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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Jan 24. 2018

마녀의 관, 고골의 악몽


호불호를 떠나 고골의 풍자는 독특한 상상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기질에 더해진 슬라브 민속신앙은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찜찜함을 더한다.

러시아 민화인 줄 알았던 <비이>를 처음 읽은 것은 기담을 중심으로 한 <소년소녀 종합도서관 전집>을 통해서였다. <세계명작괴기전집 世界の名作怪奇館, 講談社, 1970>이 원전인 1980년대 판본이다. 성인이 된 후 다시 읽어보니 구성작들이 기담보다는 심연에 관한 작품들이지만 삽화만큼은 한결같이 무서웠다. 그중 <마녀의 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비이>가 압도적인 것은 고골의 서사보다 우노 아키라가 그린 일러스트 때문이다.


우노 아키라는 1960년대에 마코토 와다 和田誠、타다히토 나다모토 灘本唯人, 요코 타다노리 横尾忠則 같은 당대 일본의 스타일리스트들과 ‘도쿄 일러스트레이터 소사이어티’를 결성하며 일본 그래픽 디자인계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북클릿, 무대 연출, 큐레이팅, 디스플레이 등 장르 불문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현역이다.

그의 시그니처는 시크하고 나른한 일러스트이다. 196,70년대 초현대적이었던 그의 스타일은 현재 빈티지한 시크함으로 여겨지며 여전한 인기를 구사한다. 식품, 화장품, 패션, 모바일 콘텐츠 등 콜라보 영역도 작품만큼 화려하다.

우노 아키라의 주요 영역이던 포스터 작업들
인형극 <인어공주>
시세이도 메이크업 웹 서비스
이렇게 얇게 정리한 눈썹을 우노스타일로 불렀다고 한다. 식품, 화장품, 패션 등 콜라보 영역도 작품만큼 화려하다.


<마녀의 관> 일러스트는 목판화 같은 강렬한 면 대비를 활용했다. 단순한 면 대비 속에 특유의 예민한 선들로 그려진 인물은 한층 나른하다. 이런 조합은 그로테스크하고 고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노 아키라의 대단한 점은 경계선을 불식하는 자유로움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을 어제오늘이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경계선이 진했던 시대부터 시작했다니. - 가쿠타 미츠요


딱히 노출 없이도 성적 긴장감이 넘치지만 질척거리는 목적성은 없다. 소설가 가쿠타 미츠요의 ‘상쾌한 느낌의 기묘한 색기’라는 평은 너무나 적절하다.

#수많은 달님, 몽상가의 달 https://brunch.co.kr/@flatb201/90


러시아 대표 작가로 꼽히지만 정작 고골 자신은 우크라이나에 정체성을 두었다. 그래서인지 작품만큼 기이하고 유명한 기담이 있다.

생전 고골은 자신의 시체를 썩기 전에는 매장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망 후 생리적 기능이 멈춘 것 외에 안색은 좋았지만 유언은 무시되고 곧바로 장례가 치러진다. 60여 년 후 이장이 결정되어 관을 열어보니 똑바로 누워있어야 할 시신은 고통스럽게 웅크린 자세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좀 더 민간 괴담스럽다. 고골의 손자는 조부의 유골을 로마에 안장하기로 결정한다. 유골함 전달을 부탁받은 대학생은 승객이 빼곡한 로마행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후 수 십 년 뒤 고골의 우크라이나 생가 주변에 이 열차의 환영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골함을 든 대학생이 늙은 모습으로 타고 있었다는 목격담과 함께.

우노 아키라가 그린 <마녀의 관> 일러스트


고골의 악령은 비이처럼 무성이거나 비인간만이 아니다. 고골 또한 여성 공포증을 지닌 작가였다. 세속적 사랑에 대한 두려움은 금욕을 넘어 혐오로 발전했다. 사적인 혐오는 작품마다 여성을 우악스럽고 드센 존재로 묘사하는데 쓰였다. 아름다운 여성의 경우 여지없이 색기 넘치는 마녀 역을 떠맡는다. <비이>의 주인공 호머도 ‘죽은 미녀’가 뿜어내는 불가항력적인 아름다움에 공포와 욕망을 동시에 느낀다. 악마적 존재인 여성이 몰고 오는 파국은 현실의 좌절이며 혐오의 당위로 그려졌다.


고골의 이런 비뚤어진 여성관은 광신도였던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변명되곤 한다. 못난이들의 못난 변명조차 여성-그것도 제일 만만한 어머니라는 점에 실소만 나온다. 억울한 피해자로 그려진 고골의 남자들에겐 용기만큼 예의도 없고, 연애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여자가 품고 싶어 발정 난 남성들이 겹쳐진다.

어린 시절 러시아 민화로 여기며 읽었던 이 작품이 주는 찜찜함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이다.

상상의 악령보다 순환되는 혐오가 진짜 악몽이다. 심지어 이 꿈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출처/ 

비이,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Mirgorod - Вий,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1835)

世界の名作怪奇館3 ヨーロッパ編, 魔女のひつぎ (講談社, 1970, 번역 노다 히로시 野田弘志, 일러스트 우노 아키라 宇野亜喜良)

소년소녀 종합도서관 22/45권, 마녀의 관 (한국출판공사, 1983, 번역 이원수 외, 일러스트 우노 아키라 宇野亜喜良)

오월의 밤, 비이 (생각의 나무, 2007, 번역 조준래, 일러스트 이애림)


보통의 책 읽기, 가쿠타 미츠요 (엑스북스, 2016, 번역 조소영)


@우노 아키라 콜라보 이미지 출처/

http://www.span-art.co.jp/artists/unoakira/

http://ningyonoie.com/mermaid/interview02.html

http://polinism.thebase.in/blog/2015/04/28/21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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