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눈물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남편이 승진을 했다. 생애 첫 과장이 되었고, 남편도 우리 가족도 즐거운 연말이다. 솔이 방학 기간 동안 몸이 좀 힘들긴 했지만 솔이를 재촉하지 않는 일상이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는 시간을 보냈다.


승진을 앞둬서 그런지 남편은 11월부터 바빴다.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가정생활에 충실했고, 솔이에게 변함없는 장난꾸러기 아빠 역할을 잘 해냈다. 다만 여유가 없었을 뿐이고, 야근이 잦아 얼굴을 자주 못 봤을 뿐이다.


12월에는 남은 연차 3일을 어떻게 쓸지, 데이트를 할 생각에 설레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 회사 일이 너무 바빠 대부분의 연차 날에 출근을 하던지,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애쓰는 남편을 보며, 속상한 내 마음을 감추며 내 나름의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12월 31일 마지막 연차까지 물거품이 되자 나는 서운함이 들기도 했다.


그 전날 출장을 가 다음 날 자정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집에 왔을 땐 솔이랑 둘이서 새 해를 맞이하는 건 아닌가, 내내 초조하고 기다렸던 마음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추운 날 밖에서 고생했을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솔이 주려고 아껴두었던 맛있는 고기 한 팩을 꺼내 따뜻한 저녁을 차렸다. 그렇게 추위를 녹이며 가족이 다 같이 모였을 땐, 내가 원하는 건 싸움이 아니라 가족의 따스함이라는 걸 다시 한번 되뇌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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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 해 첫날, 남편은 그동안 무리를 해서였는지 몸살 기운에 일어나지를 못했다. 나는 그런 새 해 첫 날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더욱 솔이에게 1월 1일의 활기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지만, 남편의 피로와 감기에 솔이와 둘이서 아파트 단지 산책만 다녀왔다.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걱정, 그리고 지금 상황에 대한 속상함을 감추며 솔이랑 씩씩하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나는 무거운 몸에 지쳐 솔이에게 슬슬 짜증을 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와 자꾸 업어달라는 솔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며, 남편에 대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계속된 솔이의 방학. 나는 견디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솔이와 여유롭게 지낼 때는 몰랐지만, 그런 홀로 육아가 하루 이틀 늘어만 갈수록, 몸은 무거워 자꾸만 힘이 들 때면 누구라도 좀 도와줬으면 하고 바라었다. 남편이라도 야근 없이 퇴근해 솔이 잠들기 전 몇 시간 만이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었다.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할 때 느끼는 그 에너지라도 느꼈으면 하고 바라었다. 혼자라는 것이 버거웠다.





그러던 지난 목요일,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또 야근을 해야 한다고. 그냥 읽고 넘겼다. 솔이 저녁밥 챙기고 씻기고 하면 되니, 늦게라도 와서 같이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하지만 한 시간 뒤쯤 상사들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술 한 잔 더 하고 들어가겠다는 연락이 왔을 때 나도 모르게 폭발해버렸다. 그동안 쌓였던 마음이 가시 돋쳐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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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동안, 일에 야근에, 피로에 감기에 도대체 이게 뭐냐고 _ 차라리 집에 들어오지 말고 회사에서 살라고 _ 너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 그러니 집에 오지 말라. 이렇게 낯부끄러운 솔직한 내 마음을 다 쏟아내고는 꿋꿋하게 솔이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솔이와 양치질을 같이 하면서 '엄마는 아빠가 일만 해서 미워'라고 말하기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남편이 급하게 현관문을 열었고 나는 모른 채 솔이를 마저 씻기고 집에 불을 다 껐다.




아빠가 와서 반갑고 신난 솔이를 가로막고 문 안 열어 줄 거라고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솔이는 엄마는 나쁜 엄마라며 울먹였고 나는 솔이에게 아빠한테 인사만 하고 들어와 자라고 말한 뒤 안방에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아빠와 속삭이다 들어온 솔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잘못했대' 이 말만 몇 번 전한 뒤 솔이도 나도 잠들었다. 잠들기 전 괜한 서러움에 코끝이 시리기도 했지만 그냥 내 마음도 무시하고 잠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새벽, 이불에 소변을 눈 솔이를 챙기느라 잠이 깼다. 거실로 나가니 아직 한 밤 중이다. 가로등은커녕, 불 켜진 집도 드물다.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남편이 씻고 나간 흔적, 젖은 바닥을 보며 변기에 앉아 엉엉 울었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시간 남편은 혼자 출근길에 나서고, 그날 해가 다 저물고 나서도 한 참 뒤에나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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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앉아 울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삶이 왜 이런지, 왜 이렇게 막막한 건지, 이렇게 남편도 나도 열심히 사는데 잘 살아보겠다고 이렇게나 뜨겁게 발버둥 치는데, 왜 우리는 이토록 아픈지 말이다.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언젠가는 정말 좋은 날들이 올는지. 놀다가 늦게 온 것도 아니고, 일부러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아닌데 추운 밖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들어온 남편한테 나는 왜 그렇게 속 좁게 굴었는지......



나 역시도 임신한 몸으로 육아를 하며, 나름의 의미를 찾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왜 우리의 삶은 이렇게 팍팍하고 숨 쉴 구멍조차 없는지, 그게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 나는 새벽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_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 시기라고, 부지런히 만 살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녔다고. 똑똑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문자. 나는 어제 했던 나의 유치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하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이 버티고 걸어가고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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