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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an 11. 2018

쿨핫, 히든 트랙


늘 담아두는 것은 아니라도 특별한 곡이 있다. 장르는 무엇이어도 좋다. 누구나 아는 노래라도 사연은 자신만의 것이다. 그 곡에 반드시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정규 트랙이 모두 돌고 조바심 나는 침묵을 거쳐 공명하는 숨겨진 트랙처럼.

유시진 작가의 학원물 <쿨핫>은 이름 붙일 수 없던 결핍에 관한 노래들이다.


인기에 불구하고도 <쿨핫>의 연재는 미완인 채로 중단되었다. 불황의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본작을 이어나가기엔 작가 자신이 그 시기의 감수성에서 동떨어진 나이가 되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창작의 조건에 체험의 여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쿨핫>의 경우 작가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동시대성’이 숨은 주인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데생에 한창 물이 오르던 작가는 시각적인 설정에 당시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했다. 연재 시 즐거움을 주었던 유행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어쩔 수 없이 유머로 전락하긴 해도 말이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 풍으로 멋 부린 남자 친구, 지금이라면 중2병 오글거림 취급을 받을 시도 때도 없는 방백을 떠올려 보자;;)


<쿨핫>의 인물들은 그 자신이 한 챕터의 주제이자 한 시기이다.

외모도 피지컬도 남성 같은 여학생 ‘루다’는 ‘자신을’ 원하는 관계와 ‘자신이’ 원하는 관계에 대해 자각한다. ‘동경’의 한결같은 냉소는 가부장 권력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결벽증을 가진 동경에게도 ‘영전’은 넘고 싶은 선이었다. 도도함만큼 똑 부러진 ‘재련’이건만 오랜 친구 ‘람’의 시선은 그녀를 머뭇거리게 한다. 비밀을 품고 접근하는 동경의 이복형제 ‘태희, ‘루리’만큼 오랜 애정으로 번민하는 람, 그런 람을 바라보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준휘’, 동경의 동경과 애정 사이에서 초연한 영전, 한남충의 역사 ‘지환’.. 이런 인물상은 현재도 유효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자세는 절대 같을 수 없다. <쿨핫>을 둘러싼 시대적 에너지는 2000년대 초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많이 달라져있다. 또 여전히 새삼스럽다.


타임라인을 훑다 <82년생 김지영>이 반여성적 작품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정초부터 이런 개소리를 부끄러움 없이 하는 이는 역시 40대 남성이다. (비주얼, 내용 모두 조악해서 링크는 생략한다.) 공감력도 없으면서 문해력까지 딸리면 어쩌자는 건지 싶다. 달라지길 바랬던 것들은 2018년에도 여전하다.


<쿨핫>은 동시대의 모습으로 시대초월적인 이야기를 시도했다.

당시에는 드러낼 수 없었던,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말하지 못했던, 아니 딱히 붙일 표현조차 마땅치 않던 감정들을 응시했다. 사회화로 강요되던 집단의 폭력성을 부정했다. 개인주의, 여성주의, 소수자와 차별금지.. 거창하게 부르지 않아도 좋다.

학원물의 외피는 서사에 판타지를 더한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대는 ‘성장’을 위한 설정 같지만 이들은 이미 완결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염두에 두는 것은 욕망의 실체화다. 구원이 될지 파국이 될지 모르는 감정은 각자의 결핍이 만들어 낸 선망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숨겨져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곡, 취향은 아니지만 비범함이 드러나는 곡, 어떤 한 시기를 완전히 장악한 곡, 시간 속에 풍화되어버린 뜨거운 감정을 서늘하게 반추하게 만드는 곡.

<쿨핫>은 그런 히든 트랙들을 모아 들려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출처/ 

쿨핫, 유시진

쿨핫 (코믹스 투데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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