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불문 개연성과 무관하게 어떻게든 성행위 묘사를 구겨 넣는 창작물은 역하다. 묘사의 선정성보다는 그 촘촘한 집착 때문이다. 글로 하는 자위 판타지를 목격한 기분이랄까? 이런 작품일수록 천편일률 진부하다. 더 저속하게 보태자면 꼴리지도 않는다. 창작자의 성별도 편중되어 있다. 하루키에 취한 쿨남까지 비벼지면 구질하기 그지없다. 언제까지 그런 허약한 자위행위를 문화란 명칭으로 소개받아야 하는 걸까? 이런 남성들에겐 놀랍겠지만 여성의 욕망에도 성욕이 존재한다.
‘여성들의 포르노’로 불리는 BL이 죄책감을 주는 것도 정서적 폭력에 닿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르의 성적인 묘사들은 강간, 혐오 판타지에만 매달리는 남성 서사에 비해 감정 전이를 변주한다. 배설을 위해 ‘누구라도’라는 폭력성을 가급적 배제한다. 캐릭터의 탐미성이나 정서의 부각을 위한 도구로써 ‘성애’로 귀결된다. 기존 순정만화에서 합의된 선을 절대 넘지 않는-넘지 못하는 여성의 성적 판타지는 동인 활동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캐릭터들이 동성의 성별, 그중에서도 남성이라는 점은 여성 착취라는 죄책감에 대해 면죄부로 쓰였다. 이런 특징은 클리셰화 된 캐릭터를 통해 반복 변주된다. BL이 서브 컬처로 안착할 수 있던 이유일 것이다.
순결함이 절대 미덕이던 순정물의 세계는 2000년대에 들어 여자의 성, 개인의 성을 드러낸다.
수위는 낮아졌지만 프로 작가로 데뷔하거나 기존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신진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정애 작가의 문하를 거친 지혜안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데뷔작 <에스할름 이야기>부터 다수의 작품이 섹슈얼한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성향은 때때로 ‘작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이미지’에 취해 작품을 그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잠정 중단된 미스터리 <황금 장원의 비밀>은 그런 특징이 화풍만큼 절정에 올랐다.
그러나 지혜안 작품의 진짜 매력은 탁월한 성애 묘사에만 있지 않다. 직접적인 성애 장면 없이도 비밀과 음모를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을 뿜는다.
<아름다운 상상>은 도락 속에 무너져버린 순정과 이면의 소망을 서글프게 그리고 있다.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궁정음악가 ‘스테판’은 쾌락과 자괴감 사이를 무한 반복 중이다. 미천한 음악교사였던 그가 베르사이유에서 무위도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왕이 총애하는 정부-자신의 부인 ‘라라’ 덕분이다. 스테판은 우연히 순결하고 청초한 ‘실론’과 마주친다. 사교계에 막 데뷔한 시골 귀족 아가씨의 순진한 믿음은 스테판에게 영감을 준다. 그녀로 인해 음악에 대한 열정을 회복한 스테판은 화려하게 재기한다. 가차 없는 사랑에 빠진 그는 라라의 경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왕의 총애를 잃을까 좌불안석이던 라라는 설상가상 임신한다. 도움을 청했음에도 스테판의 이기심만 확인한 라라는 결국 불법 낙태를 결심한다. 호색한 왕의 관심이 라라에서 실론에게로 옮겨가자 질투에 사로잡힌 스테판의 애정은 막무가내로 치닫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대무도회의 밤, 스테판이 목격한 것은 왕의 침대 속에서 싸늘한 미소를 던지는 실론이다.
사실 실론은 라라가 고용한 고급 창녀였다. 열정은 사라졌어도 라라는 스테판에 대한 의리와 그의 재능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함께 해온 시간만큼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던 라라는 유약한 그를 재기시키기 위해 실론에게 역할극을 의뢰했다. 그러나 찌들 대로 찌든 영악한 실론에겐 스테판도 라라도 신분상승을 위한 소모품이다.
불법 낙태로 피투성이가 된 라라는 한껏 차려 입고 무도회장에 들어선다. 마치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온전한 자리인 것처럼. 파국 끝에 죽어가는 그녀를 안은 채 스테판은 라라와 처음 사랑에 빠졌던 때를 떠올린다.
그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그녀이던 시절, 향긋한 홍차처럼 따뜻할 남국의 섬을 꿈꾸던 그녀를.
지혜안 작가의 데뷔작 <에스할름 이야기>는 마니아층이 꽤 두터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초야권을 통해 강제로 관계한 후 사랑에 빠진다. 얼핏 주체적으로 변한 여주인공이 택한 그는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 가해자’이다. 몇 줄로 일축하기엔 억울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 무슨 스톡홀름 증후군스러운 서사인가.
이제는 이 작품에 감흥 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맨스의 전조로 소비되던 크고 작은 폭력과 혐오들이 이제는 너무 또렷하게 보인다. 이런 자각은 여성 창작자들에겐 거듭 무게를 더한 고민으로 다가설 것이다.
실론이 신분상승에 집착하는 것도 사실 연인 아델 때문이다. 라라의 사연 <아름다운 상상>과 실론의 사연을 그린 다른 단편 <좋은 풍경>은 교차되는 한 쌍이다. 오지 않을 어떤 날을 소망해 사랑을 유보하던 라라는 끝내 그 사랑을 잃는다. 다른 전망이 다른 삶을 선사해줄 것이란 맹신으로 다른 여성을 밟고 일어선 실론의 사랑은 시체와 다름없다.
그녀들은 모두 사랑이란 이름으로 내던져진다. 비틀린 길로 그녀들을 내몬 연인은 똑같이 유약하고 똑같이 비겁하다. 기억도 가물한 사랑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라라는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아니 바랬을 것이다. 그와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행복의 어떤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그러나 함께 발맞춰주지 못하는 사랑은 결국 낙오될 뿐이다.
그런 날은 여전히 ‘아름다운 상상 속의 어떤 날’ 일뿐이다.
@출처/
아름다운 상상, 지혜안
단편집 아름다운 상상; 아름다운 상상 (대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