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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n 28. 2017

한밤중 개미 요정, 소곤소곤


양육자가 아닌 입장에서 듣는 육아 체험은 대부분 지겹지만 기발한 에피소드도 많다. 친구의 두 살 난 아기가 넓은 거실 구석에 머리를 박고 있더란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아기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즐겁게 집개미를 하나씩 찍어 먹고 있었다.

조카가 아기였을 때 우리 집 개는 종종 뾰로통하게 굴었다. 막 먹는 재미를 깨우친 조카가 개가 여기저기 몇 알씩 옮겨둔 사료를 쫓아다니며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작은 것들을 잘 포착할까? 작은 존재들의 목격담이 아이들에게서 압도적인 것은 시력보다는 에너지의 문제일 것이다. 동양화가 신선미 작가의 기존 시리즈를 편집한 <한밤중 개미 요정>도 아이들이 발견한다. 서사는 다소 진부하지만 유려한 그림들은 종일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다.



우리는 서로의 응원이다

신선미 작가가 일관되게 그려온 개미 요정은 특별한 마법을 지닌 존재는 아니다. 고운 한복 차림의 한 뼘 크기 소녀들은 규중칠우나 집요정 쪽에 가까워 보인다. 방의 주인인 듯한 아가씨가 깜박 잠들자 삼삼오오 모여든 개미 요정들은 아가씨의 장신구나 거울을 구경한다. 소곤소곤 거리지만 유쾌한 흥분이 가득하다.

<아찔한 외출> 연작. 상단은 보그 콜라보 화보
<당신이 잠든 사이> 연작


딱히 심술부리려는 것이 아님에도 개미 요정들은 때때로 소동을 일으킨다. 높은 곳에 올라서려다 찻잔을 뒤엎고 진주알을 헝클어뜨린다. 소지품을 감추거나 고양이의 도발을 부르기도 한다. 성인인 아가씨는 개미 요정들을 자각하지 못한다. 때문에 찻잔을 뒤엎었다고 한숨짓거나 어째서 옷장 밑에 굴러간 건지 알 수 없는 소지품을 끄집어 내려 낑낑댄다. 아, 이런.. 고양이까지 또 장난을 치네.

<복수혈전> 연작


특유의 여백과 유려한 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꽃송이처럼 소담스럽다. 그저 예쁘기만 한 그림이라면 입소문은 이내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화풍 자체는 전통 채색기법에 충실하되 캐릭터에는 현대적 동시성을 부여했다. 자칫 신변잡기로 그칠 소재의 일상성은 배치된 소동을 통해 해학의 정서를 시도했다고 한다.

<건망증> 연작


신선미 작가의 여성들은 사랑스럽다. 단지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하고, 고단해하는 그림 속 그녀들에게선 우리가 일상의 긴장 속에서 겪는 고군분투가 느껴진다. 꼼꼼히 차려입은 한복은 아름답지만 일순 옥죄는 것처럼도 보인다. 작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소한 불운을 마주한 그녀들에게 그런 소동은 개미 요정 때문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한다. 그 순간 기분 좋은 느슨함이 한 겹 스며든다. 동양화라는 카테고리에 안이하게 기대지 않은 세련된 중의이다.


신선미 작가의 여성들은 서로가 서로의 응원이 되어준다.

성인이 된 친구가 자신들을 자각하지 못해도 개미 요정들은 여전히 상냥하다. 무거운 몸을 가누지 못해 까무룩 잠든 임산부의 고단함 위에, 기대보다 어쩌면 습관성 한숨부터 쉬고 열어 볼 아가씨의 경대 안에 달콤한 음악을 넣어둔다. 선잠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이어지거나 오늘 유독 예뻐 보이는 이유는 당신의 개미 요정들이 넣어둔 음악 때문일지 모른다.

<오르골> 연작



칠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빨간색이 파란색이 되지는 않는다.

신선미 작가를 좋아한다면 <내숭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은 동양화가 김현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김현정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신선미 작가와 비슷해 보이는 작업 방식으로 화제를 얻었다.

김현정의 주인공들은 욕망에 충실하다. 욕망에 충실한 여주인공들이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관습 속에 폄하되거나 금기 시 된 여성의 욕망은 더 당당히 드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김현정의 그림에서는 어떤 흥미도 감동도 받을 수 없다. 작품 속 풍자가 너무나 일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풍자의 기법은 ‘김치녀’, ‘된장녀’ 같은 저급한 혐오 프레임을 딛고 올라서 있다.


김현정 작가는 자기 본능에 충실한 탈시대적 현대 여성을 그렸다고 밝혔다. 그녀가 그린 여성의 도발적 일탈이란 고작해야 한밤중에 라면이나 정크 푸드 쌓아두고 먹기다. 뭐 어쩌란 건지 싶다.

왜 굳이 한복을 입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에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풍성하고 비밀스러운 의복 속을 훤히 들여다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일까? 관습적 방어로서 여성의 의뭉스러움을 말하는 거라면 너무 안이한 해석이다. 김현정의 여성들에게선 최소한의 공감을 찾을 수 없다.


모든 예술에 거대한 이슈가 녹아있을 필요는 없다. 예술은 단죄하는 장르가 아닌 공감과 공론 사이의 분야이다. 신선미 작가가 먼저 진입했다는 시기상의 이유만으로 김현정의 작품을 표절로 치부할 수는 없다. 김현정 자신의 주장처럼 채색 기법과 터치도 다르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아래의 두 그림이 외형마저 명백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왼쪽에서 칠하던 것을 오른쪽에서 칠한다고 빨간색이 파란색이 되진 않는다.

<닮은 꼴> 신선미 - <완벽한 밥상> 김현정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사유의 확장은 무수한 재해석을 통해 다양성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김현정 작가는 이런 확장성에서 영향받았다고 인정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악성 댓글 소송건을 떠올려 보면 자신의 성공이 시기당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를 향한 비판은 모사한 타인의 정체성을 자신의 고유성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코스프레 같은 한복을 차려입고 다니기 전에 포부에 어울리는 기본기부터 연마해야 하지 않을까? 수치심이 없을수록 과시적 노출에 더 몰두하는 법이지만.


개미만 한 어떤 존재들은 더 이상 우리를 놀라게 하지 못한다. 성장은 우리를 집개미에 더 소스라치게 만든다.

그럼에도 기억나지 않는 꿈이 주는 애틋한 여운처럼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위로가 있다. 사소한 불운이 겹친 날, 너무 작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믿고 싶어 지는 선의가 있다.

그런 존재들을 포착해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요란한 코스프레에 묻혀버리지 않길 바란다.

표절과 아류, 동종 카테고리 속에서도 결국엔 우직한 정공법의 작가들이 한 스푼쯤 더 대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한밤중 개미 요정 (창비, 2016)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247956


당신이 잠든 사이 (아이콘북스, 2016)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2684376


아찔한 외출 (보그 코리아, 20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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