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동문학전집에 있어 ‘계몽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계몽사는 광복 이후 참고서 발간 위주의 소규모 출판사로 출발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동 도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50권짜리 첫 번째 전집 <계몽사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을 발간한다. 개정을 반복하며 인기를 끈 이 전집이 많이들 기억하고 있는 일명 ‘주황색 책’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의 원전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아동문학 시장에 다수의 경쟁자들이 진입했지만 계몽사의 입지는 굳건했다.
계몽사 전집들은 화려한 외양보다는 아동용으로 각색된 기존 전집의 배리에이션에 신경 쓴 느낌이 강하다. 이 시기 계몽사는 당대의 국내 작가들에게 ‘삽화’ 개념으로 일러스트를 맡겼다. 기법상으로만 창작자 스타일이 구분되는 원전을 모사한 일러스트들이다. 송영방, 김광배, 이우경, 안흥준, 홍성찬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수년간 다양한 작품을 담당한다.
일러스트의 존재감이 작품만큼 강해지는 시기가 이르자 원전의 일러스트를 싣기도 했지만 모사의 범위를 원전에 더욱 일치시켰다. 삼십여 년 만의 복간판 마저 품절시킨 <어린이 세계의 명작>이 있지만 고단샤 전집을 그대로 카피한 점을 열외로 두더라도 훨씬 후의 일이다.
책등과 뒷면 전체가 노란색이었기에 일명 ‘노란 책’으로 불린 <계몽사 소년소녀 현대세계명작전집>의 참신한 작품 선별은 현재도 인기가 높다. 시그니처인 노란색 북 케이스를 비롯한 북디자인은 원전 <현대세계 명작 동화 現代世界名作童話, 講談社>를 그대로 차용했지만 수록작 선별은 여러 판본 중 인기 있는 창작동화를 수집해 재편집했다. 참신한 창작 단행본 구성을 자랑하던 <세계의 걸작동화 世界の傑作童話, 学習研究社>와 <이와나미 소년소녀문학전집 岩波少年少女文学全集> 등에서 선별해낸 계몽사 수록작들은 고전 동화 위주로 구성되던 기존 배리에이션이 아닌 당시엔 비교적 현대적이던 창작동화들을 소개했다. 일러스트 역시 원전을 모사하긴 했지만 때문에 일관된 톤으로 조율된 이미지들이 실려있다.
무엇보다 노란 책은 무수한 공주님과 왕자님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노란 책에는 여전히 마법과 환상, 요정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로열패밀리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마녀라고 믿는 내 또래의 소녀들 (요술장이 아가씨), 누구나 한 번은 거쳤을 과오와 성찰의 관계맺기 (멀리 간 소녀, 외토리 소녀), 관찰자가 아닌 모험의 주체자 (셋방살이 요정, 사자와 마녀, 오렌지 꽃 피는 나라, 소년 탐정 칼레), 마법 따위 없어도 신나는 일상이 (유쾌한 호우머, 귀염동이 동생) 존재했다.
물론 고전적 전설에 근거한 작품도 있었지만 (유리 구두, 돼지 임금님, 유쾌한 무우민네, 거인의 바위굴) 작품 속 소년 소녀들은 ‘그 자신’으로서 존재했다.
일부 작품이 정식 발행되어 있지만 저작권상 전질이 복간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의 공주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물론 즐겁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시기를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의 서사에 관심 가질 때 성장이 다가온다.
취향을 발견하기 전 독서의 폭을 넓혀준 전집이다.
@출처/ 소년소녀 현대세계 명작전집 (계몽사,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