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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ul 07. 2017

셋방살이 요정, 빌려드립니다!


매번 한 뭉치씩 구비해두지만 필요할 땐 없는 물건들이 있다. 어느 무심한 날, 소년은 사소한 물건이 분실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이 일을 계기로 소년은 한 집에 살고 있는 줄도 몰랐던 소녀를 마주한다. 씩씩한 그녀 아리에티는 개미 요정처럼 한 뼘 크기이다.

동양에서는 작은 집터조차 성주신, 조왕신, 삼신 같은 가신 家神들이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도 오래된 집은 그 자체가 초월적 존재로 여겨진다. 이런 고택의 소문을 돋우는 것도 역시 초월적 존재들이다

‘바로우어즈’도 오래된 저택을 선호하지만 그들은 집요정이 아니다. 마법 같은 능력도 없는 더불어 사는 쪽에 가깝다. 함께 사는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극도로 신중하지만 말이다. 제 돈 내고 살아도 집주인을 마주한 세입자들은 이유 없이 위축되곤 한다. 그러나 바로우어즈들은 은밀하고 오랜 더부살이에 주눅 들기는커녕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세계관을 가졌다. 그 당당함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면 안쓰러움마저 든다.




이웃인 듯 이웃 아닌 이웃

메어리 노튼의 대표작 <바로우어즈>는 인기만큼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주되었다. 욕심 많은 헐리웃에선 일찌감치 기획영화가 제작되었고 동화적 설정에 관심 많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바탕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 アリエッティ, 2010>를 발표했다.

국내 판본으로는 전체 다섯 편의 시리즈 중 1권만 완역되어 있다. 시공사 판본은 북 디자인이 조금 촌스럽지만 미국판 일러스트가 그대로 실려있고 번역도 자연스럽다. 절판이긴 하지만 시리즈의 2권도 <구두 속에 사는 난쟁이들>이란 제목으로 완역된 적이 있다. 국내 독자라면 시대성이 느껴지는 <셋방살이 요정>이라는 제목의 계몽사 전집 수록분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계몽사의 노란 책 https://brunch.co.kr/@flatb201/76


초판 일러스트는 다이애나 스탠리 Diana L. Stanley가 그렸지만 베스 & 조 크러시 Beth & Joe Crush 부부의 유쾌한 화풍이 가장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 계몽사의 <셋방살이 요정>도 구도나 설정에 있어 크러시 부부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모사했다.

다이애나 스탠리의 초판 - 조 & 베시 크러시의 미국판 - 미국판을 모사한 계몽사 전집
바로우어즈 전체 시리즈
원전 일러스트(상) - 계몽사 전집 모사분(하)




늘 있던 자리에 둔 코바늘을 찾던 ‘케이트’는 ‘메이 아주머니’의 중얼거림을 듣는다.

‘설마 이 집에도 그들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호기심이 동한 케이트는 메이 아주머니를 조른다. 오래된 저택에 숨어 살며 무엇이든 ‘빌려 쓰는 이들 The Borrowers’의 이야기를.

메이 아주머니가 어린 시절, 그녀의 병약한 남동생은 한동안 소피 고모의 대저택에 머물렀다. 품위 있으면서도 켜켜이 쇠락해 가는 대저택은 언제나 고요하고 변화 없는 곳이다. 어느 날 소년은 장식장 옆 커튼에 매달려 낑낑대는 무언가를 목격한다. 찻잔 하나를 이고 버둥거리는 존재는 필사적이다. 소년은 조용히 다가가 찻잔을 대신 내려준다. 한 뼘 정도 크기의 성인 남자는 요정이라기엔 공포에 질린 표정이다.


‘아리에티’는 평범한 소녀이다. 아빠 ‘팟’이 빌려온 물건들로 엄마 ‘호밀리’가 정성껏 꾸민 집은 안락하다. 그럼에도 아리에티는 요즘 부쩍 답답하다. 몇 년 전 수해를 입어 이사 온 마루 밑은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바로우어즈의 공식적인 외출은 ‘빌리러 갈 때’만 허용되는데 이마저도 남자아이에게만 허용되는 권한이다.

그런데 오늘 아빠는 인간 소년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켰다. 안전을 생각하면 바로 새 터전을 찾아야겠지만 막막한 일이다. 친척이 사는 들판으로 가기 위해 저택을 벗어난다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찻잔 내리는 것을 도와준 소년이 적대적이지는 않다고 판단한 호밀리와 팟은 당분간 저택에 머물기로 한다. 대신 아리에티를 바깥세상에 대비시키기 위해 빌리러 가는 일을 가르치기로 한다. 아리에티는 뜻하지 않게 이뤄진 소망의 기쁨을 매일 아껴 쓰는 일기장에 적어둔다.


벽시계 문을 지나 마루 위로 나선 아리에티는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아빠를 도와주었던 소년일 것이다. 아리에티는 소년을 통해 세계가 바로우어즈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 때문에 빌리는 것은 훔치는 것이라는 데 충격을 받는다. 소년 역시 아리에티가 요정이 아니란 점에 다소 실망하지만 약간의 경계 끝에 둘은 친구가 된다. 소년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팟조차 엄두 내지 못한 아름다운 인형의 집 가구와 집기들을 가져다준다. 아리에티 가족과 소년은 비밀스러운 친분을 쌓아간다.


그러나 저택을 관리하는 가정부 드라이버 부인에게 아리에티의 집이 발각된다. 심술궂고 잔인한 이들은 발견한 집을 박살 낸 것도 모자라 바로우어즈들이 숨은 지하 통로에 쥐잡이 가스를 살포하기로 한다. 마침 가스 살포의 날 본가로 떠나게 된 소년은 절박하게 아리에티를 찾는다. 드라이버 부인의 집요한 감시하에서도 소년은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이다. 소년은 아리에티를 구할 수 있었을까?






훔쳐보기를 통한 빠져들기

메리 노튼은 ‘훔쳐보기’를 통해 독자를 이야기 속에 참여시킨다.

평이한 판타지처럼 시작된 <바로우어즈>는 후반부로 갈수록 박진감이 넘친다. 프롤로그 같은 서두가 끝나고 독자가 가장 처음 만나는 장면은 어느 가정집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거실은 옷핀, 압지, 성냥갑, 우표 심지어 과자 가루 같은 잡동사니로 구성되어 있다. 한 뼘 크기의 바로우어즈들이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독자는 섬세히 세공된 인형의 집을 요모조모 돌려보는 느낌을 가진다.


세부 설정의 훌륭함은 서사의 분위기도 함께 고조시킨다.

바로우어즈들이 오래된 저택을 선호하는 이유는 변화가 최소화된 예측 가능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들키면 안 된다는 정서적 강박은 공간의 제약보다 훨씬 견고하다. 바로우어즈의 활동 영역은 마루 아래 어둡고 긴 통로를 거쳐야 한다. 단지 감자를 가지러 갈 뿐인 아리에티가 철망 근처를 지날 때 우리는 인적 없는 골목의 스산함을 떠올리며 조바심 낸다. 옷핀과 철망으로 안전 조치를 해두었지만 쥐, 벌레 등 잠재된 불안요소는 많다. 한 뼘 크기라는 신체적 특징은 이런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계급사회와 시대성에 대한 직관

이 명민한 작품은 관습적 설정을 기반으로 하되 고전적인 예상을 비껴간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지만 아리에티는 요정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우어즈 종족은 생존의 제약으로 인해 철저히 계급화되어 있다. 집안 곳곳을 이용한 가문별 묘사는 영국의 고질적인 계급의식을 직관적으로 풍자한다.


“..왜 그분이 오만한 건 유명하잖니.”

“여보, 호밀리..”

“사실 그럴 자격도 없는 사람이 말이다. 하프시코드 집안으로 시집오기 전에는 마구간에서 살던 라인 파이프 집안의 사람이었거든.”


극 중 호밀리는 아리에티의 큰어머니 루피를 싫어한다. 재혼으로 클락 가문의 사람이 된 루피는 사실 클락 가문보다도 하층계급인 마구간 가문이었음에도 귀족적인 하프시코드 가문의 이름만 거들먹거린다. 허영심 있지만 벽시계처럼 근면한 삶에 대한 자부심도 넘치는 호밀리로선 루피의 허영이 아니꼽기 그지없다. 메리 노튼은 계급의식의 부조리와 우스꽝스러움을 이토록 쉽고 직관적으로 묘사한다.


성별에 대한 차별은 계급의식만큼 공고하다. 바로우어즈 종족의 ‘빌리는 일’은 생존을 위한 필살기임에도 남자에게만 기술이 전수된다. 씩씩한 아리에티는 관습적 제약을 넘어 자신이 소망하는 삶을 성취하고자 한다.

동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모험은 남자들의 전유물로 취급되곤 한다. 이 작품이 써진 시기를 떠올려 보면 아리에티의 소망과 성취는 시대성을 뛰어넘는 여성을 예고하고 있다.


신체적 열세와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바로우어즈들이 편협한 종족으로 묘사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한정된 세계관 속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태도는 작가가 살던 당시 이미 몰락해가던 상류층과 제국주의자들의 모습이 입혀져 있다. 그런 아리에티가 외부-위험하지만 미개하다 생각했던 종족과 교류하며 자신의 생각을 고쳐 나간다. 소년과 소녀는 각자의 용기를 교환한다.

태생적 이유로 한정된 세계관 안에서 자랐더라도 이해와 존중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우어즈들은 빌리는 일을 예술이라고 한다. 필요한 물건을 무사히 가져오되 들키지는 않는 것, 빌리는 일은 그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일이다. 맞다, 살아남는 게 예술일지 모른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메리 노튼은 불확실한 공포에 잠식된 시대를 살았다. 이런 시대적 특징에 대입해 보면 아리에티에게선 안네 프랑크 같은 다수의 은신자들을, 가스 살포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은유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절대악과 같은 드라이버 부인의 만행에도 소년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이던 작은 영웅이다. 성인이 된 그는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메리 노튼은 개인의 의지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시대적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과 작은 영웅들을 증언한다.




모든 이야기꾼의 정체

그러나 <바로우어즈>를 빛내는 것은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스포일러는 알아서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문장만큼은 밝히지 않겠다.)

바로우어즈들을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소년과 후일담은 어떤 마법보다 짜릿하다. 앞서 말한 항목만으로도 <바로우어즈>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마지막 문단이 없었다면 그냥 재미있는 계도형 동화에 그쳤을 것이다.

메리 노튼은 이야기의 구조를 통해 창작자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무심히 지나쳐온 모든 설정은 밀도 있는 복선으로 폭발한다. 모호한 트릭처럼 동화적 환상성을 북돋아준다.

태연자약 생글생글 거리는 셰헤라자데처럼 창작자의 은밀한 윙크를 보낸다.

대개의 좋은 작품들이 그렇듯 성찰 속에서도 유쾌함이 가득한 매력적인 고전 동화이다.





@출처/ 

바로우어즈, 메리 노튼 (The Borrowers, Mary Norton, 1952)

계몽사 소년소녀 현대세계 명작전집 2/20, 셋방살이 요정 (계몽사, 1972, 번역 이영희, 일러스트 송영방)

마루 밑 바로우어즈 (시공주니어, 2002, 번역 손영미, 일러스트 베스 & 조 크러시 Beth & Joe C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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