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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n 29. 2017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
일상다반사


이유가 무엇이건 지루함의 인상은 한결같다.

어떤 삶도 자의로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때때로 부여받은 시간이 벅찰 때가 있다.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한 그림처럼 비슷하게 섞여 돌아가는 날들을 꾸역꾸역 지나다 보면 몹쓸 무력감이 찾아온다. ‘폴리아나의 기쁨 놀이’ 같은 건 진작에 위선처럼 느껴진다. 범상한 날들은 평화로움을 잃고야 소중해진다. 진부하게도.

하루는 길지만 평생은 한순간인 인간과 달리 신들의 하루는 무한의 궤도를 걷는다. 원치 않게 영속성을 부여받게 된 존재나 뱀파이어, 말하는 새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체력과 긍정이다. 언젠가 얻게 될지 모를 소멸이나 정착에 대한 기대를 품고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심혜진 작가는 여전히 마니아층이 두터운 작가다. 인기의 역사는 동인활동 앤솔로지부터다. 공식적인 데뷔 이후에는 아무래도 한 겹 덧씌웠지만 캐릭터들 마다 기존의 BL 함의가 담겨 있다.

일본 BL의 모사나 오마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한국형 BL은 설정은 충실히 가져가되 서사가 보강된다. 1990년대 다양성의 토대 위에 이정애 작가를 시작으로 박희정, 심혜진, 나예리, 지혜안, 한혜연 등 당시로선 재기 넘치는 신인들이 특정 행사를 통해 유통되던 장르를 공식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런 장르 견인은 그 자신이 독자이기도 한 프로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며 더욱 확장된다.

그러나 국내 순정만화계의 반짝 부흥기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눈먼 투자금을 쏟아부은 촌극 같은 애니메이션은 여전했지만 출판물 심의는 더욱 주먹구구식이 된다. 결국 대다수의 작가가 방향을 선회하며 버티거나 절필한다. 심혜진 작가는 본인의 특기(?)를 살려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이다. 화풍은 다소 변했지만 인물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매순간 투닥거리지만 유일하고 모든 것인 파트너 큐라 백작과 그의 집사 세바스찬. 짠돌이 근성과 각종 망가짐으로 미친 미모를 낭비한다.

데뷔작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는 가벼운 코믹 옴니버스물로 파일럿 이후 캐릭터의 인기에 힘입어 <윙크>에서 연재되었다. 때문에 서사의 완결성보다는 캐릭터 플레이에서 만끽되는 즐거움이 크다. 에피소드는 뱀파이어 큐라 백작과 까마귀로 추정되는 집사 세바스찬의 일상다반사로 채워진다.

일상의 온갖 찌질함이 유독 기쁘게 먹어치우는 것은 그들의 우아함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 고무장갑으로 버티는 근면한 미남 세바스찬은 가사노동에 지쳤다. 그를 가장 까칠하게 만드는 것은 큐라 백작의 미친 근검절약과 세탁물이다. 낮에는 새, 밤에는 인간으로 변하지만 호사스러운 마법 능력 같은 것은 없는 세바스찬은 오늘도 세탁기 구입을 위한 알바에 골몰한다.

큐라 백작은 귀족 특유의 도도함이 넘쳐흐르는 미남이다. 뱀파이어지만 토마토 마법이 특기인 모친과 토마토 저주에 걸린 부친 덕에 그가 선호하는 것도 오로지 토마토뿐이다. 붉고 탐스러운 토마토는 필연적으로 세탁물과 세바스찬의 짜증을 부른다. 빈궁해 보일 정도의 오랜 검약은 그의 가장 큰 오락이다. 에어컨도 들이지 않고 촛불에 의지해 사는 이유는.. 원치 않았던 무한의 삶, 믿을 것은 돈 뿐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함께 살게 된 이들은 몇 세기를 거쳐 투닥거린다. 영겁에 무력감도 느끼지만 그 무력감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도 서로임을 잘 알고 있다.

인기 에피소드 <버지니아 헤더스에게>는 그 무한의 시간 때문에 잡을 수 없었던 인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망연자실하게 망한 큐라 백작의 첫사랑과 달리 세바스찬의 애틋한 소망을 엿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는 나무 아래, 한 소녀가 자기 나이 때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버지니아 헤더스’는 아름답고 발랄한 소녀였다. 그 나이 때 소녀답게 관습 속에 예정된 삶을 답답해한다. 타인이 보기에도 자신이 보기에도 아무 문제라곤 없는 삶은 범상한 획일성으로 인해 지리멸렬하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운명적인 사건 같은 것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등장만큼 밝혀진 것 없는 신변에도 그와의 대화는 나날이 기대된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수순처럼 사랑이라는 마법이 된다. 버지니아는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난감한 표정으로 긍정도 부정도 없는 그를 설득한다. 씩씩한 그녀는 사랑에 자신을 던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녀 일생일대의 제안은 무위로 끝난다. 먼저 나와 온종일 기다린 약속 장소에 그는 오지 않았다.

나타났을 때처럼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만 아는 오래된 마법처럼.



버지니아는 어쩐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오지 못한 이유는 그가 말하지 않은 신변의 이야기처럼 말할 수 없는 종류였을 거라는 걸.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전한 사랑 속에 울고 있는 그녀를 그 역시 같은 마음을 품은 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것을.

언덕을 내려온 버지니아는 아무 일 없던 듯 예정된 약혼자와 결혼해 예정된 삶을 살아간다. 준비된 것처럼 사랑받고 평범하게 행복한 일생을 보낸다. 그렇게 평생을 보낸 그녀는 소녀시절부터 좋아한 이 언덕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충실히 사랑한 남편의 성이 아닌 ‘버지니아 헤더스’ 그녀 자신의 이름으로.

소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듣고 있던 청년은 생기 넘치는 붉은 장미 한 다발을 건넨다. 장례식에 붉은 장미를 가져왔음에 의아해하는 소녀를 뒤로 하고 그는 자리를 떠난다.


그 역시 그녀, 버지니아와 같은 꿈을 꾼 적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이 되고, 유한한 삶 속에 약간의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는 그런 꿈.

세바스찬은 버지니아에게 이제야 안녕을 고한다.





괜찮다고 자위해 보아도 괜찮지 않은 일들이 있다. 정체된 육중함은 스스로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이런 갈증을 부정하고 방치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망가져버리는지 모른다.

리스트업 된 항목을 지워가듯 살던 버지니아도 무력감에 빠진다. 아무 문제없는 삶에서 열정은 부연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영겁에 묶인 세바스찬은 버지니아가 벗어나고 싶어 한 지리멸렬함을 충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외형은 달랐지만 그들의 결핍은 같은 종류였다. 종종 같은 세계를 공유한 이들은 사랑에 빠진다. 같은 이유로 인해 어떤 변명 한 자락 없이도 서로를 이해한다.

그것이 때때로 사랑이 마법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완결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함께 한 시간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기억들은 때때로 미결로 인해 불멸을 얻기도 한다.

자각하지 못해도 때우듯 메꾸듯 버텨나가는 일상은 기억으로 의미를 얻고 삶을 이룬다.





@출처/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 심혜진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 (서울문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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