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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an 31. 2018

함정과 진자, 포의 심연


한 사람이 일구어낸 미스터리의 소우주들은 새삼 그의 어둠마저 궁금해지게 한다. 에드거 앨런 포는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공포’라는 주제를 화려하고 다양하게 변주했다. 포의 공포는 심연을 목도하는 데서 기인한다. 산문과 운문, 초현실적 정서와 현실적 묘사가 뒤섞인 서사는 기괴한 아름다움과 파장을 만들어낸다.

포가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한 시기 미국은 신생국 특유의 활기만큼 내우외환이 들끓었다. 남북전쟁으로 발화될 사회분열이 차곡차곡 쌓이며 경제를 흔들었다. 포의 불우함은 유년시절에서 끝나지 않고 평생 끔찍하게 궁핍했다. 그의 사망은 현재까지도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데 노숙자로 오인된 알콜중독 상태의 포가 정치 깡패들에게 끌려다니며 부정투표에 이용되다 객사한 것으로 본다.

분방한 기질은 평단과도 불화해 사후에도 한참 지나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폄하에도 가려지지 않는 작품의 독창성은 도덕적 결함의 부산물로 평가절하되었다. 음주, 도박을 비롯한 각종 중독과 결혼 당시 열세 살이던 아내는 악의를 키우기 좋은 구실이었다. 애틋한 낭만시 <애너벨 리 Annabel Lee, 1849>는 동화적 판타지로 윤색된 그들 사랑의 연대기인 셈이다.


포의 어둠은 초월적 존재 여부 이전 인간의 심연과 낙망에서 기인하기에 압도적이다. 걸출한 공포물은 많지만 포의 존재감이 현재도 유효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 1890>도 갖가지 심연으로 빼곡하다.

삽화가이자 장식미술가였던 해리 클라크는 포의 주요 단편이 수록된 이 단편집을 현란하게 가시화했다. 아르누보에 대한 클라크의 심취는 아름다운 삽화들로 쏟아졌다. 워낙도 걸출한 그림들이 넘치는 골든에이지 시대에 클라크의 작품이 특별한 것은 비틀림이 공존해서 일 것이다. 기괴함이 내포된 비틀린 아름다움은 포의 작품에 더없이 어울린다.

<The Fairy Tales by Anderson>
<The Fairy Tales of Charles Perrault>


<병 속에 든 수기>는 포의 다른 단편 <소용돌이>와 비교해 읽으면 좋을 듯하다. <병 속에 든 수기>가 판타지를 통해 고딕적 분위기를 구사한다면 <소용돌이>는 자연의 거대함을 통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인간의 심연으로 인한 어둠이 초월적 존재보다 더한 공포일 수 있음이 탁월하게 드러난다.

<밸더머 사례의 진상> 속 공포가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시각화되었다면 <군중 속의 사람>에선 존재론적 미스터리로 치환된다. <베레니스>, <모넬라>, <리지아>, <붉은 죽음의 가면>, <킹 페스트>는 일러스트마저 압도적이다. 해리 클라크는 신경질적인 선과 압박에 가까운 먹 작업으로 공포의 모호함을 극대화한다.

#소용돌이 https://brunch.co.kr/@flatb201/158

 <A Descent into the Maelström>, <MS. Found in a Bottle>
<The Assignation>
 <The Black Cat>, <The Masque of the Red Death>


그러나 가장 무서운 작품은 <함정과 진자>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 공포는 오감을 아우르며 재편집된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억울한 처형을 앞둔 주인공은 공감각적인 공포를 경험한다. 이 작품 속 공포는 목격되는 것이 아닌 추측됨으로써 군림한다. 짧은 구원의 상황조차 촉각적인 공포에 의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절망을 안기는 것은 닿을 듯 닿지 않고 주인공의 주변을 맴도는 희망이다. 희망과 절망의 교차 속 신경증적 공포는 강박에 가까운 광기로 분열된다. 포의 일생처럼.

작품마다 편차가 적기도 하지만 언제 읽어도 압도적인 작품이다.

 <The Pit and the Pendulum>





@출처/ 

구덩이와 진자, 에드거 앨런 포우 (The Pit and The Pendulum, Edgar Allan Poe, 1843)

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 (Harrap and Co., 1923, 일러스트 해리 클라크 Harry Clarke)

바벨의 도서관 1권, 함정과 진자 (바다출판사, 2010, 번역 김상훈)


@이미지 출처/

http://50watts.com/Harry-Clarke-Illustrations-for-E-A-P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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