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페에서 책 읽기 May 10. 2018

돼지치기, 공모자들


까마귀도 아닌데 반짝거리는 예쁜 것들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하다못해 사금파리, 햇빛 아래 쨍한 초록색 잎사귀마저 그 예쁨에 마음이 흥겨워질 때가 있다. 다이아몬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유 없이도 충족감을 주는 아름다움이 반드시 유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안데르센의 동화 <돼지치기> 속 공주도 예쁜 것들을 좋아한다. 떠받들어져 자란 방만함이 탐미적 욕망과 만나자 그녀는 사뿐히 금기를 어긴다.

#돼지치기, 공모자들 https://brunch.co.kr/@flatb201/197

#돼지치기, 빈티지 일러스트 https://brunch.co.kr/@flatb201/302





가난한 왕국의 왕자가 이웃나라의 아름다운 공주에게 반해 청혼한다. 왕자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장미와 새를 선물한다. 공주는 꽃은 이내 시들고 새는 날아갈 것이라며 선물을 돌려보낸다.

청혼을 거절당한 왕자는 얼굴을 검게 칠하고 공주가 사는 왕궁의 돼지치기가 된다. 왕자는 음식이 끓으면 종이 울리며 고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신기한 냄비를 만든다. 훈훈하게 피어오르는 김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온 나라의 어떤 집이든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는 냄비였다.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사로잡힌 공주는 냄비를 팔라고 말한다. 돼지치기는 공주가 해주는 입맞춤 외에는 필요 없다며 꿈쩍 않는다.


돼지치기와 공주의 입맞춤이라니! 당치 않지만 아름답고 신비한 장난감을 향한 욕망에 공주는 입맞춤을 허락한다. 꽃송이 같은 치마를 펼쳐 든 시녀들 사이에 숨어 공주는 돼지치기가 요구한 입맞춤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팔십오, 팔십육.. 길고 긴 입맞춤은 지나던 왕의 호령에 중지된다. 분노한 왕은 공주와 돼지치기를 왕궁 밖으로 내쫓는다.


돼지치기는 변장을 풀고 공주에게 일갈했다.


“당신은 정말 소중한 보물은 알아보지 못하면서 고작 장난감 때문에 돼지치기와 입맞춤했소.

이제 당신의 어리석음을 알겠소?”


공주를 남겨둔 채 왕자는 홀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여지없이 아름답지만 상당수가 여성 혐오에 기반하고 있다. 

청도교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하는 <분홍신 Red Shoes, 1845>은 여주인공의 이름부터 혐오가 스며있다. 주인공의 이름 ‘카렌’은 안데르센의 사촌 누나 이름이었다. 어떤 기술도 없어 성매매로 생존해야 했던 카렌이 안데르센에겐 난잡한 여성일 뿐이었다. 미숙한 사회성으로 변변한 연애도 못한 안데르센 자신은 노년까지 사창가에 들락거렸으면서 말이다. 동화임에도 카렌은 두 발이 도끼에 잘리는 단죄 끝에야 굴욕적으로 제도권에 받아들여진다.


<돼지치기>는 어린 시절에도 참 이상한 동화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남자가 일방적으로 구애를 한다. 구애가 거절되자 남자는 악랄한 소문을 만들고 그녀를 고립시킨다. 목적을 달성한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그녀를 내팽개친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그녀는 당연히 어리석다.

아, 이거 너무 익숙한데? 남초에서 선망받는 사이다 썰이잖아?


<돼지치기>는 여성 혐오의 표본 같은 작품이다. 운율감 가득한 문장과 아름다운 이미지로도 서사의 음침함이 가려지지 않는다.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입맛대로 여성을 사육하겠다는 목표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또렷하다.

왕자는 왜 그녀의 취향을 살피고 노래하는 냄비를 선물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취향마저 자신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그녀는 납득할 만한 거절 의사를 명료하게 밝혔다.

오직 한 번의 거절을, 개인적인 좌절을 내내 곱씹던 그는 어제 사랑한다던 여자를 오늘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순정으로 포장한 자기 연민은 시종 음산하고 구역질 난다.

더군다나 스스로의 부와 명예가 있고 외롭지도 않은 여자가 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포기해야 될까 말이다. 공주의 진짜 어리석음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성추행이나 다름없는 요구에 응한 것뿐이다. 공주의 보호자가 되었어야 할 왕 역시 되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몰아가는 이차 가해자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가?


고전 동화들은 익숙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오랜 혐오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계승시키는데 일조한다. 모험의 세계를 방만히 누비던 남자들은 ‘사육된 여자들’을 획득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여성에게 남은 의자는 파국뿐이다.

#공주와 완두콩, 안데르센의 그림자 https://brunch.co.kr/@flatb201/73

#아베이유 공주, 어른의 사랑 https://brunch.co.kr/@flatb201/28




지난 두어 달 간의 뉴스들은 끔찍하고 진절머리가 난다. 여성들에게 딱히 놀랍지도 않은 각계의 성폭력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어 내내 참혹하다. 여성들에겐 공포 어린 공감으로, 미디어와 남성들에겐 포르노로 소비되던 피해자 제보들은 벌써 소강의 수순을 밟고 있다. 한결같은 대화도 따라붙는다.


- 일부가 그런 것이다. 나는 해당되지 않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야? 벌컥!


저런 멍청함이 웃기면서도 저렇게까지 무식할 수 있을까 싶다.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보니 그냥 줄줄 써댄 글인데도 이 악문 것 같은 북받침이 느껴진다.


돼지는 사실 영리하고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돼지는 귀엽고 유용하기나 하지! 소위 ‘한남’들이 돼지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역한 냄새를 풍긴다 정도일 것이다. 그나마도 돼지우리가 불결한 것이지 돼지는 깔끔한 동물이라고 한다. 지금의 여성들에겐 남자보다 차라리 돼지가 유용하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야말로 올바른 돼지치기가 필요하다. 귀엽고 유용하게 사육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혐오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돼지치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The Swineherd, Hans Christian Andersen, 1841)

돼지 치는 왕자 (한국 슈바이처, 2004, 번역 최유진, 일러스트 도로테 둔체 Dorothee Duntze)

안데르센 동화; 돼지치기와 어리석은 공주 (마루벌, 2013, 번역 정문영, 이병렬, 일러스트 리즈벳 츠베르거 Lisbeth Zwerg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