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기록하며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뚜뚜는 오랜만에 분유 200ml를 먹고 일찍 잠들었다. 10시 조금 넘어서는 120ml를 더 먹고 다시 잠들었다. 기분 좋은 밤이다. 꿀떡꿀떡 뚜뚜 분유 삼키는 소리보다 더 좋은 소리가 있을까 생각 드는 밤이다. 요 며칠 분유 갈이를 하는 건지, 크느라 입맛이 없는 건지 도통 먹지를 않아 애가 탔는데 오늘 새롭게 바꾼 분유는 냄새부터가 고소한 것이,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잘 줄 알았다. 기분 좋은 밤이다.



저녁까지만 챙겨주고 뚜뚜 재우느라 들어갔다 나오니, 솔이 먹으라고 씻어놓은 포도 접시가 깨끗이 비어져 있다. 껍질만 소복하게 앉아있다. 내 새끼 잘 먹었구나, 뽈록 나온 솔이 배를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생각 드는 밤이다. 아빠가 포도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려줬다며 포도씨 먹은 자랑도 한다. 더 젊어진다나 뭐라나. 다섯 살이 더 젊어지면 어쩌나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걱정을 한다.




남편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좀 받았는지 퇴근길 얼굴이 무겁다. 수다쟁이 남편 퇴근길이 너무 조용해서 덩달아 나도 말이 없어진다. 그냥 기다려야지 그 생각으로 저녁 챙기기 바쁘다. 남편은 회사 내에서 자신의 직급에 맞는 업무만 하길 바라지만 회사일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자존심도 상하고 스트레스도 커서 안 그래도 커다란 발이 더 부어 보인다.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이소에 자주 가는데 오늘도 욕조 마개, 샤워캡, 두피 마사지 빗을 사 왔다. 내일 분리수거 날이라 남편이 사 온 것들 포장을 풀면서 솔이에게 말했다. '오늘 아빠가 마음이 많이 힘드셨나 보다, 솔이는 이럴 때 어떻게 해주면 좋아?' 솔이는 그럴 때 안아주면 좋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화장실 간 남편을 문 앞에서 기다려 나오자마자 달려들어 꼭 안아줬다. 좌 솔이, 우 아내가 안겼으면 들어 올려 안아줄 만도 한데 무릎을 꿇고 우리 둘을 감싸 앉는 걸 보니 오늘은 정말 힘이 빠지는 날이었나 보다.



남편이 사 준 책이 생각난다. 사경인이 지은 [진짜 부자 가짜 부자]. 숙제처럼 책을 사주며 같이 읽고 싶다고 했다. 자기는 이미 전자책으로 읽었다며 웬일로 자발적으로 책 첫 페이지 메모도 남겨서 전해준다. 나도 알고 있다. 당장 남편 건강이 안 좋아 일을 못하게 되면 우리 집 수입은 0원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한순간에 멈춰버릴 거란 걸. 그 불안함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남편도 맞벌이하기를 바라지만 당장에 솔이와 뚜뚜를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큰 기회비용이 든다는 것을 잘 안다. 삶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 될 것이란 걸 안다. 그러니 저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남편 퇴근길이 어두운 날에는 나도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솔이 리듬체조 수업이 있을 때마다 짬을 내어 읽고 있다. 균형 잡힌 행복을 누리고 싶다. 일찍 잠든 솔이 뚜뚜 그리고 조금 전 잠자리에 든 남편을 생각하며 이 글을 적는다. 그리고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오늘을 기록한다. 매 순간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 가족 파이팅.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똥기저귀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