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기저귀 효과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집이 깨끗하다. 물걸레질을 해서 바닥도 깨끗하고 밀린 빨래도 없다. 설거지도 말끔히 되어있고 솔이 장난감, 벗어놓은 옷들도 다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소파 쿠션도 다 제자리다. 똥기저귀 쌓인 안방 휴지통도 솔이 어린이 변기도 쌓인 물티슈 없이 깨끗하다. 남편이 오전 내내 왔다 갔다 하며 구석구석 청소 중이다.


남편은 나와 싸우거나, 아니 내가 삐져있거나 나에게 마음 상하는 일이 있는데 말은 안 할 때 저렇게 청소를 한다. 감정이 조금 덜 상했을 때는 자기 책상 정리나 선반 위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는 정도이고, 오늘같이 마음이 많이 상한 날에는 저렇게 정신없이 움직인다.



시작은 아주 사소하다. 오전에 남편이 둘째 목욕을 시키겠다고 했다. 남편이 제대로 목욕을 시킨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워낙 긴장을 잘하는 스타일이고 그러면서도 아닌 척을 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남편 옆에 있을 때면 종종 못 미더움을 숨길 수가 없다. 특히 둘째를 대할 때는 초보 아빠 티가 역력해 사실 마음이 잘 안 놓인다. (솔이를 어떻게 키웠나 싶게 모든 것이 리셋된 상태다) 그렇지만 남편은 항상 열심히,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스스로 칭하길 슬로스타터라 하는데 불행히도 아내는 세상 성격이 급하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무안당하기 일쑤다. 오늘도 그랬다. 목욕을 시키는데 왜 그리 어설프고 불안해 보이는지,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괜히 침대에 벌러덩 누워 형광등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가 어떻게 될까 노심초사에, 또 급한 성격에 그새 일어나 남편 옆에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세수하고 머리 감길 때는 어쩌고 저쩌고 옷을 벗기고 기저귀는 제 때 제 때 돌돌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이런 걸 안 하면 나나 친정엄마가 괜히 뒤치다꺼리하는 기분이라고 중얼중얼 잔소리를 퍼부었다.



왜 그랬을까. 안 그래도 긴장해서 겨드랑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헹굼물 대야로 옮길 때는 다리에 쥐도 나는 사람한테 뭐 얼마나 더 잘하라고 그 옆에서 그렇게 잔소리를 해댔을까.



둘째 목욕시킬 생각에 한 껏 들떴던 남편은 금세 풀이 죽어 말이 없다. 그렇게 말 많은 수다쟁이가 아무 말 없이, 둘째가 배시시 웃는데도 옅은 미소만 띠며 목욕을 마무리한다. 남편을 뒤로하고 둘째 수유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 분명 베란다로 갔는데 한 참 있다 안방에서 나온다. 빨래도 돌리고 안방 청소도 하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편의 청소는.



분명 기분이 나쁘겠지, 뭐 그렇게 잘났다고 사사건건 잔소리냐 싶겠지. 그런데도 아무 말 않고 (몸도 마음도 산후조리 중인 아내에게) 온 집안을 정리하고 있는 남편은 보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둘째 젖 먹이고 솔이 챙기는 게 더 급해서 상한 남편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미안해도 미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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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는데 남편이 적은 메모가 보인다.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지, 뭐 그런 고민들을 적은 종이다.

'나는 인정받으며 잘 살고 싶다. 약점을 숨기고 강점을 부풀려라. 단, 진실 위에서 행동하고 확실한 계획을 세워라'




인정받으며 사는 삶. 남편은 무엇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그걸 알면서도 아니 그걸 알기 때문에 남편에게 더 괴팍하게 군 적이 많았다. 내 심보가 고약해서인지 좋은 면만 봐도 부족할 텐데 남편의 부족한 면을 가장 먼저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가며, 반찬 그릇 옆에 있는 남편의 메모를 자꾸 보게 된다.



그래,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소용이람. 내 사람, 내 가족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게 먼저일 텐데 나는 왜 똥기저귀가 어쩌고 저쩌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해서 집을 이토록 깨끗하게 만들고 집을 이토록 조용하게 만들었는지, 작은 후회를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허니, 인정 좋아해? (새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당연하지, 난 인정받는 거 좋아해 (부끄럽지 않은 척하며)


식사 후 식탁을 정리하며 말했다. 허니 이 메모 종이 필요해? 아니면 버려도 돼? 그러곤 메모장을 분리수거 통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는 쓸데없는 잔소리하지 말고 남편 좋아하는 인정 많이 해줘야지. 목욕시킬 때 일단 눈을 감고 딴생각을 해야겠다고.



솔이와 남편, 둘째와 함께 아파트 산책을 다녀오니 다시 웃음꽃이 피고 시끌벅적 집은 쑥대밭이 된다. 행복한 저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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