분은 공주옷 그리고 여름옷에 집중된다. 자기는 예쁘니까 무조건 예쁜 공주옷을 입어야겠다와 자기는 더위를 많이 느끼니 겨울옷 말고 여름옷을 입어야겠다 이 두 가지.




그래 뭐, 이쁘니까 이쁜 옷 입겠다는 건 오케이. 더위를 느끼는 좀 얇게 입는 건 오케이. 그런데 엄마가 받아들이는 수준과 솔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수준이 달라서 우리는 매일같이 싸운다. 내가 솔이를 혼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우리 둘은 싸. 운. 다. 나도 솔이를 어른 대하듯 하고 솔이도 나를 또래 대하듯 서로를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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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날 무슨 나시원피스냐, 비바람 부는데 무슨 반바지냐 _ 엄마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 나는 절대 춥지 않다.

일단은 따뜻하게 입고 혹시 더우면 벗도록 하자 _ 일단 이렇게 입고 나가서 추우면 잠바를 입겠다.

도대체 무슨 심보냐 그럴 거면 아예 아무것도 입지 말고 나가라 _ 엄마는 나한테만 화내고 아빠한테만 착하게 대한다.

감기 걸려서 또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싶으냐 무슨 여름옷이냐 이 계절에 _ 병원 안 갈 거다, 원피스 입을 거다, 입혀줘.




매일 어린이집 갈 때, 집에 돌아와서, 샤워하고 자기 전에 이런 류의 대화를 하며 우리는 에너지를 쓴다. 솔이랑 이런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저 입고 싶다는 걸 왜 못 입게 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이 날씨에 혹시나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잘 때 팔다리 시린 걸 만지며 이불을 덮어줘도 걷어차는데 어쩌려고 저러나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면서 가끔은 나도 머리가 이상하게 돌아갈 때가 많다.



미운 4살이라 그런가, 그냥 솔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솔이 엄마라서 우리는 이렇게 벌써부터 싸우기 시작한 걸까? 생각해본다.

남편이 고구마를 먹으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외출 전에 또 솔이가 이상한 한복 치마에 여름 쫄바지를 입고 나간다고 징징대길래 아무것도 입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솔이를 바라보던 내 눈이 너무나 독살스러웠다고. 가운데서 중재를 하던 남편이 정말 오랜만에 큰소리로 그만하라고 말했지만 (남편의 말로는 자기가 그렇게 큰소리를 낸 적이 또 있었냐 하지만) 솔이랑 내 귀에는 사실 귓속말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서로 레이저를 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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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가 하도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길래 여름옷을 꽁꽁 싸매어 장롱 안에 숨겨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 날은 집에 돌아와 입을 옷이 너무 없다며 여름 원피스 하나만 꺼내 달라고 조르고 졸라 하나를 꺼내 줬더니 그 장소를 기억해뒀다보다. 혼자 방에 들어가 장롱에서 한 여름옷들을 다 꺼내놓았다. 혼자 하루에도 열두 번 옷을 갈아입고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는 정말 행복한 얼굴로 발레 동작을 해 보이며 '엄마는 좋은 엄마야' 라며 애교를 부린다.



매번 그 말에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야, 그냥 솔이 엄마야'라고 정색하지만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행복해하는 솔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 설득력이 완벽하게 패했음을 느낌과 동시에 솔이의 행복이 마치 나의 행복이라도 되는 것 마냥 나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엄마 노릇이 이토록 자아분열을 수시로 겪어야 되는 일인 줄 정말 몰랐다.



이 글은 옷 투정하는 아이 달래기, 고집 피우는 아이 설득하기, 미운 4살 대응법에 대한 글이 아니다. 그저 이러한 시기에 겪는 엄마의 혼란스러움을 기록한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리가 어지럽다, 아마 달콤한 욕지도 고구마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 정리도 못하고 이상한 욕이나 기록해뒀을 것 같다. 육아는 산 넘어 산인데 나는 어쩌다 이런 구비구비 산길 따라 물길 따라 육아 길에 들어섰나 이 물음만 남는다. 뱃속에 둘째까지 있으니 말해 뭐하나 싶다.



아 _ 정말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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